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인견 변태행위까지 모방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학교 내에서만 수십 명이 연루된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발생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 중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인터넷, 케이블TV 등의 음란물을 접한 남학생들이 이 내용을 모방, 동성(同性) 후배를 성폭행한데서 시작됐다.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 사회 공동대책위(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이 사건이 처음 실체를 드러낸 것은 작년 11월 20일 경이다. 학생들의 성행위 흉내를 이 학교 교사가 목격한 뒤 해당 학생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상담을 실시하면서 내막이 밝혀졌다. 아이들은 서로 음란물에서 본 그대로 따라하는 과정에서 변태행위까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속으로 이미 곪아 터진 게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 이 같은 실태는 이미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한다.
대구 달서구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A 교사가 초등생들을 상대로 상담한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6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한 상급생들이 음란물 내용을 모방, 3∼5학년 남학생들에게 성기를 만지게 했다.
심지어 상급생들은 어른들조차 민망해하는 변태적 성행위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은 하급생에게 음란 동영상을 억지로 보여주고 동성 간 성행위 등을 요구한 뒤 이를 거부하면 폭행하고 집단으로 따돌렸다.
또 피해학생 중 일부는 자신이 당한 것을 다시 다른 학생에게 실행에 옮겨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교육 부재가 화 불러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달 21일 중학교 1학년~2학년생인 동네 선배와 함께 여자 초등생 3명을 모 중학교 운동장에서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운동장에서 발생한 사건에만 가해자가 11명, 피해자가 8명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경찰은 가해 학생 중 일부가 지난달 29일 ‘당시 다른 여자 초교생 5명도 함께 성폭행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탐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월 ○○초교 자체 조사에서 음란 행위를 한 학생들이 40여명에 이르렀던 점으로 미뤄 가해자 및 피해자 수는 최대 100여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수치심 등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꺼리고 있어 확인 작업이 쉽지 않다” 며 “가해자들인 중학생과 초등생들은 사건이 커진데 대해 많이 놀라고 무서워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벌인 일이지만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에 계속 강도 높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파문이 확대되면서 초등생들의 위험한 성의식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일이 겉으로 드러난 실태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초등생들의 위험한 장난은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초교의 한 교사는 “가해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가 맞벌이를 한다고 들었다” 며 “부모가 집에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비교적 쉽게 음란물을 접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또 “요즘은 아이들의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초등생 중학생이라고 해도 육체적으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숙하다”면서 “그만큼 사춘기나 월경이 빨리 시작된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한 음란물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성교육 시스템으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지식을 가르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바라기 아동센터에 따르면 음란물을 보고 친구들을 상대로 이를 흉내 내거나 성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전화도 많지만 아이들의 음란물 흉내로 고민하는 부모들의 상담 요청 전화도 가끔 있다” 며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이처럼 가정에서 조차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구 초등학교 성폭행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사실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리 놀라진 않았다”고 말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까이 지켜보다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포르노 즐기는 초등생
이 교사에 따르면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 초등학교 2학년~3학년에 불과한데도 음란물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즐겨보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미술시간에 친구들끼리 포르노에 가까운 그림을 몰래 그리며 노는 아이들도 있다고 교사는 전했다.
또 이 교사는 “어른들 앞에서는 모르는 척하지만 실은 아이들도 알건 다 안다. 예전처럼 음란잡지 한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며 “우리 학교에서도 남학생이 여학생의 가슴을 만지거나 강제로 키스하려다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해당 가해학생 부모가 피해자 부모에게 주의 주겠다는 약속만 했을 뿐 이후에도 이렇다 할 성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과 학교에서 아동 성교육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언제나 사후 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설마하다 사건이 터지면 그때서야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대구 초등생 성폭행 사건 역시 피해학생 부모들이 학교 측과 문제를 논의하다 제대로 해결되지 않자 아동 성폭력전담센터와 경찰에 신고해 표면화됐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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