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심리 위축' 지갑 닫은 국내 경기
'소비 심리 위축' 지갑 닫은 국내 경기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4-11-17 10:43
  • 승인 2014.11.17 10:43
  • 호수 1072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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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국민 함께 부도…해법 찾기 난항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떠도는 돈 757조원…투자처 못 찾아 대기
정부는 규제완화·내수활성화에 주력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월세가 상승이 가계의 씀씀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도통 닫힌 지갑을 열려는 사람이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규제에서 헤어나질 못하더니 최근에는 여·야의
사자방(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감사 설전에 발목 잡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 경기가 10여년 전 IMF당시보다 더 안 좋다는 비관론이 확산 중이다.
아울러 당시는 국가의 부도였다면 현재는 국가와 국민의 부도라며해법 찾기도 쉽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힘든 게 아니라 어렵다.” 모 기업 IR담당자의 푸념이다.

예전엔 돈이 없어 힘들었다면 이젠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 돈을 굴리기 어렵다는 것. 금융권도 “고객님, 펀드가 낫죠”라며 예금을 안 반기는 은행들이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엔 고객에게 예금을 받아 대출로 수익을 내는 게 은행 영업의 근간이었다면 현재는 저금리로 싼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많아진 데다 자금을 굴릴 투자처도 마땅치 않아 은행에서 아예 예금유치를 위한 노력 자체가 실종됐다”고 전한다.

이는 정부의 경제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중 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스란히 쌓이는 기현상으로, 떠도는 돈으로 불리는 단기부동자금 규모가 757조원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사·자·방 국정감사 진행을 두고 여·야가 대립각을 보이면서 괜한 불똥이 튈까 신경 쓰는 기업이 늘었고, 정부규제로 인해 신사업이 발목을 잡히면서 성장세도 주춤한다.

그렇다보니 일반 가정에서 체감하는 경기 한파는 더욱 차갑고 매섭다.

일각에선 IMF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한다. 경제계의 한 원로는 “과거 IMF때는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국가 경기가 어려워졌고, 그 여파로 실업 가장이 늘었지만 돌파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돌파 의지마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질타했다.

IMF당시엔 일반인들이 더 이상 이 같은 광경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며 자발적인 운동에 나섰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모으기 운동’이었다. 결혼반지는 물론 자식들의 돌반지까지 들고 나와 국가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3년 8개월 만에 국가 부도에서 벗어났다. 이 일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민족애를 또 한 번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국가도 국민도 돈을 쓰지 않고 있다. 말로는 힘들다 하면서 남의 일 쳐다보듯 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IMF때는 듣기 싫으면 귀를 막으면 됐지만 지금은 피부에 와 닿으니 문제인 겁니다”라며 국내 경기와 소비심리 위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도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돈이 있어도 안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09만3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 이상 늘었다. 하지만, 소비 지출은 월평균 241만2000원으로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득은 늘어났지만, 그에 비해 돈은 쓰지 않는다. 이에 따라, 가계 흑자는 94만8000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탓인지 한국 소비자의 소비심리가 세계 60개국 중 최하위권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업체 닐슨은 세계 60개국 3만 명의 온라인 소비자(한국 506명)를 대상으로 ‘올해 3분기 소비자 신뢰 및 지출 의향'을 설문한 결과, 한국의 소비자 신뢰지수는 지난 2분기보다 1포인트 하락한 52로, 세계 최하위권인 57위에 머물렀다고 지난 6일 밝혔다.

겹겹이 쌓인 악재들

소비심리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47), 크로아티아(49), 세르비아(51) 등 3개국뿐이었다.

신은희 닐슨코리아 대표는 “작년 4분기 이후 세계 소비자 신뢰지수는 꾸준하게 오르고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소폭 하락하며 여전히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며 “소비심리 반등을 위해선 효과적인 정책이 실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황을 타계할 대비책은 없는 걸까. 아직까지는 뚜렷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정론이다.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기 회복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아직은 뜬구름잡기에 불과하다는 것.

아울러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겠다며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당분간 떠도는 돈들이 안착할 곳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진석 하나은행 팀장은 “최근 몇 년간 (주가가) 등락을 반복하니깐 이익의 경험보다는 손실의 경험이 크게 다가오고, 실물 (경기 회복)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아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편중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기 유동자금에 그냥 두면서 시장을 관망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고 전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년간 저성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우리 경제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하다”며 “한국경제가 이대로 가면 일본식 장기 불황을 답습할 우려가 있고, 내수부진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불안정, 체감경기 악화, 성장잠재력 둔화 등 많은 문제점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어 “경제는 심리다. 경제정책 성공 여부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며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부동산 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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