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가족이 전하는 이후락 근황
단독확인-가족이 전하는 이후락 근황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8-06-03 09:36
  • 승인 2008.06.03 09:36
  • 호수 736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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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병 악화돼 요양원 치료 중”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후락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진행된 각종 음모와 전횡들을 거론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 씨(84)가 바로 그다. 제3공화국이 남긴 숱한 의혹들을 규명하기 위해선 이 전 부장의 증언이 필수다.

이처럼 중요한 인물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청문회 등 그에 대한 국가차원의 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다. 또 이 전 부장은 과거사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과도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

언론들이 이 전 부장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번 허탕 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경기도 모처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면 이 전 부장은 이미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긴 직후였다.

현재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실거주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국정원, 경찰 등 일부 기관만 알고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를 둘러싼 소문만 무성하다. 일설에는 건강하게 지낸다고도 하고 지병이 악화됐다고도 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수소문 끝에 이 전 부장의 가족들을 어렵게 만나 그의 최근 근황을 단독으로 확인했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였던 이 전 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전 부장은 박 전 대통령 정권 때 발생한 ▲DJ 납치사건 ▲박 전 대통령 비자금 관리 ▲실미도 사건 ▲관권, 금권선거 등 주요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이외에도 이 전 부장은 다수의 정치공작을 꾸민 당사자로 전해진다.


이후락 말하기조차 힘들어

일부에선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일요서울〉은 수개월 전부터 이 전 부장의 행방을 추적해 왔다.

그를 통해 지난날의 비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다.

그의 거처를 찾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경기도 모처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 가 보면 빈집이거나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그가 거주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집을 수소문해 찾아 갔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더듬고 다닌 끝에 지난달 29일 이 전 부장의 직계 가족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모씨는 이 전 부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대뜸 “그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계속 다그치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씨는 “특별하게 할 말이 없다. 언론에서 끊임없이 (이 전 부장을)찾고 있다는 소릴 들었지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가족들만 가끔 찾아볼 뿐 만나는 사람은 따로 없다 ”고 말했다.

또 이씨는 이 전 부장을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힘들 것 같다. 지금 누굴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몸이 많이 불편해서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긴 힘들다. 또 만난다 하더라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만나봐야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지병이 악화돼 식사하는 것조차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에도 과거사 절대 함구

이씨는 “(이 전 부장은)현재 A요양원에서 요양치료 중이다. 병원에서 특별한 치료가 없다고 해 외국으로 나가 치료하는 것도 포기한 상태다”며 “거동을 거의 못한다고 보면 된다.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태다. 가족들이 가끔 요양원으로 찾아가긴 하지만 상태가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 부장의 정확한 병명에 대해선 말하길 꺼렸다.

세세한 가족사를 외부에 노출시키기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이 전 부장을 찾아온 정치권 인사가 있는가라고 묻자 이씨는 “최근은 없고 전에는 가끔씩 정치권 인사들이 찾아오곤 했다”며 “지금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외부인들이 면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의 직계 가족임에도 이씨는 아직 과거 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전 부장은)가족들 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예전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가족들도 그 부분에 대해 따로 묻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론사에서 나한테 뭘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어떤 사람들은 혹시 (이 전 부장이)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쓰지 않았냐고 묻거나 일기 등을 걸 쓰지 않았냐고 묻는데 그런 일 없다”며 “다른 곳에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지 몰라도 회고록 같은 책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원래 뭔가를 일일이 기록하고 남기시는 성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의 재산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이에 이씨는 “숨겨둔 재산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의 보고서에는 이 전 부장이 스위스에 비밀정치자금을 예치하고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이 전 부장의 측근 중 한 명은 박 전 대통령이 스위스에 예치한 비밀자금이 60억달러라고 증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수출 목표가 100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며 이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또 이 전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스위스계좌를 관리했으며, 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로 명의가 바뀌었다는 괴소문도 나돈 적 있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이후 박 전 대표를 스위스로 보내 돈을 찾아오게 한 뒤 민정당 창당 자금으로 썼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이 때 따라갔던 보안요원이 수고비로 5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해 진실여부를 놓고 정가에 파장이 일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선 이 전 부장의 영향력이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정재계의 막강한 실세가 이 전 부장과 복잡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락 일가 아직도 건재

이 전 부장은 과거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사장 등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른바 ‘이후락 5인방’으로 불렸다.

특히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일명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알려진 한화그룹의 창업자 김종희 회장이다. SK 창업자 최종건 회장과도 매우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이 전 부장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이 전 부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큰 아들 이동익씨는 박 전 대통령의 고교동창이기도 한 호남정유 서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둘째 아들이자 현대화재해상보험 전 사장인 이동훈씨는 한화 창업자 김 회장의 딸 김영혜씨와 결혼했다. 말하자면 이동훈씨는 한화 김승연 회장과 처남 매부지간인 것이다.

막내 아들 이동욱씨는 SK그룹 창업자 최 회장의 딸 최예원씨과 결혼했다.

또 이동훈씨의 처남인 김승연 회장의 장인은 얼마 전까지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던 5선 의원 서정화씨다. 서 전 의원은 중정 차장 출신으로 이 전 부장과 서로 연결되는 사이다. 게다가 이 전 부장의 사돈인 서 사장은 서 전 의원의 6촌형이다.


#이후락은 누구?

최고권력 흥망성쇠 지켜본 산증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최고의 실력자로 통했다.

5·16 군사정변 당시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의해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지내고, 1963년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이 전 부장은 김형욱과 같이 국민들에게 원성을 많이 받는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1969년 10월 20일, 3선 개헌 직후,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부장을 주일 대사로 내보내고, 김형욱과 같이 해임시킨다.

1970년 12월 21일에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부장을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하고,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선거 총지휘권을 맡겼다.

제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부장을 1972년 5월에 평양에 보내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게 했다. 1972년 5월 4일 새벽, 김일성과의 사상초유의 남북 비밀회담을 열었다. 이날의 밀담은 남북한 당사자가 강대국에 대한 공동 경계심을 확인하고 남북 간 합의를 도출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강조한 말이 오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마침내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이 선포되고, 1973년 12월 1일 이 전 부장은 3년 간 지킨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 전 부장‘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소위 윤필용 사건에 의해 해임 당한다.

그 후,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1979년 민주공화당의 유정회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자, 그는 완전히 정계에서 물러났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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