스탠다드차타드, 배당금 1조원 문건 전모
스탠다드차타드, 배당금 1조원 문건 전모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4-12-05 09:12
  • 승인 2014.12.05 09:12
  • 호수 1075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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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걸친 계획적 접근…로비 방법 서술도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스탠다드차타드가 이번에는 배당금 1조 원 문건 적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114억 원의 적자를 낸 SC은행은 연말을 채우더라도 사실상 적자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C은행은 기존 1000~2000억 원대 고배당의 몇 배에 달하는 초()고배당을 추진한 것이다. 게다가 사외이사진들의 경력을 활용해 최고위층에 로비까지 하려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금융권의 논란이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행장 교체 후 한국서 영국으로 돈 나르기프로젝트
청와대 및 금융당국 행보까지 예측내부 제보에 적발

SC은행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1조 원이 넘는 배당금을 영국 본사로 송금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SC은행 내부 제보자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 자본금에 대한 논의(Korea Capital - Discussion)’ 보고서를 확보하고 사실 관계를 밝히는 중이다.

이 보고서에는 SC그룹이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11억 달러(작성 당시 약 11620억 원)의 배당금을 두 차례에 걸쳐 또는 한꺼번에 본사로 송금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특히 거액의 배당금 처리를 위해 국내 최고위층과 금융당국 기관장들에 대한 로비 방법까지 서술돼 있었다.

로펌과 컨설팅사
조언 받은 보고서

보고서는 김앤장, PWC, KPMG 등 국내 정상급 로펌과 컨설팅사의 조언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총 14페이지에 이른다.

직접적으로 고배당과 관련한 내용은 시나리오별로 상세하게 구분돼 있었다. 고배당 추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난관을 몇 가지로 정리해 기술한 것이다. 먼저 국내 여론이 고배당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 다음 금융당국이 고배당에 대외적으로 반대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금융당국이 배당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SC그룹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경우 등이다.

추가적으로 배당금은 동북아총괄본부를 거쳐 중간배당과 결산배당을 합산해 영국 본사로 송금할지 혹은 한번에 결산배당으로 처리할지를 두고도 고심했다. 일단 올해 중간배당으로 SC은행에서 SC금융지주와 동북아총괄본부에 송금한 후 내년 주주총회에서 나머지를 합쳐 영국 본사로 송금하는 예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론이 나빠지면 중간배당을 포기한 후 결산배당으로 전액을 결의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드러나 있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청와대 고위층 및 금융당국과의 교감을 쌓아 배당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한다는 지침이 눈에 띈다. 특히 리차드 힐 전 SC은행장이 아제이 칸왈 행장으로 교체된 지난 4월부터 약 1년간 고위관계자들에게 접촉하는 일정이 바로 그러하다. 그중 7월 첫째 주에는 피터 샌즈 SC그룹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및 경제수석과 금융위원장을 만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샌즈 회장은 명시된 대로 지난 72일 박 대통령과 만나 SC그룹의 한국사업 철수설을 부인하고 동북아지역본부를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한국SC는 은행 지점 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퇴직연금·저축은행·캐피탈 등을 차례로 정리하며 지속적으로 철수 의혹을 받아왔다.

사실 SC은행이 말하는 동북아지역본부는 한국과 일본, 몽골에 한정된 것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일본의 경우 직원 수가 200여 명 남짓이고 몽골의 경우에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무소 수준이라는 것이 현지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SC그룹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산업 육성이나 동북아 금융허브와 같은 청사진을 돕겠다는 명목 하에 이 같은 당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사외이사진
활용해 당근책 제시

무엇보다도 SC그룹은 SC은행의 사외이사들을 활용해 국내 최고위층 및 금융당국 수장들에게 접근해 배당금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예를 들면 권태신 SC은행 이사회 의장이 전 국무조정실장임을 이용해 신임 행장이 부임하면 정부 관료들과의 만남의 장을 주선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것도 권 의장뿐 아니라 사외이사 12명 중 7명이 모두 국가기관 출신임을 들어 국내 최고위층에 선이 닿을 수 있도록 했다. 정기홍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김세호 전 철도청장 및 전 건교부 차관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또 영국 본사에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2010년부터 비상임이사직에 있어 이 같은 구체적인 계획과 관련있는지에 대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국SC은행에는 박창섭 부행장이 전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을 지낸 경력이 있어 함께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내년 배당시점에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음을 주의하라는 내용까지 곁들여졌다. 공교롭게도 금감원은 지난달 최수현 전 원장을 보내고 진웅섭 신임 원장을 맞이했다. 은행검사국을 담당하던 조영제 부원장도 지난 2일 자리에서 물러난 탓에 현재 진행 중인 SC은행 정기검사가 흐지부지될 공산도 존재한다.

한편 사상 초유의 고배당 논란이 불거지자 SC은행은 배당금을 줄이겠다고 재빨리 발표했다. SC은행은 5일 이사회에서 이번 중간배당을 1500억 원으로 한정하고 향후 2년간 배당도 3000억 원 이내로 못박는 내용의 배당안을 상정했다. 이에 SC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가 어느 정도 수위일지와 더불어 이 같은 배당계획이 지켜질지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고배당 논란으로 점철됐던 SC은행이기에 규모가 남다른 1조 고배당과 로비를 계획했다는 것도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SC은행 사외이사들의 화려한 경력과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볼 때 금감원이 이를 크게 문제삼지 못할 것이 명약관화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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