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 ‘카트’ 개봉으로 재계가 들썩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영화 개봉 후 비정규직 문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또한 이랜드그룹(회장 박성수) 역시 영화 상영 후 과거에 불거진 비정규직 문제가 재조명되며 홍역을 예고한다. 영화 ‘카트’가 흥행하자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큰 변화가 기대되고 있는 가운데 [일요서울]이 이를 짚어봤다.
상생 외면·편법 매각 행위 드러나 질타
영화 카트는 2007년 이랜드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뤘으며 전태일 열사 44주기인 지난 13일에 개봉됐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개봉 첫날 관객 10만명을 기록하며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이처럼 카트가 흥행몰이를 시작하자 비정규직 처우와 실태도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계열사인 뉴코아와 홈에버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계산원 등 700여 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해고노동자들은 서울 상암동에 있는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고, 투쟁은 512일 동안 계속됐다. 2008년 11월 13일에야 파업이 종결됐다. 협상은 해고자 28명 중 12명의 노조간부가 퇴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16명이 복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때문에 노조간부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해당 사건이 회자되자 덩달아 이랜드그룹도 주목받고 있다. 홈에버는 2008년 홈플러스에 매각되면서 이랜드그룹의 품을 떠났다. 하지만 기업의 편법 외주화 문제와 더불어 고용 불평등 문제가 제기됐던 만큼 영화 개봉에 따른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이랜드그룹은 내부 직원을 위장계열사 대표로 내세운 사실이 드러나 눈총을 받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의 소속 직원 유모씨를 일명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개인사업자로 위장 활동시킨 것이다. 이랜드 측은 유모씨에게 산지에서 과일을 구입해 공급하게 해 419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물론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비난도 피했다.
그러다 이랜드 측이 해당 직원이 부인 명의로 세운 선과장을 회사 자산으로 편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직원과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이랜드 측은 유모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하며 법정싸움이 시작됐고, 2심 형사소송에서 유씨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며 사실상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유씨가 내부임직원 간 갈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에서 바지사장으로 나서게 된 사실이 드러났다. 비정규직 신분에서 시장개척 지시 업무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상생을 뒷전으로 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도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일로 이랜드의 관리능력부재까지 드러난 셈”이라는 비난 여론도 거세다. 복직을 기대했지만 비정규직 신분으로 계속된 시장개척 업무를 받았을 때 어떤 누구도 반란을 꿈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근본적 해결책 필요
‘카트’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이 환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를 맡은 국회 비정규직차별개선포럼도 지난 14일 국회에서 ‘카트’ 상영회를 열고, 비정규직인 ‘국회 환경미화원노동조합’ 소속 청소노동자 등 200여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김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지금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을(乙)지로위원회와 정의당 지도부 역시 시사회를 연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곳곳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집단 부당해고, 직장폐쇄, 편법 매각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케이블방송업체 씨엔앰(C&M)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은 “109명에 달하는 집단 부당해고를 당하고 각종 논란으로 얼룩진 씨앤엠 사태는 영화 ‘카트’의 내용 그대로다”면서 “대규모 집단해고에 불법이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엄중 조치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에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한편, 정·재계가 곳곳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보호법’의 향후 행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크게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금지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 2년으로 제한 ▲파견근로의 범위·기간과 관련된 보호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피하기 위해 법 시행 전 대량해고를 진행했다. 이랜드그룹 홈에버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이에 정부는 비정규직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자들은 “더 심한 악마의 법안이 나왔다”는 반응이다.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년 안에 실직하는 것보다 3년으로 시간이 연장된 뒤 실직하는 것이 더 낫지 않냐는 발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고,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란 이름으로 유료 직업소개소를 확대하는 방안 검토도 문제로 거론된다. 고령자를 중심으로 파견직이란 불안정 일자리 양산, 고용불안, 중간착취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