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 D씨 “상대후보 지지율 높자 살인청부”
현직 국회의원이 살인을 청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 18일 수원지검 형사1부(부장 박종기)는 1999년 돌연사 한 A씨가 16대 총선에 출마하기위해 선거를 준비하던 중 상대 후보자 B씨의 사주로 살해됐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지난달 접수했다고 밝혔다. 진정서를 낸 이들은 다름 아닌 A씨의 유족들. A씨가 사망한지 9년이나 지난 지금, 유족들은 왜 이제와 진성서를 낸 것일까. 유족들은 A씨가 사망할 당시 과로사한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으나 미심쩍은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사망원인을 규명할 길이 없어 의사의 소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흐른 뒤 유족들은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를 본 가족들은 경악했다. 편지는 A의원이 과로사 한 게 아니라 청부업자에 의해 타살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이에 유족들은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며 검찰에 진정서를 낸 것이다. 당초 수원지검은 사건을 관할 지역 검찰청으로 이첩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직접 수사하기로 하고 특별 조사반까지 꾸려 사건을 전면 재조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A씨 유족 등을 상대로 기초조사를 끝낸 뒤 지난 16일 사건 관할인 춘천지검으로 이 사건을 이첩한 상태다.1999년 12월 말경 강원도 홍천에서 이 지역 군의회의 의원인 A씨가 갑자기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가 사망한 시각은 오전 1시 26분께.
A씨의 아내 K씨는 경찰에 남편이 전날 오후 7시께 귀가, 12시까지 TV를 시청한 뒤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날 새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과 거실에서 수차례에 걸쳐 심하게 각혈한 뒤 호흡 곤란 증세를 일으켰다고 진술했다. A씨는 병원으로 후송 중 숨지고 말았다.
호흡곤란 각혈에 의한 사망
경찰은 평소 잠을 하루 3-4시간씩 자며 의정활동을 해온 A씨가 아내에게 자주 피곤함을 호소해 온 점과 검안의사의 순안부전 호흡곤란 및 각혈에 의한 사망이라는 검안 결과에 따라 과로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유족들은 과로사한 것 같다는 병원 견해를 쉽게 납득할 수 없었지만, 불확실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차마 부검을 요구할 수 없어 그대로 장례를 치렀다.
이 사건이 잊혀 질 즈음인 지난 3월, 유족들은 지방의 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보낸 편지를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야 했다.
편지엔 A씨가 과로사 한 게 아니라 실은 청부살해 당했다는 청천벽력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편지를 읽은 유족들은 부검을 요청하지 않은 점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D씨다. 편지에서 그는 과거 A, B씨와 함께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나는 99년 B씨의 부탁을 받고 A씨를 살해했으며, 이제서야 그 때 저지른 일을 뉘우치는 의미로 편지를 보낸다”며 “당시 여론조사에서 A씨보다 지지율이 낮았던 B씨가 살인을 청부했다”고 밝혔다.
D씨는 현재 다른 살인사건을 저질러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라고도 했다.
A씨와 B씨는 군대 동기로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함께 정치활동을 해 온 사이. 이 때문에 출마직전 두 사람은 이 지역에서 선의의 경쟁자로 인식됐다. 그런 B씨가 살인을 청부했다는 말에 경악한 유족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교도소로 D씨를 직접 찾아갔다.
유족들은 D씨를 2~3차례 면회 한 끝에 살인청부가능성이 높다 결론내리고 지난달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를 접수한 검찰은 A씨의 부인과 형제 등 유족을 수차례 조사한 뒤 당시 사건 가담자와 더불어 단서가 될 만한 증거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조사에서 D씨는 “A씨를 살해하는 대가로 B씨로부터 돈을 받기로 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D씨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수집한 증거를 수집한 뒤 B씨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D씨로부터 “B씨의 의뢰를 받고 A씨의 가슴 등을 3차례 정도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폭행이 사망원인과 직접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D씨가 폭력을 행사했다 해도 그것이 A씨의 사망과 직접 연관성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왜 뒤늦게 청부살인 고백했나?
D씨가 유족에게 보낸 편지와 검찰 진술을 종합해 보면 사건 당일 평소 A씨, B씨와 친분이 있던 D씨는 저녁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A씨에게 연락해 모 약국 앞에서 만났다.
D씨는 미리 준비한 드링크제 2병 각각 1병씩 나눠 마신 후 함께 커피숍에 들렀다가 다시 제 3의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서 D씨는 A씨의 가슴 등 신체 일부를 주먹으로 3차례 정도 가격했다.
검찰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D씨가 A씨의 가슴 등 신체를 가격당한 게 사실이라 해도 이 행위 때문에 A씨가 각혈과 호흡곤란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가슴은 단단한 갈비뼈로 보호되고 있어 주먹을 친다고 해서 장기가 쉽게 파열되지 않는다는 게 의사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내부의 장기가 파열됐다면 A씨가 아무런 통증도 호소하지 않고 집에서 태연히 TV를 보다 잠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다른 살인사건을 저질러 현재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D씨가 왜 뒤늦게 범행을 털어놓았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D씨는 단지 양심의 가책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한편 B씨 측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며 D씨가 말한 모든 내용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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