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변호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사법시험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법시험은 하나의 전문직 등용문일 뿐이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변호사들이 갑자기 늘어난 탓이다. 그나마 일거리도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들에게 몰린다. 화려한 경력이 없는 변호사들은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변호사 사회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생활고를 호소하는 변호사도 있다.
연간 수입 2400만원 이하인 변호사 17.2%
변호사회 회비 5만원, 미납 누적액 3억 넘어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전국 변호사의 74%가 몰린 서울은 변호사 1명이 한 달에 사건을 2건 맡기도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2.7건 수준이던 ‘변호사 1인당 월평균 본안 사건 경유 건수’는 2012년 2.3건, 지난해 2.0건까지 떨어졌다. 한 달에 단 1건의 사건도 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수임료 1건당 300만 원
월급 200만 원 이하도
서초 지역에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45) 변호사는 “서울에서 영업을 하려면 한 달에 최소 4건은 맡아야 하는데 그건 꿈같은 이야기”라며 “과거에는 일반 민사사건 수임료가 500만 원대였는데 이제 300만 원선도 무너졌다”고 한탄했다.
서울지역의 경우 개인사무실은 임대료, 사무장 및 직원 월급, 영업 비용 등 고정 지출이 있어 수익을 남기려면 한 달에 최소 2000만 원 이상은 벌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건에 300만 원 하는 수임료 갖고는 2000만 원을 넘기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은 침체되고 있는데 변호사는 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한 달에 2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변호사 3725명 가운데 연간 수입이 2400만 원(소득세 면세 한도) 이하라고 신고한 변호사는 640명으로 17.2%에 달했다.
생활고를 겪는 변호사들이 많다보니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2013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2년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변호사는 모두 544명이다. 이 중 사기·횡령 등의 재산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238명에 이른다.
재산 범죄로 기소된 변호사는 2008년 84명, 2010년 123명 등으로 증가세에 있다. 최근에는 행정고시와 법원 행시, 사법시험까지 합격해 ‘고시 3관왕’으로 승승장구하던 변호사가 8억 원대 횡령·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앞서 2월에는 수감자에게 가석방을 미끼로 1억 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변호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생활고로
범죄 유혹에 빠지기도
서울변회를 비롯한 전국 변호사회의 회비 미납자도 덩달아 늘고있다. 월 회비 5만 원을 받는 서울변회는 올해 1월 기준으로 누적 미납 회비가 3억 원을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벌어놓은 돈으로 직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하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또 과거에는 관심 없었던 국선 변호 사건을 많이 지원해 이를 주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변호사도 있다. 지난 1월 26일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50대 변호사가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수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수임 사건 감소로 생활고를 겪어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전남 여수에서도 40대 변호사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업·지자체서 인기 하락
영업하거나 7급 채용
과거 변호사는 기업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서로 모셔가려고 안달이 났을 정도다.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특별대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의 변호사도 수요가 많지 않아 신규 변호사들의 일반 기업 취직도 바늘구멍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에는 이미 사내 변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우도 예전만 못하다. 급여는 일반 직원보다 조금 많지만 직급은 과거 과장급에서 대리급으로 떨어졌다. 대기업 변호사의 경우 과거에는 변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간다 해도 대우가 예전 같지 않다. 기업 법무팀으로 입사했더라도 관련 업무보다는 영업 및 관리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들의 위상 추락은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과거 변호사의 경우 5급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5급 변호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변호사 채용시 6급이 보통이다. 심한 경우 7급으로 채용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생겼다. 초임 검사와 판사가 3급(부이사관) 대우를 받는 것에 비하면 일반 변호사들의 위상이 한없이 추락했다.
지난 3월 충북도교육청은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 법률 상담 변호사’(6급)를 공개 모집했다. 1명 모집에 17명이 원서를 냈다. 로스쿨 출신은 물론 사법시험 합격자들도 포함됐다. 지난해 일반 임기제 변호사(6급) 채용 공고를 낸 경기 수원시와 광명시는 각각 39대 1, 3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산시는 변호사를 일반직 7급으로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내 로스쿨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해당 자리에는 2명이 응시해 로스쿨 출신 1명이 채용됐다. 부산시는 올해도 변호사 2명을 행정직 7급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내부 검토 과정에서 변호사와 로스쿨 등의 반발을 우려해 6급 계약직 채용으로 계획을 바꿨다.
변호사는
국가공인자격증일 뿐
문제는 이러한 변호사 위상추락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서울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모(27·여)씨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나마 명문대 로스쿨 출신이 아니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도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도 변호사가 ‘성공열쇠’라기 보다 ‘하나의 국가공인자격증’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푸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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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