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상 가격 하락에 매도 악순환 이어져
지수형으로 쏠림 심화…ETN 등 대안 눈길도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주가연계증권(ELS) 시장에 또 하나의 제물이 나올 조짐이다. 현대차는 이달 초 시가총액 2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주면서 주가가 15만 원대로 떨어졌다. 대장주인 현대차를 종목으로 편입했던 일부 ELS가 원금손실구간(Knock-in barrier·녹인 배리어)에 진입하는 순간이다.
ELS는 개별 주식이나 주가지수에 연계해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이다. 일반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손익구조가 복잡하지만 잘 선택하면 비교적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부분의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주식이나 지수가 급격히 꺾이지 않으면 연 6~8%의 수익을 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점은 만기 때까지 40% 이상의 가격 하락인데 횡보장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나 변동장에서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녹인 배리어는 ELS에서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간을 뜻한다. 정확하게는 옵션의 수익구조가 발생하게 되는 기초자산의 기준점으로 볼 수 있다. 만약 ELS의 기초자산 가격 중 하나라도 기준점 이하로 하락한 경우 만기까지 회복하지 못하면 원금손실이 일어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주당 10만 원짜리 주식이 3년간 6만 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원금과 함께 약정한 8%의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6만 원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일정조건을 충족해야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대장주 체면 구겨
보통은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것을 조건으로 삼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ELS에 편입된 종목들이 녹인 구간에 접어드는 순간 대량매도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ELS 편입 종목은 대부분 대장주로 정상적인 수급을 유지한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녹인 구간을 터치하면 위험에 방어하기 위해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공매도까지 합세해 주가는 더욱 충격을 받아 주저앉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ELS들이 추가로 녹인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게다가 해당 주가가 하락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들고 있는 물량을 던지며 이 대열에 합류한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직접투자자들이 모두 돌아서고 간접투자자들도 중도환매에 나서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뱅크런이나 펀드런과 같은 ELS런의 가능성과 함께 주가가 순식간에 폭락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녹인 배리어에 접어든 현대차 기초자산 ELS 발행물량은 약 500억 원에 달한다. 앞서 2012년 현대차 주가가 26만 원대일 때 발행된 ELS들이 고점 대비 40% 넘게 하락하면서 녹인에 들어선 것이다. 현재 상환되지 않은 물량을 고려하면 손실 규모는 약 100억 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는 자사주 매입 카드까지 꺼내며 주가방어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신통찮은 모습이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 14일 기준 17만 원대 후반에 머물러 있다. 저점 대비 약간은 상승했지만 아직 녹인 우려를 떨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유없는 하한가도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앞서 현대중공업이나 LG화학도 녹인 우려로 주가가 고점 대비 40% 넘게 떨어졌다. 또 S-Oil과 OCI 등도 모두 녹인 도미노에 걸려 있는 주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주식들의 경우 공매도의 타깃으로 떠오르면서 이유 없는 하한가를 맞기도 한다.
만약 녹인이 발생하면 ELS의 평가금액은 기초자산 주가와 같은 길을 걷는다. 만기 시 녹인에 빠졌던 주가가 최초 기준가의 70% 수준이 됐다면 원금도 70%만 받는 셈이다. 때문에 녹인 발생 전이라면 환매수수료를 내더라도 투자원금을 회수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미 녹인이 발생한 후에는 실익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주가가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는 편이 현명하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종목형 ELS 발행 자체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종목형 ELS 발행 비중은 지난해 11월 6.3%에서 올해 4월 3% 아래로 떨어졌다. 게다가 지난달 들어서는 처음으로 0%대를 기록하면서 종목형 ELS 외면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반면 지수형 ELS의 발행 비중은 같은 달 98.9%까지 높아졌다. 또 원금보장형 ELB 발행 비중 역시 동반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더불어 ELS 대체상품으로 떠오르는 상장지수증권(ETN) 등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의 투자처 찾기가 분주한 모양새다.
ETN은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이 기초지수의 변동과 수익이 연동되는 파생상품이다. 주식, 선물은 물론 원자재, 통화, 금리 등 다양한 자산으로 지수를 만들 수 있고 지수 등락에 따라 만기 수익이 결정된다.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ETF와 달리 실물자산을 직접 편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차이를 지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종목형 ELS에 대한 녹인 우려가 급증하면서 현대차 등 몇몇 종목의 주가가 급격하게 빠지고 있다”며 “만약 녹인을 한 번이라도 터치했다면 섣불리 환매하기보다는 주가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나으며 무엇보다도 분산투자로 위험을 헤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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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