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는 정부와 옛 인연…홍성국·이광구는 서강人
내정설에도 꿋꿋이 은행연합회장 그대로 선임 강행
낙하산·보은인사 논란 재점화…공채출신도 못 피해
대우증권에 이어 우리은행도 ‘서·서·서’…향방은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결국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선임됐다.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지난 28일 이사회와 총회를 열고 단독 후보로 추천된 하 전 행장을 만장일치로 선임했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10개 은행의 은행장들은 이미 전날인 27일 회장 선임에 대한 뜻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과의 교감 자명한 일”
선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24일 열렸어야 할 이사회는 금융노조의 반대로 며칠간 연기됐다. 사실 하 회장은 이사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후문이 돌면서 홍역을 치렀다. 특히 이사회에 속한 일부 시중 은행장들조차 이 같은 내정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더욱 커졌다.
내정설이 돌자 금융노조 측은 “금융당국이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에서 낙마한 하영구씨에게 사실상 보은성 인사를 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인선으로 차기 회장 임기 시작 전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반대한 바 있다. 은행연합회 노조 역시 정부의 꼭두각시를 내려 보내려는 관치금융의 결정판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이사회는 특정 인사를 두고 내정설이 떠도는 데 대한 부담감에 총회를 연기하며 시간을 끌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이사회가 열리기 전 하 회장의 내정설을 전격 부정하면서 여론을 잠재우려 애썼다. 신 위원장과 씨티은행 부행장이었던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씨티은행 행장을 5연임했던 하 회장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사회는 세간의 추측과 같이 하 회장을 선임함으로써 의혹을 사실로 확정시켰다. 심지어 금융노조가 은행연합회관 회의장을 점거하면서까지 이를 막으려 하자 장소를 외부로 옮겨 관철시켰다. 이사회 직후 박병원 전 은행연합회장은 신 위원장을 만나 자리를 옮겨서 잘 처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연히 금융권에서는 하 회장과 박근혜 정부의 연에서 비롯된 보은인사에 대해 꼬집는 말들이 오갔다. 금융노조는 선임 당일 성명을 통해 “전 국민을 기망하며 이뤄진 사상 최악의 관치 낙하산 인사이자 졸속 그 자체”라면서 “‘금융당국 내정설’을 두고 사실무근이라던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국회 발언도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 전 행장과 박근혜 정부의 끈끈한 인연으로 볼 때 하 행장이 한 자리 차지할 줄은 짐작했지만 그것이 은행연합회장이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면서 “앞서 하 전 행장이 도전했던 KB금융은 다른 회장을 맞이했다는 괘씸죄로 LIG손보 인수 승인이 지연되며 괜한 피를 보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국책 산은·수은도 이미 서강인 점철
보다 본격적인 논란에 휩싸인 것은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내정자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겸 부사장인 홍 내정자는 지난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차기 사장으로 확정됐다. 다음 달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선임은 순탄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홍 내정자가 서강대 출신에 최근 논란이 되는 ‘서금회’에까지 연이 닿아있다는 점이다. 서금회란 서강금융인회의 줄임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이 2007년 만든 모임이다. 주로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권에 몸담은 책임자급들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300여 명이 가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서금회는 박근혜 정부 초기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한 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멤버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서금회 회원은 아니지만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천왕이 떠난 자리를 신(新)4대천왕이 채울지에 대해 설왕설래했다.
그러자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의도적으로 금융권 요직에서 서강대 출신을 배제시키면서 논란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한창 하마평에 오르던 한 기관장의 경우 서강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조기낙마해 안타까움을 살 정도였다. 곁에서 반사이익을 본 것은 지난 정부 때 득세하던 고려대가 아닌 연세대와 성균관대 출신들이었다.
홍 내정자의 경우 최근 들어서만 참여했을 뿐 모임에 지속적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강대라는 학연으로 묶여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실 홍 내정자는 지난 10월 같은 후보군이었던 이영창 전 부사장에 비해 열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 전 부사장은 확정 전언까지 돌았음에도 이사회 당일 안건 상정이 취소되자 세 후보 중 아무도 금융당국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우증권 사장직 공백기가 5개월에 근접하자 부담감이 더해지면서 서금회와 연이 있는 홍 내정자로 낙점했다는 분위기다. 지난 이사회 직전 후보 자질논란에 투서까지 오갔던 것을 감안하면 되도록 빨리 마무리를 짓는 편이 이득이라는 논리도 작용했다.
공백기보다는 일단 앉히기 논리 작용
실제로 앞서 내정설의 주인공이었던 박동영 전 부사장의 경우 같은 내부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낙하산 논란에 휘말려 자리에 오르지 못한 바 있다. 박 전 부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밑에서 일한 박일경 전 문교부 장관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낙하산이라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이런 연유로 대우증권 사장 선임은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키운 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서금회와 연이 있는 인사를 선택하면서 다시금 점철된 낙하산 사장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또 홍 내정자는 첫 공채출신 사장임에도 등장부터 색안경을 낀 시선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편 초읽기에 들어간 우리은행장 선임에서도 서금회 논란은 커져가고 있다. 원래 우리은행 차기 행장직은 민영화로 인해 임기가 채 1년도 되지 않는 임시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민영화가 무산될 분위기가 확산되자 다시 3년이 될 수도 있는 행장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연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현 행장 대신 이광구 부행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부행장은 서강대 출신이자 서금회 멤버라는 점에서 현 정부와의 인연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12월 내에 모든 절차를 매듭짓겠다고 밝혀 곧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 4대천왕이 대신하던 자리를 관피아가 넘겨받았다가 잠시 민간 출신들로 채워지는가 했더니 곧 서금회로 대체되고 있다”면서 “현 정부와 우리나라 금융의 수준이 아직 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실로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