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17] 하토야마와 아베 이렇게 다를 수가!
[알쏭달쏭 정치이야기-17] 하토야마와 아베 이렇게 다를 수가!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4-11-24 11:42
  • 승인 2014.11.24 11:42
  • 호수 1073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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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일본의 제93대 총리대신이다. 지난 18일과 19일 양일간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왔고, 나는 그를 초청하는 데 조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가 부산에 머문 약23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내가 하토야마를 처음 접한 것은 일본에서였다. 접했다기 보다 먼발치서 바라본 것이 전부였지만. 1995년의 일이다. 하토야마는 당시 신당 사키가케라고 하는 아주 작은 정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1993년 자유민주당 장기정권이 붕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하토야마는 40대의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강연 차 온 것이다. 나는 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강연을 듣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복경찰이 가방을 검사하겠다고 한다. 일본의 많은 학생들은 순순히 그에게 가방 속을 보여주며 입장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한국의 군사정권 시대에나 있을법한 일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몹시 흥분해 있었다. 여차하면 싸울 기세였다. 역으로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주최 측 학생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 따졌다. 학생들이 주최하는 행사이고, 학교 안인데 왜 내가 이 사람에게 가방 속을 보여줘야 하느냐고 따진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내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눈치였다. 적당히 보여주고 들어가면 되지 왜 따지냐는 눈치다. 결국 나는 하토야마의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 학교에는 ‘카쿠마르’(혁명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 과격 학생조직이 강연회를 틈타 시위를 한다는 첩보가 있어 사복경찰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경찰의 행동은 나의 자존심에 거슬렸고, 하토야마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두 번째는 1996년 9월의 일이다. 아사히신문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하토야마가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당시는 하토야마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 직전이었다. 1996년 10월에 총선거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당 탄생 바로 직전이었다. 그가 만든 정당은 민주당이었다. 그리고 그 민주당이 13년 후 54년 만에 일본의 정권교체를 이룬 주역이 되었고, 그 정권교체로 하토야마는 총리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일본정치의 변곡점이 되는 시기에 운 좋게 하토야마를 본 것이었다. 그리고 2014년 부산에서 그와 재회했다. 순전히 나에게만 재회이지만 말이다.

김해공항 귀빈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귀공자 타입의 하토야마가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수줍음을 타는 모습의 하토야마. 악수를 한 손이 너무나 작아 내 손에 쏙 들어왔다. 마치 여성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정대로라면 곧장 호텔에 가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저녁 환영만찬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들렀으면 좋겠다고 한다. 2001년 일본 도쿄의 신오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남성을 구하고 자신은 열차에 치여 숨진 고 이수현씨의 묘소에 참배를 하겠단다. 그가 부산 출신인 것을 알고 있었고, 부산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묘소를 찾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특한 사람이다.

고 이수현씨의 묘소를 찾아 참배와 헌화를 했다. 사진 한 장 찍어주는 사람이 없다. 함께 온 수행비서조차 사진 찍을 생각을 안 한다. 내가 굳이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었지만, 스마트폰이 대세인 요즘 그래도 한 나라의 총리까지 역임한 사람이 참배와 헌화를 하고 있는데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자 그때서야 수행비서도 못이기는 체 사진을 찍는다. 보이기 위한 참배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일본에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의인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19일 기조연설 제목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의 전진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였다. 강연의 핵심은 유럽연합과 같은 기구를 동아시아에서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중일 혹은 한중일 3국간의 과거의 문제들에 대해서 일본이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아베 정권이 보다 전향적으로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이었다.

하토야마는 자신이 9개월의 단명정권에 그친 이유도 얘기해주었다.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를 다른 나라, 적어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총리가 되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총리를 사임할 수 밖에서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제일 먼저 자신의 무능을 얘기했지만, 외교관료, 방위관료들의 저항, 즉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그들의 의지를 자신이 꺾지 못해 결국 스스로 총리를 물러날 수 밖에서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를 ‘의회정치’, 미국의 정치를 ‘압력정치’, 일본의 정치를 ‘관료정치’라고 많이 얘기하고 있는데, 역시 하토야마도 관료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총리직을 내놓고 만 것이다.

김해공항으로 가는 차 속에서 짧은 한국방문이었지만 대만족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발언을 문제삼아 우익들이 하토야마를 죽이겠다고 난리라고 한다. 도쿄시내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을 정도로 위협 세력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국이 더 안전하고 맘도 편하다고 한다. 그의 발언에는 지금 일본이 얼마나 한심한 나라가 되어버렸는지 한탄조가 섞여있다.

일본에서는 아베정권 하에서 민족차별적인 헤이트스피치가 창궐하고, 그러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할 정부는 그러한 발언에 찬동하는 사람을 주무장관으로 앉히고 있다고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자신이 정권을 더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회한도 있는 것 같았다. 총리를 한 번 더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덕담에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베는 자신의 경제실정을 덮기 위해 임기 2년도 지나지 않은 중의원을 해산했다. 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에 국회해산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명분은 전혀 없는 해산이다. 자신이 더 오랫동안 총리를 하고 보겠다는 심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국회 해산권을 사적 정치이익을 위해 남용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야당이 일치단결하여 아베 정권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직 아베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은 아베 본인의 건강문제에 달려 있다. 2007년 총리를 사임한 이유는 대장기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최근 그 병이 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약물 때문에 금방 흥분하고 화를 잘 내고 그런다고 한다. 결국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야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일본국민들도 참 안된 국민이다.

하토야마는 나와 기념촬영을 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나중에 내가 출마라도 하게 된다면, 꼭 자기와 찍은 사진을 활용해달라고 했다. 우익의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에서 자신은 별로 인기가 없다며, 그래도 한국에서는 자기가 좀 통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럴 리는 거의 없어 보이지만, 아베가 아닌 하토야마가 일본에서 더 높게 평가받게 된다면 일본이 제대로 된 나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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