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십상시,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회 걸쳐 만나”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지난달 28일 세계일보는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감찰 보고서를 보도했다. 이 문건에는 현 정부 비선실세로 꼽히는 정윤회씨가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국정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정치권에서는 소문으로만 나돌았던‘비선실세의 존재를 확인 시켜준 문건’이라고 말할 정도다. 특히 막후 실세로 불렸던 정씨의 동향 및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에 대한 진앙지의 실체가 드러나 있다. 이 문건 내용이 공개되면서 비선조직이 정치권 전반에 개입했다는 단서가 됨에 따라 그 파장은 좀처럼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해당 문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내부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떠돌던 ‘김기춘 비서실장 중병설·교체설’에 대한 루머의 진앙이 어디인지 감찰한 결과를 담고 있다.
“김기춘 사퇴설, 정윤회가 흘렸다”?
감찰 조사 결과에는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적시했다.
이들 모임에는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이 문건에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 실명을 언급했다.
이 뿐만 아니다. 이 문건에는 정씨가 지난해 이들과 송년 모임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 시점을 흘렸다고 언급했다. “(김 실장은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는데 ‘검찰 다잡기’만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는 것이 문건의 주된 골자다.
당시 이 모임에서 정씨는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며 “사퇴 시점은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며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문건에는 “정씨와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회 정도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만나 VIP 국정 운영과 BH(청와대 지칭)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고 적혀있다.
해당 문건은 ‘막후실세’로 불리는 정씨가 김 비서실장 사퇴 시기 및 청와대 내부 상황을 체크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어, 이 문건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이 작성된 것은 당초 공직기강비서관실이 ‘3인방’에 주목했던 것은 내부 정보 유출 의혹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첩보를 통해 이를 규명하려는 차원에서 자체 감찰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그를 감찰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특히 이 문건은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 비서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A경정은 원대복귀, 조 비서관은 두 달 뒤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춘 라인이 흘렸다?
그래서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문건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김기춘 라인 측에서 흘린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문건이 김 비서실장에게 보고됐던 만큼 조 전 비서관, A경정, 김 비서실장만이 이 문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
더구나 과거 문고리 3인방과 인사 과정에서 보이지 않은 갈등설이 불거졌고, 박지만 EG 회장과 정씨 미행 사건 과정에서 김 비서실장이 적잖은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박지만 vs 정윤회 간의 제2의 권력다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잖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박 회장이 지난해 12월 한 달 전부터 자신을 미행하던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정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씨에 대한 감찰을 조 전 비서관이 A경정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될 점은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라인’으로 분류된다. 초임 검사 시절 박 회장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다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주요 사안을 직접 보고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련의 과정을 봤을 때 박지만 라인으로 불리는 조 전 비서관이 정씨에 대한 감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문건은 ‘박지만-정윤회 미행사건’ 보도가 불거진 이후인 지난 1월 작성됐다. 이를 종합했을 때 박지만-정윤회 간의 권력다툼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당에서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번 의혹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 총공세 태세를 갖췄다. 문건과 관련된 보도가 난 직후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주재로 긴급 비공개 비대위 회의를 소집, 국회 운영위 소집을 요구하고 당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문건이 폭로되면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운영에 적잖은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靑, 법적 강력대응 방침
한편,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에 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해당 매체의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하다”며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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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