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대한민국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그 칼날은 전 정권으로 급속하게 향하고 있다. 야당은 이명박 정권 시절 이뤄진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사업과정의 비리를 폭로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방산 비리 사건까지 포함해 소위 ‘사자방 국정조사’를 여당에게 밀어붙이고 있다. 집권 여당 역시 엄청난 국민 혈세가 낭비된 데다 비리까지 얼룩지면서 국정조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참에 전 정권과 밀월을 끝내고 차별을 두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여당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삼은 공무원연금개혁안과 야당의 사자방 국정조사를 맞바꾸는 ‘빅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집권 2년 동안 밀월을 보낸 신구정권 간 허니문도 끝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야당이 의지를 보이는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이뤄진 사업이라는 점에서 집권 여당으로선 부담이 덜한 편이다. 여야간 사자방 국정조사가 합의될 경우 불가피하게 신구정권 간 갈등 역시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야당은 자원외교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밝혀진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들어간 국민혈세는 석유와 가스 부문 150개, 광물 부문 238개 등 총 388개로 39조 9689억 원이 투자됐다.
이중 회수된 금액은 올해 기준 약 4조원에 불과해 10%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해외투자에 나선 석유공사의 경우 MB정부 5년간 18조원을 투자하는 등 가장 앞장섰다. 새정치연합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메릴린치에 자문료 248억원을 지급한 뒤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 등 총 4건의 사업에 대한 자문을 받고 2009년 하베스트 인수에 5조 4868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공사가 회수한 금액은 6730억원으로 회수율이 5.4%에 그친 데다 이 금액마저 재투자 명목으로 지출해 사실상 회수 금액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석유공사 5년간 18조 투자
여기에 석유공사가 2조원을 들여 구입한 하베스트의 정유부문인 ‘NARL’은 최근 미국계 상업은행에 고작 200억 원에 되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여야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메릴린치 증권 한국지사 대표였던 김형찬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로 이 전 대통령-김 전 비서관-김형찬씨로 이어지는 권력형 비리라는 지적이다. 자문사 선정 과정뿐만 아니라 부실 계약 추진과정에서 리베이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수조원이 공중분해되고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미 투입된 41조 원에 향후 31조 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스공사의 경우 이라크 주바이르 사업에 약 3조 원, 이라크 아카스 사업에 1조4000억 원, 호주 GLNG 사업에 1조2000억 원 등 앞으로 투입해야 할 투자비만 22개 사업에서 14조 원에 이른다. 석유공사 역시 해외 인수한 사업에 15조40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가 계획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여연대를 비롯해 시민단체가 광물자원 공사 등 공기업 전·현직 사장 6명을 고발했고 검찰은 사건 배당을 통해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고발 대상에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지직경제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당시 지경부 자원개발정책관),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최대 국책사업이던 4대강 살리기 공사 역시 각종 비리 의혹이 재차 불거지면서 사정기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총 22조가 들어간 4대강 사업에서 2012년 1차 턴키공사에서 19개 건설사의 담합이 드러나 111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2차 턴키공사에서도 낙동강, 금강, 한강 등 3건의 입찰에서 사전에 투찰가격과 들러리를 합의한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했다.
이번에 적발된 7개 건설사는 한진중공업, 동부건설, 계룡건설사업, 두산건설, 한라, 삼환기업, 코오롱글로벌이다. 공정위는 7개 법인에 시정명령과 함께 152억11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1차에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현대산업개발, 포스코 건설, SK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8개사에 시정명령과 1천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뿐만 아니라 경찰청에서는 골재 채취에 사용되는 준설선 29대의 제작증명서를 위조해 38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중고 준설선을 싼값에 들여와 수리한 후 새것처럼 위장해 4대강 사업이 끝난 이후 준설선을 반납하면서 보상금조로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대형건설사부터 하청업체까지 비리로 얼룩져 국민 혈세가 날아갔다는 점이 단면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국가안보 좀 먹는 ‘방산비리’ 그 끝은…
이 뿐만 아니라 방산비리 역시 거액이 들어간 만큼 국민혈세가 낭비됐다는 점에 야권은 주목해 국정조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해군이 해상침투 등 특수전을 벌일 때 쓰는 고속단정 납품과 관련된 사건이 적발되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 고속단정 납품 비리와 관련해 17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현역군인과 군무원 11명을 군에 입건의뢰 통보했다.
이들은 작년까지 4년간 해군에 납품한 고속정 13척에 중고 부품을 신품으로 속여 장착했다. 이와 함께 부품 단가 및 노무비를 부풀려 청구하는 수법으로 총 13억40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해군 관련해선 군사기밀을 빼돌린 사건마저 터지면서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검찰에 적발된 방위산업체 L사 대표는 1200t급 잠수합 도입사업인 KSS-1의 성능개량과 항만감시체계 사업 관련 문건을 또 다른 방산업체 K사로부터 넘겨받아 독일 방산업체인 C사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문건에는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 개요와 전력화 시기, 주변국의 최신 잠수함 전력 현황 등 군사3급 비밀이 담겨 있었다. 이미 해군에서는 대만산 값싼 방열팬이 프랑스산 고가품으로 둔갑해 운영하함 등 각종 군함에 장착됐는가 하면 통영함과 소해함에서도 납품비리가 적발돼 해군 역사상 가장 큰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또한 야당에서는 한 군수업체가 전투기 이륙과 정비에 사용되는 ‘시동기’를 공군에 납품하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을 사용했고 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육군의 K-2전차, 해군의 통영함에 이어 방산비리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2013년말 총 235억 원을 들여 54대 납품된 이 장비는 올해에만 200건의 고장신고가 접수됐고 공군의 전력손실을 초래했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자원 외교 그리고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방산비리가 터지면서 국정감사 실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막대한 국민혈세가 일부 권력자와 그에 결탁한 기업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해외로까지 국부가 유출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으로서도 국정조사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데다 발을 뺄 경우 후폭풍이 거세어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청와대와 여당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공무원연금개혁이 야당의 반대에 부딪힌 만큼 ‘사자방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개혁’을 맞바꾸는 식의 ‘빅딜설’이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3대 국정조사 사안이 현 정권보다 전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부담을 더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발끈한 것은 이명박사람들이다.
MB는 웃고 측근은 울고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11월12일 하남 골프회동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참석자들은 ‘사자방 국정조사’와 무관하다는 반응 이지만 격앙된 모습도 나왔다는 게 후문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정길 전 대통령 실장, 윤진식 전 대통령 정책실장, 김성환 전 외교부 안보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등 2기 청와대 수석비서관 10여 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MB정권 핵심사업들이 국정조사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이 현 정권과 ‘모종의 딜’이 있어 자신감을 표현한 건지 아니면 ‘잘못이 없다’는 것인지는 4자방 국정조사로 밝혀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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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