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까지 비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불거진 새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가운데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진 ‘이명박 4대 괴담’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광우병 관련 소문을 포함,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검토했던 정책들이 ‘하루 물 값 14만원’ ‘감기 치료비 10만원’ 등 자극적인 표제를 달고 무섭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글들이 새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 폭락’이라는 핵폭탄으로 돌아오자 수사당국이 적극 진화에 나섰다. 검찰과 경찰은 관련 소문을 ‘인터넷 괴담’으로 규정, 유포자에 대한 엄중처벌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 7일 임채진 검찰 총장은 “국민이 출처도 불분명한 괴담에 혼란을 겪거나 국가 미래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유언어에 발목 잡히는 일 없도록 검찰역량을 집중 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괴담을 만들고 퍼트리는 정치적 배후가 있을 것이란 심증도 굳힌 상태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과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나 다름없다”며 발끈하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을 떠도는 ‘이명박 4대괴담’의 실체를 집중분석했다.
괴담 1.돈 없으면 죽는다? ‘의료보험 민영화’
가장 대표적인 괴담으로 손꼽히는 것은 ‘감기 치료비 10만원. 맹장수술 300만원’으로 포장된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한 불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하던 의료보험 사업을 민간 대기업이 책임짐에 따라 돈 없는 서민들은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의대생이라 밝힌 한 누리꾼이 올린 ‘의료보험 민영화의 진실’이란 글은 이 같은 불안심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30만원짜리 맹장수술이 300만원은 될 것이다. 건강보험보다 대여섯 배 이상의 보험료를 다달이 내고도 훨씬 모자란 서비스를 받게 된다. 결국 돈 있는 상위 10%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나머지 90% 국민은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혹평했다.
이 글은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를 통해 무섭게 퍼져 ‘의료보험 민영화=국민건강 파탄’의 공식을 성립시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는 것이다. 민영화를 통해 병원 간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히 의료서비스가 ‘상향 평준화’ 될 것이란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건강보험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2천847억원의 적자를 낸 건강보험재정이 파산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개편의 뼈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다.
하지만 정부 주장대로 정책이 성공을 거둘진 미지수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의원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 환자가 의료보험증을 제시하면 모든 병원에서 싼 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를 완화할 경우 서민의 보험금 부담은 늘고 환자들의 진료 불평등이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당연지정제 폐지는 없던 일로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민심은 흉흉하다.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민영의료보험 확대 등은 여전히 정부의 추진 대상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으로 꼽히는 조선 중앙·동아일보는 ‘의료보험 민영화가 실시되도 보험금 인상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측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나섰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미국 민영의료보험의 폐단을 꼬집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식코]를 예로 들며 비판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또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미국인 윈터씨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부럽다. 고국에 있을 때 독감에 걸려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입원비만 4천500만원이 나와 기겁을 했다”고 말해 ‘비싼 병원비’ 논란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괴담 2. 하루 물 값 14만원?‘물 산업 지원법’
오는 6월부터 하루 평균 물 값으로 14만원이 든다는 주장도 ‘인터넷 괴담’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쓰는 물은 평균 285ℓ이고 이를 모두 수돗물로 계산하면 현재 약 170원 정도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수도민영화로 상수도가 기업들 손에 넘어가면 ℓ당 최소 500원으로 값이 치솟을 것이다. 이대로 계산하면 하루 평균 물 값은 14만 2000원으로 800배 이상 껑충 뛴다’는 것이 수도민영화 괴담의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는 걱정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수도민영화가 추진되면 더 좋은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수도요금이 턱없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또 아직 구체적인 입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아 정확한 요금 인상폭이 결정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부의 해명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 사례를 들며 수도민영화가 실패한 사업임에도 정부는 동문서답식 해명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상수도 민영화로 프랑스 물 기업 온데오가 상수도 사업자가 되면서 2001년 이후 매년 수도 요금이 30% 가량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1994년 같은 회사가 수도사업권을 딴 뒤 2년 만에 수도요금이 600% 인상됐다.
일부에선 수도 민영화를 두고 ‘좋은 물을 위해 수도요금을 얼마든지 올려도 좋다는 식의 정책’이라며 가진 자를 위한 귀족 행정이라고 비난한다.
사실 수도 민영화는 새 정부의 정책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해 6월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 계획’에 의해 추진돼 오던 사업이다. 물 산업을 신동력사업으로 키워 국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도였다.
새 정부 들어 물 산업에 대한 정부 입장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올 상반기 입법 예고될 ‘물 산업 지원법’은 먹는 물을 공급하는 '공공수도 사업'을 '물 산업'으로 규정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관련 시민단체와 정부의 한 판 싸움이 예정돼 있어 제2의 촛불집회 열풍이 불지 관심이 모아진다.
괴담 3. 미국발 광우병 한국인 피 말린다.
광우병 괴담은 현재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여러 괴담 파문과 이 대통령 탄핵 청원 운동을 촉발시킨 촉매제다.
지난달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이후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초 정부는 국민불안에 대해 뒷짐만 진채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다가 포털사이트에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이 심각수위를 넘어서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이미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터지고 난 이후의 처방은 무의미했다.
광우병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자 메이저 언론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조·중·동은 국민적 불안을 ‘근거없는 괴담’으로 규정하고 ▲의료보험 민영화 ▲수도민영화 ▲인터넷 종량제 ▲쇠고기 광우병 ▲ 독도포기 등 주요괴담 5가지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들 언론 3사의 보도는 정확한 근거도 없이 무조건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내용만 담고 있어 정부대변언론이라는 비난만 뒤집어썼다.
특히 조·중·동의 광우병 관련 기사에 대해 우석균 보건 연합 정책실장은 “전혀 근거없는 내용을 사실인양 보도하면서 광우병 위험을 괴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괴담이다”라고 일축했다.
광우병에 대한 정부의 해명과 이를 무조건적으로 편들고 있는 조·중·동 기사에 대한 반박은 만만치 않다.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생리대, 기저귀 등 600가지 제품을 사용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는 소문에 대해 정부는 감염사례가 없고, 과학적 근거도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정부는 의약품과 화장품에 사용되는 젤라틴이나 콜라겐은 소가죽 등을 이용해서 생산되는 데 여기에는 광우병 원인물질인 변형프리온이 없다고 밝혔고 조·중·동 역시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일부 과학계는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미국 식약청(FDA)은 광우병에 걸린 소나 광우병위험물질(SRM)로 만드는 화장품은 눈이나 피부상처를 통해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고 젤라틴도 광우병위험물질로 추출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에 의해 수돗물까지도 오염된다는 소문에 대해 정부는 이 또한 과학적으로 근거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정부의 전문가 검토 보고서에서도 나왔듯이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최소감염량은 0.001g이다(웰스(Wells)박사의 연구 2007). 미국의 도축장에서도 30개월 이상된 도축 도구와 30개월 미만 도축도구를 별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칼과 도마로도 옮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와 조·중·동이 나서도 광우병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엔 검찰과 경찰이 나섰다. 괴담유포자들을 색출해 사법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으로 정부 대 국민의 대결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승자는 누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괴담 4. 인터넷 종량제 현실화?
이번 괴담 파문의 주역인 누리꾼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종량제다.
인터넷종량제란 인터넷 사용시간과 데이터 전송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따라서 종량제가 실시될 경우 인터넷을 사용하는 만큼 요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누리꾼들의 부담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종량제가 시행되면 최대수혜자는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이다. 하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높아져 인터넷 활용도가 떨어짐으로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소통량이 극심하게 저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엔 종량제 도입에 이어 인터넷 실명제까지 전면 도입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 댓글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런 불안요소들 때문에 종량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종량제 시행시 요금을 가장으로 테스트해 보는 프로그램까지 나돌고 있다.
이에 지난 2004년 4월 9일, 한 누리꾼에 의해 개설된 ‘인터넷종량제 반대 1000만인 서명운동’ 사이트(www.bcpark.net/bbs/258 750)에는 반대 서명자가 폭증하고 있다.
광우병 불똥이 종량제로 번지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일 종량제 시행 예정 괴담은 사실과 다르다며 긴급진화에 나섰다.
방통위는 종량제 추진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포함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불거진 누리꾼들은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일 뿐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방통위의 해명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
현재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이명박 탄핵 국회청원 서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서명사이트가 천만 명을 목표로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명박 정부는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는 모습이다.
사회부 특별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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