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손 정몽진의 주식투자 이번에도 통할까
[일요서울|김나영 기자]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한 타사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또 KCC는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주식 외에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마치 자금난에 시달리는 현대중공업을 사촌기업인 KCC가 지원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현대미포조선은 지난 19일 보유했던 포스코 주식 87만2000주(1%) 전량을 처분했다. 또 현대삼호중공업은 다음날인 20일 보유했던 KCC 주식 80만3000주(7.63%)를 전부 팔았다. 각각 2864억5000만 원, 4151억5000만 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이로써 현대중공업그룹은 이틀 만에 7016억 원을 손에 쥔 셈이다.
이어 KCC는 21일 현대중공업 주식 243만9000주를 3000억 원에 취득하겠다고 공시했다. 주식 취득이 이뤄지면 KCC의 현대중공업 지분은 6.25%로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자금 위기를 범현대가인 KCC가 지원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정몽진 KCC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사촌지간이다.
또 현대중공업 계열사들도 현금화할 수 있는 보유주식을 모두 팔아 본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더불어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중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지분 매각도 이뤄질지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은 각각 440만주(2%)와 227만주(1%)로 지분가치는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또한 이들이 쥐고 있는 현대상선 주식도 3389만주에 달해 그 가치는 3313억 원에 이른다.
만약 추가적으로 보유주식을 매각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1조5000억 원가량을 더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KCC가 현대중공업 지원사격의 신호탄을 쏜 만큼 당분간 추가 매각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보유주식 모두 파는
현중 계열사들
이 같은 결정은 KCC와 현대중공업 주가에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었다. 현대중공업 지원에 나선 KCC는 공시일인 21일 장중 -7.8%대의 깊은 골을 그렸다가 회복했다.
여기에는 현대삼호중공업이 KCC 지분을 블록딜로 처분하는 데 대한 우려도 함께 반영됐다. 전날인 20일 KCC는 현대삼호중공업의 KCC 지분 매각 공시에 -6%대, 19일에는 -5%대의 하락세를 이어갔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같은 날 장중 8.5%대의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강세를 보였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오랜만에 5.9%대의 상승폭으로 마감해 주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일제히 범현대가 지원에 나선 KCC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각 증권사마다 KCC의 목표가 하향이 이어진 것이다. 삼성증권은 70만5000원에서 67만1000원으로, 한국투자증권이 75만 원에서 68만 원으로, 키움증권은 71만5000원에서 65만 원으로 각각 목표가를 내렸다.
윤석모 삼성증권 연구원은 “KCC의 현대중공업 주식 취득이 장내 매수인지 현대중공업 계열사로부터의 매수인지는 불명확한 상황”이라며 “최근 현대중공업 그룹사들의 보유주식 매각 사례를 감안할 때 이번 주식취득은 KCC의 직간접적인 현대중공업 지원 가능성 우려가 부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만일 KCC가 취득하는 현대중공업 주식이 현대중공업의 자사주나 현대미포조선의 보유지분 일부 매입이라면 현금 지원의 의혹이 커질 수 있어 지배구조 리스크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짚었다.
펀드로까지 불리는
KCC의 결정
하지만 KCC가 별다른 이유없이 현대중공업을 지원할 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몽진 KCC 회장을 ‘숨은 주식투자의 고수’로, 또 KCC는 ‘KCC펀드’로 지칭하고 있다. 정 회장이 자사주가 아닌 타사 주식을 사들여 차익을 남기고 파는 데 거듭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음 달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상장에서도 KCC의 수익률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KCC가 보유한 제일모직 주식은 총 2125만주다. 앞서 삼성카드는 2011년 비금융계열사인 에버랜드 주식 비중을 낮추기 위해 KCC에 보유주식을 넘겼다.
당시 KCC가 7739억 원을 들여 넘겨받은 에버랜드 주식은 42만5000주(17%)로 취득단가는 주당 182만 원대였다. 그러나 액면가 100원 분할 이후 보유주식은 2125만주가 됐고 취득단가는 3만6000원대로 낮아졌다. 현재 재일모직의 희망공모가는 최소 4만5000원에서 최고 5만3000원의 밴드를 형성하고 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500억 원을 넘나드는 차익을 남기는 그림이다.
또한 제일모직 역시 지난 14일 상장한 삼성SDS처럼 상장 이후 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로 뛸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KCC의 이익은 1500억 원이 아닌 3000억 원으로 불어날 공산이 크다. 3년 만에 3000억 원의 수익은 정 회장이 주식시장의 큰손이라는 증표가 될 만하다.
앞서도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은 물론 현대차,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등 범현대 계열사 지분을 매입해 상당한 이익을 봤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매로는 10배 이상 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증권가에서는 “KCC 주식을 사거나 KCC가 사는 주식을 따라 사라”는 말까지 돌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범현대가라 하더라도 정몽진 회장의 성격으로 볼 때 단순 지원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면서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까지 염두에 둔 차익성 투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