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3 A군 “선생님 때문에 학교 다니기 힘들다” 유서 남겨
교사들 “오리걸음 등 막으면 학생 지도 힘들다” 한 목소리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 9월 강원도 삼척시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선생님이 괴롭혀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돼 교사의 가혹행위가 자살 원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은 해당 교사에게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현직 교사가 이같은 혐의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인근 시민단체는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교사의 행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나섰지만 현직교사들은 “간접체벌을 처벌하고 징계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9월12일 오전 9시 강원 삼척시의 어느 아파트에서 중학교 3학년 A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연락도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A군을 찾아 집을 방문한 담임교사가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맨 A군을 발견해 신고했다. A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뇌사 상태에 빠져 다음날 숨졌다.
당시 A군의 방에서 ‘B(49)교사로 인해 학교 다니기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에 유가족들은 B교사의 가혹행위로 A군이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경찰은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 “B교사 자의적 판단으로 체벌”
B교사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A군과 친구들이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수차례 적발되자 이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경찰조사결과 B교사는 학생들에게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엎드려뻗치기 등의 벌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B교사는 A군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폭행을 가한 사실도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B교사는 선도협의회를 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학생들을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B교사는 선도위원회를 개최하는 등의 정당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체벌을 가했다. 또 학교생활규정 어디에도 학생들에게 오리걸음 등을 허용한 내용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B교사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및 폭행 혐의를 적용해 지난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이 관련법으로 적용한 아동복지법 제17조에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현직교사에게 아동복지법 위반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당시 영장 발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B교사의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B교사를 불구속 입건하고 계속 수사하고 있다.
유가족·시민단체와 현직교사의 엇갈린 입장
한편 A군의 유가족과 인근 시민사회단체는 ‘A군 사망 진상규명 및 교사체벌금지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A군이 사망한 9월부터 “교사 폭력으로 인해 A군이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만큼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강원도교육청과 해당 학교가 교사 폭력의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A군을 문제학생으로 취급하는 등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대책위는 서명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진상규명 및 교사처벌 금지 캠페인을 벌였다. 대책위 관계자는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 벌을 주고 폭언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민단체의 입장과는 반대로 현직 교사들은 ‘경찰의 지나친 법적용’이라는 입장이다. 중학교 교사 진모(28·여)씨는 “교사가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폭행을 가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등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접체벌이었다. 이것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적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만약 해당 교사가 이런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 교사들이 학생들 지도에 앞장설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사 이모(32)씨도 “아동복지법 위반은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으로 알고 있다”면서 “학생에게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등을 시킨 것이 학대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경찰의 법 해석을 두고 엇갈린 시선이 나오는 가운데 강원도교육청은 해당 교사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한편 생활 지도라는 명목 아래 벌어지는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한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는 보통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경우다. 지난 12일 인천에서는 자신이 근무하는 어린이집 원생의 양 손목을 끈으로 묶은 보육교사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해당 교사는 원생이 자신의 얼굴을 밀치는 행동을 하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하면 지난 7월 경기 시흥시에서는 3세 어린이의 귀를 잡아당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아동복지법 위반은 ‘아동학대’와 연결되다 보니 이번 현직교사의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의문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김모(32)씨는 “아동복지법은 어린 아동들에게만 적용되는 줄 알았다”며 “이번에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학생에게 과한 체벌을 가했다면 교사라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면서 “교사로서 학생에게 충분히 가할 수 있는 체벌이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확실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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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