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가? 짐승인가? 무서워 신고도 못했다”
“사람인가? 짐승인가? 무서워 신고도 못했다”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5-20 10:51
  • 승인 2008.05.20 10:51
  • 호수 57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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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 대신 각목 든 ‘조폭 학원장’

조직폭력배 행세를 하며 학원 강사들에게 각목과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막장 학원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20대 여강사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학원장에게 엎드려뻗쳐, 팔굽혀펴기 등 군대식 기합을 받았을 뿐 아니라 각목과 야구방망이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불에 달군 흉기로 생살을 지지는 ‘불고문’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지난 13일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강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학원장 박모(32)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원장은 폭행 뿐 아니라 피해 강사들을 상대로 수 억 원의 돈을 뜯어내려 신체포기각서까지 쓰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사건 진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경찰은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분필대신 각목을 든 ‘조폭 학원장’의 백태를 낱낱이 들여다봤다.

울산남부경찰서 강력4팀 관계자에 따르면 박 원장은 지난 9일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보습학원 강의실 안에서 영어담당 강모(29)강사와 수학담당 김모(26·여)강사를 감금한 채 폭력을 휘둘렀다.

박 원장이 몽둥이를 든 이유는 학생들의 성적 때문이었다. 이들이 가르치는 학원생들의 석차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학부모의 항의전화가 이어졌고 분개한 박 원장이 “학원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강사들 군기 잡기에 나선 것이다.


“돈 없으면 몸 팔아서라도…”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 밤 피해자들을 학원에 불러들인 박 원장은 빈 강의실에 강씨와 김씨를 몰아넣고 팔굽혀펴기와 쪼그려 뛰기 등 군대식 ‘얼차려’를 강요했다.

밤이 깊어지자 박 원장의 비상식적인 ‘강사 길들이기’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두 강사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킨 박 원장은 각목을 손에 들었고 곧 매서운 매질이 시작됐다. 강씨는 물론 여성인 김씨에게도 예외란 없었다.

강사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내리치던 각목이 부러지자 박 원장은 미리 준비했던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피해자들이 매질에 못 이겨 바닥에 쓰러졌지만 박 원장의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이성을 잃은 그는 강사들이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강씨가 강의실에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자 박 원장의 엽기적인 가학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예리한 흉기를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달궈 강씨의 허벅지와 종아리, 옆구리, 손등을 지지는 ‘불고문’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또 박 원장이 강사들을 상대로 수 억 원의 배상금을 뜯어내려한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원장은 강사들이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학원 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이들에게 각각 1억 5천만원씩 모두 3억원의 변제 각서를 쓰게 했다.

특히 강씨에게는 ‘돈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니 눈이나 콩팥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게 한 뒤 이를 보관해 온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는 동안 성인 남녀인 두 강사는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박 원장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린 탓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피의자 박씨가 강사들에게 자신을 ‘울산지역 조직폭력단원 출신’이라 소개했고 피해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협박을 퍼부었다.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겁먹을 수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나 울산 ‘어깨’ 출신이야”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박 원장은 조직폭력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의 허풍에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속아 넘어간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 원장의 폭행은 지난달 중순부터 수차례에 걸쳐 저질러졌다.

폭행은 주로 학생들과 다른 강사들이 모두 귀가한 새벽시간을 골라 은밀히 벌어졌다. 결국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장 학원장’의 폭행 사실은 머지않아 경찰의 귀에 들어갔다. 참다못한 피해자 가족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박 원장이 휘두른 폭력 탓에 강씨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그는 가족들에게 박 원장이 저지른 만행을 힘들게 털어놓았던 것.

마침내 가족이 나서 박 원장을 경찰에 신고, 막장 학원장의 덜미가 잡혔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박 원장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피해 진술을 하는 동안에도 “절대 보복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여강사 김씨는 진술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한편 박 원장 학원에 고용된 강사는 모두 7명이었다. 이들 중 피해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경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전혀 몰랐다”고 말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박 원장과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진술의 진실성을 놓고 수사팀 일각에서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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