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회 ‘무쇠팔 최동원상’ 양현종 수상했지만 KBO와의 소통 부재
최고 권위 투수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명확한 잣대와 관심 필요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흔히들 11월 11일을 특정 과자의 날로 기억하겠지만 올해 야구계에서 11일은 매우 특별한 날의 시작이었다. 우선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넥센 히어로즈를 물리치고 통합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부산에서는 야구 전설이 된 故 최동원 선수를 기리고 한국 야구발전을 위해 탄생한 ‘무쇠팔 최동원상’이 첫 시상식을 갖는 날이기도 했다.
올해 처음 빛을 보게 된 ‘무쇠팔 최동원상’의 첫 수상자로 좌완투수 양현종(26·KIA 타이거즈)이 선정됐다.
그는 이날 부산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최동원 선배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인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에서도 나오기 힘든 기록으로 직접 투구를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자료를 통해서 봤을 때 ‘무쇠팔’이라는 애칭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현종은 또 “부산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부산시민의 뜨거운 관심과 원로 야구인들이 대거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고 시상식 내내 경건함과 책임감을 느겼다”면서 “이날 시상식에서 부산 전체에 흐르는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새롭게 확인했다. 야구 선수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동원상의 첫삽은 2011년 故 최동원 선수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기 위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최동원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엄정한 선정 기준을 통해 올해 첫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는 부산시도, 롯데 자이언츠도,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아닌 팬들 스스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사직구장 한 편에 세워진 ‘무쇠팔의 사나이 최동원 동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를 추억하기 위해 팬들과 시민들이 손수 건립비를 마련했다.
최동원상은 지난 8월 선정위원회를 꾸려 한국인투수, 국제대회 성적 반영, 매년(무조건) 1명이라는 큰 원칙을 세웠다. 상금은 2000만 원을 주기로 했고 세부 기준도 정했다.
등판 횟수(30경기 이상), 이닝(180이닝 이상), 퀄리티스타트(15회 이상), 다승(15승 이상), 탈삼진(150개 이상)과 함께 평균 자책(2.50 이하)을 고려해 선정위원회가 결정하기로 했다.
올해 수상자인 양현종은 29경기, 171⅓이닝, 17퀄리티스타트, 16승, 165탈삼진, 평균자책 4.25를 기록해 6개 기준 중 3개(퀼리티스타트, 다승, 탈삼진)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기념사업회는 “6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진 못했지만 ‘매년 한 명씩 수상한다’는 원칙에 따라 비교 우위에 있는 양현종을 첫 수상자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팬들의 아쉬운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권위에 맞게 다듬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설퍼도 야구인에게 소통의 자리로 우뚝
최동원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투수상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앞으로 한국프로야구의 새로운 지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이날 행사장은 야구원로를 비롯해 현장 관계자, 현역선수, 야구 꿈나무 등 야구인들이 참석했고 성세환 BS 금융그룹 회장, 박민식 국회의원 등 부산지역 주요 인사와 유족들, 야구팬들까지 함께 했다.
롯데 구단은 이창원 신임 사장을 비롯해 이윤원 단장, 이종운 감독과 강민호, 황재균, 박준서, 송승준, 박종윤, 김승회, 박준서, 문규현 등이 참석했고 올해 일본 소프트뱅크의 재팬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거포 이대호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460명 규모의 대강당이 가득 차면서 야구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소통하는 장이 됐다는 점에서 최동원상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시상식 마지막에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쥔 이만수 전 SK 감독은 故 최동원 선수와 40년지기로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로 건너가 야구전도사로 나설 예정이지만 시상식 참석을 위해 일정도 미룰 정도로 애착을 드러냈다.
이 전 감독은 “동원이를 처음 본 것은 1972년 청주에서 뮨교부장관기 대회를 치를 때였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동원이는 크지 않은 체구의 선수였으나 볼이 굉장히 빨랐다”면서 “당시에 그래서 우리팀(대구중)이 졌다. 그 이후부터 고등학교(대구상고), 대학교까지 결승전만 가면 최동원 선수 때문에 이길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프로야구가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최동원 선수가 가장 잘한 것은 개인이 아닌 팀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열정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오늘의 최동원 선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전 감독은 또 “최동원 선수가 운명하기 전날 병원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의식이 없었는데 나의 손을 잡고 눈으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더라. 그때는 잘 몰랐다. 어머님께서 말씀해주시는데 ‘동원이가 못한 야구를 네가 꼭 해주길 바란다’고 저의 손을 꼭 잡으셨다. 최동원 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끝까지 우리들의 최동원 선수를 성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유족인 어머님 김정자 여사는 “자식을 먼저 보내 계속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원이가 생전에 누리지 못한 영광을 제가 모두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감사하고 미안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여사는 “3년 전 저희 가족은 동원이를 갑자기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 전국의 야구팬들이 저희의 아들 최동원을 기억해주셨습니다. 지난해는 ‘무쇠팔 최동원 동상’을 사직구장 앞에 세워 살아생전 그토록 오고 싶었던 부산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셨다”며 “오늘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최동원상이 첫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이제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부산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슴 벅찬 자리인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며 벅찬 감동을 전해 참석한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아쉬움도 컸다.
기념회는 최동원상을 한국판 사이영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그만큼의 권위를 찾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팬들의 힘만으로 진행되다 보니 힘에 부쳐 보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김인식 KBO 규칙위원장이 참석했지만 KBO는 협조요청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이날 한국시리즈가 겹치면서 관심은 반토막 났다.
또 시상자 선정도 아직은 개운치 않다. 일부 팬들은 한국인으로 제한된 수상 대상자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만약 외국인 선수까지 대상자에 포함됐더라면 6년 만에 20승 고지에 오른 넥센의 밴 헤켄(31경기, 187이닝, 20승, 178탈삼진, 18퀼리티스타트, 평균 자책 3.51)이 가장 유력한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참고했다는 일본 ‘사와무라상’은 내·외국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열린 자격과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권위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최근 불거진 롯데 사태는 최동원상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롯데는 올 시즌 종료와 함께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이 사임했고 최하진 전 사장의 CCTV 사찰, 선수들과 프론트 간의 불화 등으로 위신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롯데의 행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면서 팬들과도 멀어진 상태다.
과거 롯데의 흑역사를 얘기할 때 최동원은 자주 회자된다. 그는 1984년 롯데-삼성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둬 롯데를 우승 고지에 올려놓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롯데는 최동원이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선수협회 창립에 앞장서자 1989년 삼성으로 전격 트레이드 했다. 롯데는 당시 투수력에서 크게 전력이 악화되는 걸 알면서도 선수들에게까지 시달릴 수 없다는 핑계로 한 개인에 대한 보복성 트레이드를 감행한 것이다.
결국 부산이 낳은 최고의 스타 최동원은 이후 끝내 롯데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롯데 유니폼으로 은퇴식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직함은 한화 2군 감독었다는 점도 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에 최동원상이 최고 권위의 투수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야구발전을 바라는 야구인 모두의 뜻을 모아 ‘부산의 최동원상’이 아닌 ‘대한민국의 최동원상’으로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