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처드 (전 미국 북핵특사) 회고록의 진실
프리처드 (전 미국 북핵특사) 회고록의 진실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8-05-06 16:35
  • 승인 2008.05.06 16:35
  • 호수 732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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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북한 전쟁 직전까지 갔었다”
2005년 1월 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전 미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잭 프리처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러 비리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공언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44)씨의 기자회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출간된 프리처드 전 미국 대북특사(현 한국경제연구소 소장)의 회고록 ‘실패한 외교(Failed Diplomacy)’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회고록은 DJ정부 시절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엇갈렸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책의 국내 출간이 시의적절한 점도 주목을 끄는 요소다.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가고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어 대북정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이때, DJ·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나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비리를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지난달엔 김기삼씨의 망명이 허락돼 DJ의 대북 불법지원 의혹에 다시 불이 붙고 있는 시점이다.

프리처드 소장의 회고록 ‘실패한 외교’는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그 내용을 들추어 봤다.

프리처드 소장은 2008년 안에 북핵 문제의 진전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2007년 말,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0월 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 정상회담이 열렸던 시드니에서 부시 대통령의 지지성명을 공개적으로 이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런 요구에 짜증을 냈다.

프리처드 소장은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북-시리아 커넥션 은폐

또 프리처드 소장은 부시의 북핵문제 진정을 향한 열망, 시리아 핵 커넥션, 북핵의 전략적 가치 등을 분석해 볼 때 현재 한국 정부는 이 북핵 6자 회담을 통해 성과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접근은 부시 행정부가 몇 년 동안 선호했던 방식”이라며 “본질적으로 부시 행정부는 임기 내에 실질적 진전을 이루어내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또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프리처드 소장에 따르면 북한의 주변국들은 북한의 핵무기 목적을 매우 우려했다. 북한은 다수의 핵탄두를 축적하여 공격적인 핵 위협국이 되겠다는 비밀스런 소망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은 기본적인 핵 개발 목적을 달성했다.

미국은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2단계 공약(핵 불능화와 신고)을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차질이 빚어졌다. 북한이 시리아 핵 프로그램 개발에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프리처드 소장은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은 터키 국경근처의 시리아 시설을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공격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워싱턴으로부터 많은 정보와 의혹들이 흘러나왔다” 며 “이때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설은 북한의 지원을 받아 건설 중인 원자로였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이로 인해 부시 정부는 극도로 불안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프리처드 소장은 “수많은 의혹제기로 문제가 복잡해지자 부시 행정부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고, 이 문제와 관련된 논의를 일절 거부했다”며 “몇몇 의원들에게만 제한적인 브리핑을 했고, 급기야 일부 의원들은 6자회담 진전을 위한 행정부의 재정지출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이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시리아 핵 프로그램 관련 여부는 비밀사항”이라고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 말할 정도로 중대했다.

북한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면서 북한을 6자회담의 틀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부시 행정부는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협상을 지속하기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지원 혜택을 줌으로써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기 때문이다.

최근 북-시리아 핵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나자 부시 행정부가 이 사실을 공개한 의도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이는 지난날의 정책방향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에선 부시가 지금의 한국정부와 협의 끝에 북한에 대해 다시 강경책을 쓰기로 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DJ의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와 어떻게 엇갈렸는가 하는 것이다.

프리처드 소장은 이에 대해 서해교전 당시 한미관계가 얼마나 기괴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적고 있다.

프리처드 소장은 “200년 7월 1일 한국의 군인 몇 사람이 전사한 서해교전 사태의 와중에 북한과의 회담은 부적절하다고 DJ정부에 말하고 북한과의 만남을 철회했다” 며 “그것은 서해 사태에 따른 올바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해군 사이의 충돌을 무시하고 같은 달 10일로 예정된 평양 회담을 계속 추진하라고 미국에 촉구했던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고 폭로했다.


“DJ 서해교전 무시해 요청”

당시 부시 행정부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협상단을 7월 10일 평양에 보내기로 북한과 합의한 상태였다.

북-미 관계 개선 방안 논의를 위한 것으로 언론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리처드 소장은 “당시 한국의 담당자에게 당신들의 시민들이 이제 곧 평양을 대할 때 평상시와는 다른 대응을 요구할 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며 “예상대로 DJ가 전사자 장례식에 참석치 않고 월드컵 폐막식에 참가하자 국민적 분노가 터져 나왔다”고 썼다.


북한 정밀타격하려 했다

이는 DJ 정부가 국민적 여론은 무시한 채 오로지 대북 정책 추진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또 프리처드 소장은 서해교전으로 미국의 평양방문이 연기된 것에 대해 “평양 방문 연기는 북한 외무성이 바라던 바였다. 마치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을 찾고 있었던 듯했다” 며 “시간이 지난 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했다. 내가 평양에 직접 전화해 서해사태 해결을 촉구하자 1996년 12월 잠수정의 한국 영해 침범사건 조차 사과하지 않았던 북한은 곧바로 서해사태에 대해 유감의 뜻을 서울에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다시 말해 북한은 미국의 방북일정을 연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서해교전 사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는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미국은 자국이 일으킨 군사행동에 대해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면 한국에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경론자들은 2006년 7월 4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려했을 때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를 정밀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강경론자들은 평양이 이런 공격을 제한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이고, 그러면 한국에는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는 것이다.

프리처드 소장은 “평양은 이런 공격을 제한적 공격인지 정권 붕괴를 위한 대규모 군사공격인지 구분할 수 없다”며 “때문에 미국의 공격은 북한이 서울에 가공할 만한 폭격을 쏟아 붓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 수뇌부도 이같은 견해로 폭력을 반대해 공격계획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에 앞선 같은 해 6월 북한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려 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주요 동맹국들에 전화를 걸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의 노 전 대통령에겐 전화를 걸지 않았다.

미국은 안보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파장을 가진 결정 과정에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얻은 북한의 주요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과는 긴밀히 협조를 유지했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정보공유에서 매우 비밀스러웠다고 프리처드 소장은 전했다. 대조적으로 뉴욕채널을 두고 정보를 운용한 일본은 미국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정작 나누는 것엔 인색했다.

일본 정보부의 아시아대양주국 국장 다나카 히토시는 북한사람인 미스터X와의 비밀접촉을 통해 두고 일급정보들을 얻었다고. 이 미스터X의 정체는 다나카 국장이 끝까지 입을 다물어 끝내 밝히지 못했다.

프리처드 소장에 따르면 일본은 그를 통해 미국이 얻는 북한 정보보다 한층 더 깊은 내용의 정보를 취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알려주기 전까지 넋 놓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보력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프리처드는 누구?

프리처드 소장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의 외교적 전환기에 현장을 경험한 인물이다. 28년간의 군복무를 거쳐 1996년 6월부터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국 국장을 역임했다.

또 대북협상 특사 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미국 대표로서 2001년 3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부시행정부의 현실감 없는 정책에 절망하면서 ‘실패한 외교’의 진행과정을 지겨 본 관찰자다.

6자회담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프리처드는 직책상 자신이 협상 대표가 되어야 하는데도 소외되자 사표를 던졌다. 그 후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2년 반 동안 일했고, 현재는 워싱턴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소(KEI)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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