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주 언론에는 사회지도층의 성추행 사건이 끝이지 않았다. 전 검찰 총장, 전 국립의료원 원장 등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인사들의 상식에 벗어난 성추행은 국민들을 공분케 만들었다. 지도층 인사가 연루된 성추문 사건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드러나는 경향을 보인다. 그만큼 가해자의 신분과 영향력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사회 유력인사들이 잇단 성추행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나같이 이름깨나 날리던 인사들이다. 이젠 대학교수가 성추행 가해자로 등장하는 일은 흔하다. 고위 공무원, 대기업 간부를 넘어 이제는 전직 검찰 총장, 군 장성도 성추행 가해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평소 부적절한 언행 자주 했다”
지난주 전직 검찰총장 A씨가 골프장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검찰의 수장 출신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 당한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A씨는 혐의를 적극 부인하며 언론사들에게 반박문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있지만 피해자인 캐디 B씨의 진술서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공개된 진술서에 따르면 B씨는 “총장님이 평소 부적절한 언행을 자주 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에도 여직원들에게 유사한 행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골프장 내부에서 이를 문제 삼으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추행당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고소장을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현재 골프장 명예회장이다. 하지만 피해자 B씨는 진술서에 A씨를 “총장님”이라고 불렀다.
욕실 안에 30여분 있어 강제로 끌어 안고 입 맞추고
B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A씨가 당시 여자 과장이었던 C씨와 함께 여직원 기숙사를 밤중에 찾아와 샤워하고 있던 자신을 불러내 앉힌 뒤 여러 차례 말로 수치심을 주며 희롱하고, 강제로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해 6월 성추행 당한 상황과 내용을 골프장 측에 알렸지만 중간 간부들이 “네가 참아라”며 묵살했다고 전했다. 이후 B씨는 사표를 내고 골프장을 떠나 지냈다. 하지만 최근 골프장 노조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아버지에게 알리려고 해 자신이 먼저 부모에게 털어놓고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A씨와 C씨가 기숙사에 온 시간은 밤 9시 30분~10시 사이다. A씨가 와서 룸메이트가 문을 열어줬고, 자신은 욕실 안에서 A씨가 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총장님이 도무지 나갈 생각이 없는 분처럼 느껴져 화도 나고, 온종일 일하느라 피곤하고 지쳐 짜증도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30여분간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했다.
결국 룸메이트가 건네준 민소매 원피스만 입고 거실로 나왔는데 A씨가 B씨의 옷과 어깨를 만지고 껴안았다고 했다. 특히 B씨는 “여직원들 속옷이 거실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상태여서 민망하고 불쾌해 너무 화가 났다”고도 했다.
B씨는 A씨와 같이 온 C씨에 대해서도 “총장님의 행동과 말을 듣고 본 과장은 모시고 나갈 생각은 않고 앞에서 웃기만 했다”며 “너무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 늦은 시간에 여자 기숙사에는 대체 왜 오신 거냐. 당장 모시고 나가라’고 화를 냈다”고 밝혔다. A씨는 기숙사를 떠날 때 5만 원을 주고 떠났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A씨는 “당시 B씨와 일대일로 있던 게 아니라 여직원 2명이 더 있었던 상황이고, 신체접촉도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여직원이 다음날 퇴임한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설득하러 간 것이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목격자는 두 명 1명 연락두절, 1명 라오스에
경찰은 지난 14일 B씨에 대한 1차 조사를 벌여 “지난해 6월, A씨가 기숙사 방에 찾아와 몸을 만지고, 입맞춤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 내용이 구체적이고, B씨의 진술도 고소장 내용과 일치한다”면서도 “1년이 넘게 지난 사건이어서, 신빙성이 얼마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전했다. 현재 가해자인 A씨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목격자들의 진술이 중요한 상황이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B씨의 룸메이트와 C씨가 함께 있었다. 경찰은 두 사람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참고인 조사를 하려 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C씨는 골프장을 그만둔 뒤 라오스에 머물고 있어 출석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또 룸메이트는 경찰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연락이 두절됐다.
스타 총장-선비 이미지 “상상할 수 없는 일”
검찰 내부에서는 A씨가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로 사회가 발칵 뒤집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 총수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검찰에 근무하는 관계자들도 A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평소 강직한 성격에 선비같은 스타일이셨던 분”이라며 이러한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스타 검찰총장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A씨는 과거 유명 프로골퍼가 만든 D재단의 감사를 맡기도 했다. 평소에 골프를 좋아하며 관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여자 프로골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 E씨를 골프의류 회장에게 직접 데려가 용품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골프계 인맥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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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