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춤추는 대망론(大望論)
[인물탐구]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춤추는 대망론(大望論)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4-12-01 11:29
  • 승인 2014.12.01 11:29
  • 호수 1074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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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한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한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여야 잠룡군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정관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기문 대망론’은 들불처럼 번졌다. 그 여세는 반 총장이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못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출마를 한다면 어느 정당으로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또한 반 총장이 과거 대권 주자로 부상했던 고건 전 총리나 안철수 의원과는 어떤 차별점을 보일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정치 중심에 들어온 반 총장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 대권 저울질 ‘기름장어’ 화법 대망론으로 ‘들썩’
- 충청향우회, 부인, 측근 부정적속 여당 출마 기대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1차적인 궁금증은 차기대선 출마 여부다. 2016년 유엔사무총작직의 임기가 끝나고 2017년 12월 대한민국 대선이 있다는 점에서 반 총장으로선 호기임에 분명하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서 과거 YS, DJ, 이회창, 박근혜 만큼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도 반 총장의 대망론을 부추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11월초 차기대권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는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당겼다.
당장 집권 여당 주류세력이지만 마땅한 대권 주자를 갖 지않은 친박 주류에서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섰다. 세미나까지 개최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을 설파했다. 야당도 과거 반 총장이 DJ-盧 정권 당시 승승장구했다는 점을 들어 출마를 한다면 여당이 아닌 야당으로 출마할 공산이 높다고 맞받아쳤다. 여당은 김무성, 야당은 문재인 두 인사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었지만 반 총장의 인기는 하늘높이 치솟았다. 반면 여야는 차기 대권에서 내세워 믿을 만한 주자가 없다는 반증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받아야 했다.

반기문 마케팅 봇물 속 반 총장은 ‘애매모호’

현직 유엔사무총장이 3년이나 남은 터에 차기 대권 주자 하마평에 오르면서 반 총장은 서둘러 진압에 들어갔다. 반 총장은 언론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정치 관련 관심시사 보도는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으니 국내정치 보도를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이런 발언은 그의 별명인 ‘기름장어’(Slippery eel)다운 화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별명은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외교보좌관 시절 기자들의 어려운 질문에도 잘 빠져나가 붙여졌다. 기름장어 별명처럼 역시 차기 대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없고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대응을 해 오히려 차기 대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런 화법은 통상 다음 대선이 있기 전까지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은 계속 유지해 대중적 인기를 이어가겠다는 속내로 치부됐다. 과거 고건 전 총리가 그랬고 가까이에는 안철수 의원이 이와 유사한 화법을 구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기문 대망론’이 사그라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확산되면서 ‘반기문 마케팅’이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 총장관련 테마주가 들썩거렸다. 아울러 반 총장 관련 서적도 연이어 나왔다. 대표적인 서적으로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남정호 지음 김영사), ‘반기문 대망론’(KBS 이성민 아나운서, 강단), ‘유엔본부 38층-유엔과 반기문 리더십’(이상화, 나남) 등이 최근 출판된 반 총장 관련 서적들이다.

반 총장의 출마설이 퍼지면서 공격에 나선 것은 정치권이었다. 당장 야권에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 의원은 반 총장에 대해 “외교 능력은 국정을 이끄는 중요한 능력이지만 외교 외에 다른 분야는 사실 아직 검증된 바 없다”며 견제에 나섰다.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붙여준 문희상 비대위원장 역시 “반기문 들었다놨다 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며 사실상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친박 주류 역시 한 발짝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대표적인 친박 주류인 홍문종 의원은 11월 중순에 계획돼 있던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중 의원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막판 포기했다. 자칫 반 총장을 만나 차기 대권 관련 논의를 했다는 식의 루머를 피하기위함이었다는 분석이다. 대신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10월말 세미나까지 열며 차기 대권 주자로서 반 총장을 띄웠던 친박 주류지만 반 총장의 대망론이 자칫 박근혜 대통령의 심경에 거슬릴 수 있고 반 사무총장의 유엔직 수행에 부담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반 총장의 가족과 측근들 역시 방어에 나섰다.

당장 반 총장의 부인인 유순택 여사는 사석에서 “(남편이) 정치하는 것에 절대 반대다. (그럴 것 같으면) 퇴임 뒤 아예 한국에 들어가지 말아야 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박수길 전 유엔대표부 대사까지 나섰다. 박 전 대사는 “자기 입으로 직접 나에게 대통령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사는 유엔대표부 공사 지설 당시 1등 서기관이었던 반 총장과 함께 근무했고 2005년 강영훈 전 국무총리,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와 함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출마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충청향우회 성격의 백소회(백제의 미소) 모임의 반 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임덕규 총무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임 총무는 11월 21일 백소회 조찬 모임에서 “반 총장은 국내정치는 물론 대권에도 관심이 없는 분으로 이것이 진실이고 확실한 내용”이라며 “대선출마를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왜 자꾸 나오는 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야당보다 여당 출마 유력한 이유가 친노?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하지만 또 다른 백소회 멤버인 이규진 전 중앙일보 미디어인터내셔널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55년간 영남 출신이 대통령을 했는데 충청 출신 반 총장의 대권론이 언급되는 게 잘못된 게 있느냐”며 “반 총장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국제정치권에서 활동해오며 국제 정치 속에서의 국내정치에도 관심이 많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백소회는 1992년 12월초 결성된 이후 현재까지 매월 모임을 가지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외교가에 마당발로 알려진 임 총무가 주도하고 있으며 현재 회원이 100명이 훌쩍 넘고 있다. 주로 정관계 인사들을 비롯해 언론, 기업인들로 구성된 백소회는 MB정권 시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일약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정 전 총리를 비롯해 이회창, 이인제, 심대평 전현직 의원 뿐만 아니라 박성효 전 대전시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송자 명지학원 원장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 총장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반기문 대망론’에 이렇듯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정치권은 대선이 3년이나 남았다는 점에서 출마나 불출마를 확신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정치권은 만약 반 총장이 출마를 할 경우 어느 당으로 나설지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는 반 총장이 DJ-노무현 정권 시절 승승장구했다는 점에서 야당으로 출마할 수 있다고 흘리고 있다. 반 총장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외교통상부 차관, UN총회 의장 비서실 실장을 지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장관, UN사무총장을 지냈다. 외시 출신으로 외교가에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핵심 경력을 참여정부에서 쌓은 셈이다.

하지만 반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아온 N씨는 “정치적 성향상 새누리당에 가깝고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원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친노와 가깝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인사는 “사실 유엔사무총장으로 참여정부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를 시키면서 전폭 지지했다가 무산되자 반 총장을 대타로 민 것”이라며 “또한 반 총장이 외교 보좌관으로 임명될 당시에 소위 친노 386 운동권 인사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노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지로 될 수 있었다”고 친노와 노 전 대통령이 별개임을 강조했다. 사실상 반 총장이 출마를 한다면 야당보다는 여당후보로 출마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세계 대통령 명예 지켜야vs 10개월만 참으면

한편 야권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대권 후보로 출마한다면 노무현 정권 시절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던 관료 출신의 고건 전 총리나 안철수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경고도 서슴치 않고 있다. 야권의 한 인사는 “관료 출신들의 단점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중앙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얼마나 냉정한데 쉽게 반 총장에게 대권 자리를 주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마를 한다고 해도 가족의 반대부터 검증까지 반 총장이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다. 이 인사는 “세계 대통령을 한 만큼 노후에 유엔사무총장의 명예와 성공한 삶을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반면 반 총장을 옆에서 지켜봤던 N씨는 “여야 정치권이 반 총장에 대해서 임기가 끝나는 2016년까지는 어떠한 검증도 할 수가 없다”면서 “반 총장이 10개월만 버티면 충분히 대통령에 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 총장의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 

주요 프로필

-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
- 충주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 제3회 외무고시 합격
- 외무부 미주국 국장
- 외무부 제1차관보
- 대통령비서실 의전 수석비서관
-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 외교통상부 차관
- 제56차 UN총회 의장비서실 실장
- 외교부 본부대사
-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
- 제8대 UN 사무총장

mariocap@ilyoseoul.co.kr

반기문 관련 서적 ‘봇물’ 판매 중단 해프닝도

가장 눈에 띄는 반기문 사무총장 관련 서적 중 최근에 나온 것은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남정호 지음)다. 중앙일보 국제선임기자인 저자는 언론계에선 드물게 뉴욕과 런던, 브뤼셀 등 3개 지역의 특파원을 역임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민얼굴과 무대 뒤에서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치열한 외교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당선 직후 반 총장이 방대한 국제기구인 유엔을 향해 ‘개혁’을 선언하는 과정에 사무차장을 비롯한 유엔 핵심 간부들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카리스마있는 모습도 그렸다. 또한 반 총장은 아침 일찍 출근해 8시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반 총장의 7년에 걸쳐 숨겨진 일화와 남 모르는 속사정, ‘동양적 리더십’을 저자는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조목조목 짚었다.

또한 오랜 시간 반기문 총장을 연구해 온 ‘반기문 전문가’ KBS 이성민 아나운서가 신간 ‘반기문 대망론’을 통해 반기문이 차세대 대권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검증 장치를 제시하며, 독자들과 함께 이에 대한 답을 묻고 있다.

저자는 반 총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따지려면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기류나 에세이류는 서점에 많이 있고, 또한 그간 두 권이나 집필한 반기문 총장 관련 책이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말을 통해 저자는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 독자 스스로 반기문 총장에 대한 검증 장치를 갖게 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이런 관점에서 ‘반기문 대망론’을 넘어 차세대 지도자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반기문 총장 또한 그에 합당한 인물 중 한 사람인지 독자 판단에 맡기고 있다.

박수길 전 유엔대표부 대사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외교 이야기’를 통해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되려면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반 총장은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반 총장이) 정치와 외교를 준별(峻別)하는 사람"이라고도 적고 있다. 박 전 대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유엔통이다. 1996~1997년 한국이 처음으로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할 당시 유엔 대사로 재직하며, 안보리 의장을 맡았다. 현재 비정부기구인 유엔협회 세계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한편 반 총장 관련 서적의 판매가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유엔본부 38층-유엔과 반기문 리더십>이라는 책으로 반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7년간 보좌한 이상화 현 외교부 정책심의관실 심의관 겸 상황실장이 직접 썼다. <유엔본부 38층>은 저자가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전달했고, 출판사 측에서 출판 가치를 높게 평가해 책으로 냈다.

이 책은 지난 5월 30일에 발행해 초판 3000부만 찍고 시중 서점 배포 직전 출판사 측이 전량 회수 조치해 일부는 창고에 쌓여 있다. 책이 시판되기 직전 판매 중지를 요청했기 때문에 출판사는 출판 비용, 디자인 비용, 인건비, 마케팅비 등의 손해를 입었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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