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제도의 전면적 개혁 호기
권역별 대선거구제 도입이 대안될 수 있어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 등이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 별표1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대 3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편차를 최대 3대 1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3대 1인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이도록 하고 관련 법 개정을 2015년 12월 31일까지 완료토록 했다. 즉, 2016년 치러질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지금의 선거구와는 다른 선거구 획정을 하여 치루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 2001년 10월 헌법재판소는 당시 4대 1이던 인구편차 비율을 3대 1로 조정했다. 그러면서 당시 재판부는 “선거구간 인구편차는 2대 1 이하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중간 지점인 3대 1을 택해 조정한 경위가 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2대 1로 조정을 한 것이다. 국회와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001년의 헌법재판소 판결을 존중하고 미리미리 선거구에 대한 조정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현역 국회의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이니만큼 최대한 늦춘 결과 다시 헌법재판소가 칼을 들이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주의였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충청권 인구가 2013년 10월 기준으로 526만 여명인데, 이는 호남권 인구 525만 여명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충청권 선거구는 25개, 호남권 선거구는 30개로 헌법에 위배된다며 소를 제기했다. 또 윤모씨는 광주광역시의 인구가 2012년 1월 기준 146만 여명으로 8개 선거구가 있는데 비해, 대전광역시는 인구가 151만 여명인데도 선거구가 6개에 불과해 표의 등가성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 총 7건이 병합돼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여 국회의원 선거구를 조정하게 되면 총62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인구기준 상한을 초과하는 선거구 37개와 하한에 미달하는 선거구 25개이다. 충북출신 정우택 의원이 제기한 소의 결과 충북에서는 의석수가 1석 줄어들게 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정치권에는 그야말로 강풍이 불어 닥쳤다. 정치권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야 한다. 1인 1표라고 하는 원칙이 고전적 의미의 평등선거 원칙이라면, 1표 1가치(one vote one value)의 원칙은 현대적 의미의 평등선거 원칙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할 것이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이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도 있다. 정치권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변화의 계기,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현대정치는 제도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소위 ‘제도론’의 기본 인식이다. 이것은 좋은 제도를 도입하는데 따라 좋은 정치 실현이 가능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표의 등가성 문제, 즉, 1표 1가치의 문제뿐 아니라, 지역패권주의 극복, 공천제도 개혁, 다양한 민심을 반영하는 정치 등을 실현하기 위한 선거제도의 전면적 개혁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결정으로 분주해진 것이 여야 각 당이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혁신을 책임지고 있는 새누리당의 보수혁신특별위원회(위원장 김문수)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혁신실천위원회(위원장 원혜영)이다. 최근 언론의 관심도를 보면 당 대표 급에 버금간다. 지난 2주 동안 백가쟁명식의 선거제도 혁신안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깊은 논의 끝에 나온 안들은 아니고 또한 당리당략을 배제한 혁신안은 물론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국면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안을 관철시켜보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새누리당 김문수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인구수를 조정하는 안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인구편차도 궁극적으로는 1대 1로 맞춰야 한다는 지론을 주장했다. 승자 독식의 단순다수제는 다수파 형성이 용이해 안정적인 정권기반을 창출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현재와 같은 우리나라의 패권적 지역주의를 견고하게 하는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기도 한 선거제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위원장은 도농 복합선거구제를 들고 나왔다. 인구가 많은 도시부는 중선거구제로 하고, 농촌지역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발상이다. 농촌지역의 유권자를 배려한 발상으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선거제도가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다.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라면 몰라도 옆 동네와 우리 동네의 국회의원이 다른 제도 하에서 선출되어 같은 국회의원 역할을 수행한다면 납득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많을 것이다.
이외에도 비례대표제의 확충, 중대선거구제 도입, 석패율제 도입,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이 현행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현행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1987년 민주화과정에서 이전의 1구 2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즉 여야 동반당선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도입된 제도이다. 따라서 정통성이 있는 제도이며, 아직까지도 국민들에게 지지받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51.5%가 현행 소선거구제 지지, 중앙일보 11월 10일자)
현행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우리 유권자들에게 제도로서의 피로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제도의 치명적 약점은 지역간 정치적 대립이 고착화된 우리나라에 도입됨으로써 견고한 지역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해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소선거구제가 결코 나쁜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거구제와 관련한 당면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칼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안은 권역별 대선거구제 도입이다. 헌법재판소가 제기한 인구편차의 문제해결, 유권자 의지의 민주적 반영, 그리고 한국적 특수성인 지역주의 완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17개 광역시도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여 인구규모에 따른 전체 의석수를 배분하고, 이 의석이 10석을 초과할 때마다 하나의 선거구를 늘리는 방법이다. 서울, 경기는 5-6개의 선거구가 생길 것이고, 부산, 대구, 인천은 2개, 광주, 대전, 울산 등은 단일선거구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될 것이다.
이 밖에 경북, 경남은 2개, 그 외 지역은 단일선거구가 되어 새누리당이 호남의 각 선거구에서 최소 1석 이상 확보, 새정치민주연합도 영남에서 같은 결과를 얻음으로써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사표를 방지하여 유권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고, 군소정당의 국회진출도 용이해진다. 또한 전체의석의 과반수를 확보하는 정당의 탄생이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연합정치를 통한 상생의 정치를 모색함으로써 정치가 보다 다이나믹하게 전개될 것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