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하우스 대부… 영화 ‘타짜’ 그대로

국내 최대 도박 조직과 경찰의 '먹이 사슬'구조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달아난 조직의 전주(錢主) 최모(55)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보유 현금만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최씨는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해 온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최씨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취하고 그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속칭 ‘하우스’라 불리는 도박판을 운영하며 도박꾼들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주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씨가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조폭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씨는 조폭 뿐 아니라 경찰·정치권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며 하우스의 뒷배를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밝히고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하지만 최씨에게 도박자금을 빌렸다가 거액의 이자를 뜯긴 피해자들은 최씨에 대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온갖 비리로 연관된 인물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그는 경찰과 연계해 각종 형사사건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 노릇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제 2의 윤상림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인천지검 부천지청 2부(부장 정인균)는 수도권 일대 불법 도박판의 70%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모(55)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하우스를 개설, 도박꾼들을 끌어 모은 뒤 고리의 도박자금을 제공하며 도박판을 키웠다.
또 최씨는 서울 명동에서 무등록 불법 대부업소를 운영하면서 도박장 단속을 나온 경찰에 부탁해 적발된 일부 도박꾼의 사법처리를 무마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최씨가 불법 도박장에서 검거된 도박꾼으로부터 사법처리를 무마해 주는 대가로 받는 돈은 건당 4000여만 원에서 5000여만 원 선이다. 검찰은 이렇게 최씨의 도움을 받은 도박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그가 해결사 노릇을 통해 벌어들인 돈만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수 백 억 현찰 손쉽게 동원
검찰은 지난해 최씨의 불법행각에 대한 꼬리를 잡고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최씨는 지난해 수천만 원을 받고 경찰의 사법처리를 무마시켜 준 혐의(변호사법 위반)를 받고 있다. 현재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며 “하지만 영장이 발부되자 곧바로 행방을 감춰 신병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최씨에 대한 고발이 10여건정도 접수돼 있다. 검찰은 체포하는 데로 나머지 고발건에 대한 조사도 착수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어떤 방식으로 하우스를 운영했고 어떻게 경찰과 연계했는지 아직 밝혀진 게 별로 없다”며 “그의 혐의사실에 대해선 그가 일단 체포돼야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로부터 거액의 돈을 뜯겼다고 주장하는 A씨는 “최씨는 정말 사악한 악덕사채업자였다”며 “그는 경찰들도 돈으로 매수해 우리(피해자)가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신고에 대한 보복조치로 우리가 경찰에 연행됐다”고 분개했다.
A씨가 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최씨의 자금동원력은 막강하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현금을 전화한통이면 한 시간 내로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최씨는 도박판에 고정으로 돈을 대는 사채업을 했다”며 “그는 하우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정기적으로 경찰과 관공서에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A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최씨가 수도권 도박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거물급 사채업자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피해자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최씨에 대해 도박판의 큰 손이라거나 거물급 사채업자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재산 내역이 확인되지 않아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피해자들 말대로 최씨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검은 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의 재산내역을 추적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최씨는 김포, 양주, 고양, 시흥 등 수도권 지역에 수백억 원대 하우스를 개설한 뒤 도박꾼들에게 도박자금을 제공하면서 연리 300%이상의 고리를 뜯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사채업자들은 이자를 받아내기 위해 대부분 조직폭력배들과 연관이 있다. 그런 만큼 최씨도 조폭들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은신처도 조폭들이 제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 경찰과 ‘윈-윈’ 관계
피해자들에 따르면 최씨는 경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A씨는 “최씨는 경찰과 말하자면 공생관계였다. 경찰은 그에게 단속 실적을 올려 진급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러면 최씨는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고 말했다.
최씨는 경쟁자 뿐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을 주던 도박 조직원에 대한 정보도 가차 없이 넘겼다. 도박자금 대출 실적이 좋지 않아 이용가치가 떨어진 거래 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경찰에 넘겼다. 그의 비열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경찰에 알려준 하우스가 단속되면 이 과정에서 검거된 일부 도박꾼들로부터 거액을 받고 경찰에 부탁해 형사처벌을 면하게 해 줬다. 말하자면 브로커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최씨가 경찰과 긴밀한 커넥션을 맺고 있기에 가능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은 도박사건을 처리하면서 전주인 최씨는 입건도 하지 않은 채, 도박장 바지사장과 도박꾼들만 처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료하는가 하면 입건된 다른 하우스의 도박꾼들을 그의 부탁을 받고 빼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최씨와의 커넥션을 통해 하우스를 적발해 승진한 경찰도 있다”며 “이들에 대한 조사도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최씨가 경찰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되긴 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며 “이 사안 역시 그를 체포해야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씨와 검은 거래를 한 경찰은 서울경찰청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아직 수사 중이므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또 A씨에 따르면 최씨는 경찰을 이용해 경쟁자를 교묘하게 제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알려 하우스를 단속하게 만들겠다거나 도박판에서 수표를 사용한 뒤 이를 도난신고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돈을 뜯기도 했다.
거물급 조폭 자금 조달
이외에도 최씨는 20여개의 코스닥 상장기업의 유상증자 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같은 정황을 잡고 현재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A씨는 “최씨는 조폭들과 함께 각종 사업에 참여했다. 전문 브로커들을 통해 주식투자도 많이 했다”며 “뿐만 아니라 유흥업소의 각종 이권에도 개입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조폭들이 강남 등지의 각종 성인 오락실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자금을 조달하고 지분을 챙겼다. 최씨는 막대한 자금을 통해 강남과 명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폭들의 실세로 군림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한편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주선)에 검거된 ‘OB동재파' 부두목 김모씨(50)도 최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06년 1월 서울 강남구 C카지노바 업주 김모씨에게 ‘동업자가 업소 지분을 포기하도록 힘써 달라'는 사주를 받고 부하조직원 7명을 동원해 김씨의 동업자인 안모씨(42·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OB동재파'는 전국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조직이 와해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최근 강남지역의 오락실 사업 등으로 자금을 축적해 다시 세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돼 왔다.
김씨의 부하조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김씨가 최씨와 연관돼 있는지 여부는 현재 확인된 바 없다”며 “하지만 김씨가 성인 오락실이나 도박장 등 사업 이권에 개입돼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최씨와 친분이 있을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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