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천 대표의 ‘민주당호’가 통합신당의 급류에 휘말려 휘청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김홍업 의원의 당선을 계기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박 대표의 ‘소통합론’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박 대표를 향해 연일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지나치게 원외 인사들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른바 ‘박상천 살생부’가 범여권을 강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현재 준비하고 있는 통합신당 움직임에서 국정 실패 책임자, 좌파 성향 인사, 친노 인사 등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현재의 열린우리당과는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박 대표는 이념과 정책이 다른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합칠 경우 ‘잡탕정당’에 불과하고 곧바로 내분 사태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이유로 들었다. 두 당이 당 대 당으로 합칠 경우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도 지기 때문에 대선 전략으로서도 필패라는 것이다.
박 대표의 ‘살생부’에는 중도개혁주의자가 아닌 사람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들, 장관으로서 정책 결정이나 노선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 당 의장을 지내며 좌편향의 진보노선을 고집한 사람들이 언급됐다.
열린우리당 유력 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전의장을 비롯, 이해찬·한명숙 전총리, 유시민 장관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힘을 합쳐도 대선 승리가 어려운 데 ‘소통합’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원외 인사인 박 대표가 대선이 아닌 총선을 염두에 둔 나머지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정세균 의장은 “박 대표가 누구와는 못한다고 하면서 소통합만 추진하겠다고 한다”며 “살생부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자존심 버리고 갈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심스럽다”고 일침을 가했다. 초재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도 “박 대표의 소통합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입장 표시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해 뛰고 있는 배기선 의원은 “소통합으로 문을 닫아 걸면 대통합 세력에게 압사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며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 등을 분리해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 원외 위원장들은 열린우리당과 당 대 당 통합할 경우 현역 의원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지
역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대선’ 보단 ‘금배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박 대표의 ‘소통합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정균환 전의원은 “뺄셈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누구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폐쇄적인 정당으로 낙인찍히고 통합의지도 의심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핵심 인사인 설훈 전의원은 민주당내 대통합세력의 구심점으로 김홍업 의원을 꼽았다.
민주당과 통합 논의를 하고 있는 중도개혁통합신당의 김한길 대표도 “박 대표가 말하는 배제대상을 다 빼고 나면 통합을 해 봐야 예비주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조만간 장상 전대표가 ‘통합과 창조’ 포럼을 발족시키는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에 패했던 장 전대표는 통합 신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장 전대표가 박 대표의 소통합론에 반기를 든다면 민주당내 상황은 더욱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의 살생부와 소통합론이 나온 이후 민주당과의 통합에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면서 “저렇게 강하게 나오면 갈 사람도 안 간다”고 말했다. 통합 신당 움직임이 민주당과의 논의에서 제3지대 신당론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674호)에서 당 대 당 통합에 반대하는 이유로 “(그렇게 하면) 백 명이 넘는 열린우리당 현역의원들이 지역위원장을 맡아 신당의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고 민주당의 지역위원장들은 사실상 소멸할 것”이라며 “이는 좌편향 진보노선의 ‘도로열린당’으로 만들어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내년 총선이 ‘소통합론’에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에선 박 대표 개인의 감정이 너무 크게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대표가 열린우리당 특정 인사들은 배제한 채 민주당을 박차고 나갔던 이인제 의원의 복당을 받아들인 것은 내적 모순이라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 “지금은 힘을 합칠 때이지 과거 섭섭했던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출할 때가 아니다”며 “박 대표가 대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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