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 선수 양극화 갈수록 심화…선수간 79.6배의 연봉차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4년 FA(프리에이전트)시장은 열리기 전부터 몸값 폭등을 예고하며 우려반 기대반에 휩싸였다. 실제 1라운드 협상의 마지막 날 잔류를 선택한 FA 선수들은 계약 총액 395억5000만 원을 신고해 지난해 FA 계약 총액(523억5000만 원)의 75.5%에 달했다. 아직 외부시장까지 남아 있어 이번 FA 시장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장원준을 비롯해 나머지 11명까지 계약을 마칠 경우 FA 계약 총액 역시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FA 시장의 이상기류는 구단들 스스로 먹튀 방지법으로 불리던 옵션계약 포기로 번지면서 더욱 왜곡되고 있다. FA 시장 후폭풍을 점검해본다.
FA 시장의 1라운드가 지난달 26일 마감됐다. 올해 1라운드의 대박은 단연 역대 최고금액을 신고한 SK 와이번스 내야수 최정이다. 최정은 4년간 총액 86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계약금으로 42억 원을 받고 첫 2년간은 연봉 10억 원에, 다음 2년간은 12억 원씩을 받는 조건이다. 이는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가 강민호와 계약한 75억 원(계약금 35억 원, 연봉 1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박 조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과 안지만이 각각 80억 원과 65억 원으로 초대박 행렬에 가세했다. 윤성환은 역대 FA 투수 최고액에 이름을 올렸고 안지만은 구원투구 최고액을 갈아치웠다. SK는 외야수 김강민과 4년간 56억 원에 계약했고 LG 트윈스 역시 외야수 박용택과 4년 50억 원짜리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들 외에도 몇몇 선수들이 계약에 성공했지만 올해 FA 시장의 시장기준가는 어느덧 50억 원이 돼버렸다.
주전급 50억 기준, 옵션도 실종
연일 억소리가 나고 있는 FA 시장의 과열양상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롯데 포수 강민호가 4년 75억 원을 필두로 한화 이글스 내야수 정근우와 외야수 이용규가 4년에 각각 70억 원, 67억 원을 받았고 삼성 투수 장원삼이 4년 60억 원, KIA 외야수 김주찬이 4년 50억 원에 계약하면서 1군에서 주전으로 좀 뛰었다하는 선수들에게는 협상테이블에서 50억 원보다 높은 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이상 열기 탓에 몇 년 전만해도 FA 권리를 포기했을 선수들조차 틈새시장을 노리고 FA를 선언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 몸값 과열은 일찌감치 예견될 정도였다. 스타플레이어들의 잇따른 해외진출과 10구단 체제, 기존구단들의 리빌딩 열기까지 겹치면서 선수들이 몸값 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됐다. 올 FA 시장의 두드러진 변화는 발표되는 계약 금액들이 옵션을 포함하지 않은 순수 보장금액이라는 점이다.
2003년부터 10년간 역대 FA 최고액 기록의 주인공인 삼성 심정수는 60억 원으로 발표했지만 실제 그 안에는 플러스마이너스 옵션이 10억 원이나 포함돼 있었다. 그는 계약 4년 중 2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으로 60억 원을 전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FA 1라운드 계약을 살펴보면 최정의 경우 4년 86억 원 중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옵션이 없다. 삼성 윤성환과 안지만, 조동찬, 한화 김경언도 마찬가지, 내년이면 36세의 적지 않은 나이가 되는 LG 박용택도 4년 50억 원을 고스란히 수령하게 된다.
오히려 옵션을 추가한 SK 김강민(총액 56억 원, 계약금 28억 원·연봉 6억 원·옵션 4억 원)과 조동화(총액 22억3 원, 계약금 8억 원·연봉·3억 원·옵션 2억 원)의 계약이 이상해 보일 정도다. 지난해에는 롯데 강민호와 삼성 장원삼만이 옵션이 없었다.
88억 롯데 폭탄, 축소발표 의혹 키워
옵션계약이 사라지면서 공식 발표금액이 실제 수령액보다 축소됐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는 고액 연봉에 대한 선수들의 부담감을 줄여주고 지나친 투자에 대한 타 구단의 불편한 시선을 조금이라도 피해가기 위해서라는 것.
더욱이 이번 FA 시장의 최대어 중 하나인 롯데 투수 장원준이 롯데의 최고대우에도 불구하고 팀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구단들 간의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또 발표금액의 축소의혹에도 불을 당겼다.
롯데는 올해 극심한 내홍을 겪으면서 팀의 위상까지 추락한 상태다. 이에 구단은 든든한 프랜차이즈 스타인 장원준을 붙잡기 위해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장원준은 끝내 팀과 손을 잡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뿔난 롯데 역시 장원준에게 제시한 금액을 공개해 타구단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롯데는 장원준에게 4년 총액 88억 원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장원준이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온다는 수준급 왼손투수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거액이라는 게 야구계의 반응이다.
결국 장원준의 기준가는 88억 원이 됐고 그 이상을 써야 장원준을 잡을 수 있다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롯데는 장원준과 사전 교감을 나눈 구단들에 대해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결국 롯데의 선전포고에 우선협상기간이 종료된 직후 FA 시장은 급속히 냉각된 상태다.
당초 장원준의 행선지를 놓고 한화-KIA-LG의 3파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KIA가 먼저 발을 뺐고 한화와 LG도 장원준의 몸값에 대해 고심 중이다.
이에 대해 장원준은 “금액은 상관없다”며 “시장에서 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다른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고 말해 돈 문제가 협상의 핵심은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라운드의 주요관심사는 장원준이 어디로 가느냐에 쏠리고 있다. 장원준이 결정되면 포지션이 겹치는 선발 투수 배영수와 송은범의 향방이 결정되고 이후 나머지 FA선수들이 빠르게 정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장원준의 몸값에 대해 시장은 최대 6년에 100억+알파까지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세금을 포함한 총금액이 150억 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장원준과 계약하는 구단에서 발표한 금액은 88억 원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미 세금포함 100억 원을 넘게 돼 계약금액의 축소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급증한 FA 몸값에 구단과 선수는 실제 계약 조건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이에 발표 금액이 세금을 뺀 금액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야구계에서는 최정과 윤성환 등이 이미 4년에 세금 포함 총액이 100억 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발표하는 FA금액은 대부분이 세금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에 선수들의 실제 수령액은 더욱 줄어든다는 점에서 국내 FA 시장의 왜곡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악수 둔 구단들 책임 물을 길 없어
더욱이 올해는 옵션조차 없는 계약들이 대다수여서 구단들이 선수들에 대한 견제방법이 없다는 점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2011년 LG 박용택의 첫 번째 FA 계약은 가장 좋은 사례로 손꼽힌다. 박용택의 계약은 염가 계약이라는 말이 무성할 정도였다. 당시 LG는 4년간 최대 34억 원의 계약을 맺었는데 플러스 인센티브가 과도하게 책정된 반쪽 대박이었다. 이는 그동안 FA 선수들에게 크게 데인 LG의 자구책이었다.
박용택의 보장금액은 총액의 50%도 안 되는 15억5000만 원이었고 나머지 18억5000만 원은 옵션으로 책정됐다. 옵션내용은 비공개였지만 박용택의 3년간 기록을 평균화해 경기수 타율 등에 따라 플러스-마이너스 옵션을 부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용택은 대부분 옵션을 충족시키며 팀과 본인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견제방법을 구단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계약 후 선수가 부진 또는 부상에 시달려 ‘먹튀’가 되더라도 손쓸 방도가 사라졌다.
지난해 초대박 주인공인 강민호의 연평균 수령액수는 18억7500만 원이다. 하지만 그는 올 시즌 타율 0.229 16홈런 40타점에 그쳐 롯데는 강민호의 홈런 1개를 보기 위해 약 1억 원을 지출한 셈이 됐다.
인색한 구단평가 찬밥신세도 속출
올해 FA 시장은 양극화도 불러 왔다. 대박을 친 선수가 있는 반면 찬밥 신세가 된 선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선협상에 실패한 11명 가운데 장원준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에 대해 구단이 협상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서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
한 FA 선수는 “몇 차례 만났지만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구단은 ‘최대치를 제시했다’며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장으로 나와 가치를 평가 받겠다고 말하지만 시장에서도 계약에 실패하면 원 소속구단을 포함한 전 구단과 협상을 하게 된다. 그럴 경우 원래보다 좋지 않은 대우로 원 소속구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어 몸값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3년 8억5000만 원에 잔류 계약을 마친 한화 김경언은 자신이 제시한 액수를 포기하고 구단 뜻을 따랐다.
또 선수들 간의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최고액을 경신한 최정의 연평균 몸값은 무려 21억5000만 원, 이는 내년 시즌 프로야구 최저 연봉인 2700만 원의 약 79.6배에 달해 FA가 선수들의 로망일 수도 있지만 극심한 박탈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부작용으로 남아 있다.
급등한 운영비 팬들의 잠재적 피해
FA 폭등은 향후 팬들에게 잠재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올해도 각 구단들은 FA를 통해 막대한 지출을 해야 했다. 그 부담은 모기업의 지원으로 해소되겠지만 점차 늘어나는 지출규모로 인해 구단들은 입장료 또는 관련 상품 가격 인상이라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잉글랜드 축구처럼 높은 중계료를 내고 야구를 시청해야 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실제 2012년 넥센은 이택근과 50억 원의 깜짝 계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목동 구장의 티켓 값을 대폭 끌어올리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FA 시장은 선수들에게는 그동안의 흘린 땀방울의 보상차원에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구단들도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해 차기 시즌을 준비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2015시즌부터 1군 리그에 진출하는 kt 위즈는 지난달 28일 특별지명을 완료하고 빈자리를 투수 김사율(3+1년 14억5000만 원), 내야수 박기혁(3+1년 11억4000만 원), 박경수(4년 18억2000만 원) 등과 계약을 체결해 준척급 FA 선수 3명으로 채웠다.
이 같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최근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이미 구단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에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장 FA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내부육성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롯데 관계자는 우선협상 마감 후 “구단은 FA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춰 계획”이라고 밝히며 사실상 외부 FA에서 철수했다.
또 모기업의 지원 없이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프로야구 특성상 폭주하는 몸값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악의 경우 몸값으로 휘청이는 구단이 나오고 모그룹마저 구단 운영을 포기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FA로 당장 몸값 오르는 선수는 좋겠지만 프로야구 전체로는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독이 된다는 점에서 이제는 적정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