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대 재력가 ‘80일간의 납치극’ 충격
1천억대 재력가 ‘80일간의 납치극’ 충격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5-27 11:40
  • 승인 2008.05.27 11:40
  • 호수 735
  • 1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동기동창이 공범들과 짜고 1천억대 부동산 재벌을 납치해 무려 2달여간 감금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21일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김모(53)씨를 80여일 동안 납치·감금한 뒤 108억원의 현금을 뜯어낸 대학동창 이모(53·전과2범)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씨와 공모한 주범 김모(50·전과17범)씨와 달아난 일당 7~8명을 쫓고 있다. 납치범 일당은 피해자 김씨의 부동산을 담보로 78억원을 대출받고 예금 30억원을 가로챈 혐의다.

김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3월 1일. 김씨는 대학동기인 이씨와 그의 소개로 만난 주범 김씨 등과 함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모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난 뒤 ‘잘 아는 술집이 있으니 셋이서 한잔 하자’는 이씨 권유에, 피해자는 김씨가 모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태원에 도착하자 동창 이씨는 “잠깐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차에서 내렸고, 피해자는 갑자기 나타난 2명의 괴한과 운전석에 있던 김씨에게 온 몸을 제압당해 납치당하는 신세가 됐다. 일당은 무려 80여일 동안 피해자를 서울 강남과 충남 천안 일대 모텔에 감금했다.

또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를 위협, 여동생에게 1주일에 1~2번 “사업 때문에 바빠 집을 비운다”며 안부전화를 걸도록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뿐만 아니라 범인들은 피해자에게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강제로 먹인 뒤 ‘경찰에 신고하면 너도 마약사범으로 붙잡힌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지난 5월 12일 피해자의 여동생이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오빠가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어딘지 이상하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꼬리가 잡혔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피해자 금융거래 내역을 파악해 100억원이 넘는 거액이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자 추적
에 나선 것.

수사망이 좁혀오자 불안감을 느낀 동창 이씨는 수사 착수 1개월여 만인 지난달 20일 경찰에 자수했다. 일당은 같은 날 새벽 피해자를 집 근처에 풀어주기까지 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그 자리에 데리고만 갔을 뿐 납치나 감금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 계좌에 10억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 공모 혐의가 짙다고 보고 있다.

한편 필리핀으로 달아난 주범 김씨가 지난 5월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22일 오후 12시30분 필리핀에 체류 중인 한국인으로부터 “납치사건 주범인 김씨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내용의 112 신고를 받고 필리핀 경찰의 협조를 받아 필리핀 마닐라의 하얏트 호텔 로비에 있던 김씨를 붙잡았다.

하지만 필리핀 경찰은 김씨가 필리핀 실정법과 이민법 위반 사항이 없어 이날 오후 다시 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강제송환 요청을 해 놓았지만 판단은 필리핀 경찰이 하는 것”이라며 “김씨가 필리핀 당국에 의해 풀려났다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허술한 대처로 다잡은 범인을 놓친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