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초등생사건 이후 미제 부녀자 실종사건 종결?

안양초등생납치 살인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던 지난 3월 24일, 경찰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청 송강호 수사국장은 이날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을 계기로 경기남부지역에서 발생한 미해결 살인사건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등 이 지역 실종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필요할 경우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이 같은 발표는 미제사건에 대한 강력한 해결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언론은 각종 실종·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지금 경찰에는 이때의 의지가 온데간데없다. 경기남부 미제 강력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수그러들자 수사의지와 계획이 덩달아 가라앉은 것이다. 안양초등생 사건이 드러난 지 두 달이 지났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경기남부지역 실종자들에 대한 수사와 이 지역 미제사건에 대한 경찰의 범인 추적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현장을 다시 가 봤다.
수원지검이 지난달 11일 안양 초등생 이혜진.우예슬양을 유괴해 살해한 혐의로 피의자 정성현(39)씨를 구속기소함에 따라 두 어린이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일단락됐다.
그러나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 실종·피살사건과 정씨의 추가범행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한달새 안양·군포·수원·화성 등에서 발생한 5건의 부녀자 실종사건 가운데 일부는 정씨의 사건당일 행적이 입증되지 않았다. 이에 경찰과 검찰은 다른 범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다른 사건 누가 범인인가
경찰이 정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경기남부에서 발생한 다른 범행도 정씨의 소행인가 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정씨를 조사한 결과 경기남부 실종·살인 사건 중 군포전화방 도우미 살인 사건만이 그의 범행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나머지 4건에 대해선 범행일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사건들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정씨는 유영철 정남규에 이은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부각됐다. 경찰은 정씨가 경기남부 연쇄살인의 열쇠일수도 있다 판단하고 정씨 조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 움직임은 그동안의 연쇄살인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는 분위기로 번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의 추가 범행가능성은 흐려졌다. 증거와 더불어 자백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의미는 나머지 부녀자 실종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씨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시점에 이르자 경찰 안팎에선 다른 실종 사건에 대한 경찰수사도사실상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씨가 검찰로 넘어가자 이는 현실로 다가왔다. 잦아드는 여론의 목소리와 함께 경찰의 수사움직임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경찰은 “계속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단서가 빈약해 쉽지 않다”는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부녀자 실종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도경찰청과 군포경찰서 안양경찰 등은 현재 사건 수사를 거의 손 놓은 상태다.
군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실종사건에만 매달릴 순 없는 처지다”면서 “실종자에 대한 수사를 전혀 안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청의 관계자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가능성에 대해 “그 사건은 공소시효도 지났고 부녀자 실종과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돼 재수사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부녀자 실종 사건에 대해 “예하 서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단서가 빈약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주변 야산 수색과 더불어 탐문수사 등 그동안 동원 안 해 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단서를 찾는데 실패했다. 지금 새삼스럽게 더 진행할 뭔가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전국을 뒤흔들 당시 사건수사 최전선에 섰던 조광식 전 형사반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조 전 형사는 “범인은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처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J씨가 이번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를 일”이라면서 “부녀자 실종 사건을 수사한다면 그에 대한 조사를 한번 쯤 제대로 진행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씨를 조사해 보면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J씨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아니다’로 내려졌다. 경찰은 실종된 부녀자들이 자동차로 납치됐을 것으로 보고 J씨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살폈지만 그는 자가용이 없었다. 이를 이유로 경찰은 J씨는 용의자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J씨를 화성사건의 진범으로 보고 있는 이는 조 전 형사 외에 또 있다. 바로 온라인상에서 미제사건 추격자로 잘 알려진 송행대씨다.
송씨는 “경찰은 수박 겉 핥기식 수사만 하고 있다. 최근 수원을 방문해 경기도청과 다른 경찰서를 가보니 지금은 실종자들에 대한 수사를 거의 접은 상태였다”며 “경찰이 J씨가 자가용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용의점에 대한 조사를 안했다. 하지만 J씨는 운전면허가 있다. 꼭 자가용이 있어야 용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경찰의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인 바로 코앞에 있어
또 송씨는 J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수원 화서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J씨를 우연히 보게 됐다고.
송씨는 “내가 먼저 J씨를 보고 몸을 숨겼기 때문에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는데 어디론가로 가고 있었다”며 “지하철에서 그가 휴대폰을 꺼내들 때 그의 손에 난 흉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성사건 당시 범인의 모습을 본 유일한 목격자인 강원태씨는 범인의 왼손에 밤알 크기의 점같은 흉터가 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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