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총알은 명백한 확인사살용”
두 번째 총알은 명백한 확인사살용”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5-15 12:51
  • 승인 2008.05.15 12:51
  • 호수 73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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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인 필리핀 피살사건 전모
필리핀에서 살해된 60대 여성 재력가의 피살 사건이 200억대 유산을 둘러싼 가족간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필리핀 바탕가스주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한국인 여성이 발견된 것은 지난달 3일 저녁. 피살된 여인은 한국에서 수백억대 재산을 소유한 박모(66·여)씨로 밝혀졌다. 사건을 접수한 현지 경찰과 우리 수사관들은 박 여인의 죽음이 단순 살인사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시신과 함께 5만1700페소(우리 돈 120여만원)의 현금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 아니라 정확히 급소를 노려 총을 쏜 범행 수법도 우발적 범행이나 강도의 소행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발의 총탄 중 나중 것은 확인사살용이라는 현지 경찰의 분석도 나왔다. 때문에 수사팀 내부에선 전문 킬러가 고용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200억과 2발의 총성. 필리핀 외곽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

박 여인의 시신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약 110km 떨어진 바탕가스주 도로변에서 발견됐다. 시신은 머리에 45구경 실탄 2발을 맞은 상태였고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범인이 처음부터 박 여인를 살해할 목적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청 외사수사과에 따르면 박 여인 시신은 함께 필리핀에 머물고 있던 딸 서모(40)씨 결정에 따라 부검과정 없이 이틀 만에 화장됐다. 필리핀 현지에서 약식으로 치러진 박 여인 장례식에는 두 딸과 사위, 12년 전 이혼한 전남편(70)이 참석했다. 이들은 장례를 치른 뒤 지난달 8일 함께 귀국했다.

박 여인이 살해된 뒤 장례식이 치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닷새 지나치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들 가족의 뒷수습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전남편 서씨는 박 여인이 살해된 다음날인 4월 4일 관광 차 필리핀 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관광을 하러 필리핀에 들렀다 아내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딸들과 함께 장례를 치른 뒤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틀 만에 서둘러 화장 왜?

시신을 이틀 만에 서둘러 화장한 이유에 대해선 함께 필리핀에 머문 큰 딸이 설명했다.

딸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하다 퇴직한 재원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머니가 평소 깔끔하고 단정하신 분이었다. 그런 분 몸에 (부검 등) 칼을 대고 싶지 않았다. 현지 시신 보관 시설도 좋지 않아 서둘러 화장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을 해소하기에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수사팀의 입장이다.

박 여인의 남동생(57)은 ‘누님의 죽음에 전남편과 두 딸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며 서초경찰서에 지난달 10일 진정서를 제출, 의혹에 불을 당겼다.

서초경찰서 강력4팀은 박 여인 재산을 관리해온 변호사를 통해 숨진 박 여인의 유언장 내용이 최근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동생들과 외손녀를 상속자로 지목했던 것이 딸 서씨에게 유리하도록 바뀐 것.

진정서를 낸 남동생 2명은 “유언장 내용이 바뀌자마자 누님이 변을 당했다. 분명 재산을 노린 조카가 제 아버지와 짜고 누님을 해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역시 사고 소식을 듣고 필리핀 현지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서씨의 행적이 경찰 진술과 상당히 다른 정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동생 박씨는 “조카가 사고 직전 필리핀 현지 운전사에게 바탕가스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본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필리핀 경찰 수사 자료를 보면 ‘딸이 사건을 덮으려는 인상이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며 서씨가 사건에 깊게 관여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딸 서씨는 ‘말도 안 되는 음해’라며 펄쩍 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삼촌이 평소 어머니의 재산관리인 노릇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횡령했다.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알고 얼마 전 삼촌을 고소한 상황”이라고 받아쳤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필리핀 경찰 수사결과를 넘겨받아 검토해 본 결과 박 여인과 동행한 딸의 행적에 수상한 점이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며 “박 여인의 남동생과 서씨를 모두 불러 조사 중이다. 또 휴대전화 사용 내역과 계좌 추적을 치밀하게 하고 있는 만큼 곧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여인이 숨진 필리핀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딸 서씨의 행적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증언이 나와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7일 한 일간지가 입수한 현지 교민 녹취록에 따르면 교민들은 서씨의 행적에 적지 않은 의문을 제기했다.

서씨는 현지 경찰 조사에서 “(사건이 벌어지던 날)오후 6시쯤 마닐라에 있는 샹그리라호텔에서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리핀 교통 체증을 생각하면 마닐라에서 바탕가스까지 적어도 4시간은 걸린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주장이다.

교민들은 또 “서씨의 행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지 운전사의 말도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지 경찰에 “오후 6시께 마닐라에 있는 파크스퀘어에 모녀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딸 알리바이, 유언장 조작 의문

그러나 교민들에게는 “난 딸만 차에 태웠고, 박 여인 행적은 모른다”며 말을 바꿨다. 딸 서씨가 박 여인이 살해되기 2시간 전인 오후 6시까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에 허점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서씨는 “사고를 수습하고 한국에 들어온 뒤 운전사가 계속 돈을 요구했다. 그런 사람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발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살해된 박 여인은 서울 남대문 상가 주변에서 노점상을 하며 돈을 모아 200억대 부동산 대박을 터트린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150억원의 유산 상속인을 남동생과 외손녀에서 두 딸로 바꿨고 이 때문에 친척들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는 정황이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박 여인은 투자이민 준비를 위해 지난 3월 말 한달 일정으로 딸 서씨와 함께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닷새 만에 변을 당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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