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사관학교, 박병호, 서건창 등 진흙 속 진주 발굴 돋보여
넥센식 프론트 야구, 존중·소통으로 고정관념 탈피 새 지평 열어
지난달 31일 넥센은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무려 12-2라는 큰 점수차로 승리를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는 2008년 창단 이후 첫 한국시리즈다. 지난해 넥센은 가을야구에 진출하며 희망을 쏘아올린 데 이어 올해는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야구 팬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한국소비자포럼과 소비자연구원이 발표한 10월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 ‘러버덕’과 함께 ‘넥센 히어로즈’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들에 따르면 10월의 브랜드는 지친 일상 속에 값진 교훈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들이 높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창단부터 고생길 선수장사 비난까지
넥센은 만년 꼴찌라는 꼬리표를 이어오다 강팀으로 부상했고 올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면서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지금은 웃고 있는 넥센이지만 정확히는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적응기는 힘겨웠다. 히어로즈는 시작부터 고생길이었다. 2년 동안 재정난에 허덕이며 대형 트레이드까지 단행해 야구팬들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히어로즈가 출발부터 틀어진 것은 첫 메인스폰서였던 우리담배와의 계약 파기에서 시작된다. 2008시즌을 앞두고 ‘네이밍 마케팅’을 선언하며 우리담배와 계약(3년간 300억 원)을 맺었지만 우리담배가 경영난으로 후원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면서 양측의 관계는 틀어졌다.
결국 우리담배는 스폰서 계약을 철회했고 히어로즈는 이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까지 냈지만 패소하면서 물거품됐다.
이런 과정에서 팀은 2008년 6월말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지급해야 했던 창단 가입금 분납액 24억 원을 기한 내 납입하지 못하면서 한동안 홍역을 알아야 했다. 이후 남은 가입금을 납입했지만 불안한 구단으로 인식되며 스폰서 유치에 애를 먹었다.
여기에 구단은 2008년 말 장원삼(현재 삼성) 현금 트레이드 파동에 휩싸였다. 이는 사상 초유의 총재 승인불가라는 결과를 낳으며 야구판을 뒤 흔들었다.
이후 히어로즈는 2009년 말 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등 주축 3인방을 트레이드 시키면서 사실상 운명비를 확보해야 했다.
넥센 만난 히어로즈 세대교체로 변모

올해 한국시리즈 진출의 주역이자 과거 암흑기를 지났던 이택근은 “(2011년 말) 다시 히어로즈로 돌아올 때 우리 팀이 꼴찌였다”며 “후배들에게 부탁을 했다.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되자. 다른 팀이 상대하기 힘든 팀이 되자’고 부탁했는데 이제는 다른 팀들이 우리를 ‘강팀’이라고 인정해준다. 동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행착오를 극복한 넥센은 젊은 선수의 육성을 통해 꾸준한 세대교체를 이루며 성장의 기틀을 잡아 나갔다. ‘유망주 사관학교’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다른 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던 선수들이 트레이드를 통해 히어로즈에서 자리잡으면서 꽃을 피웠다.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박병호는 2011년 LG에서 만년 유망주, 2군에서만 본즈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넥센으로 트레이드 되면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등 최초로 두자릿수 홈런을 넘게 찍었고 2012년에는 그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홈런왕, 장타율왕, 타점왕 3관왕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여기에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도 기록하게 된다.
지난해에는 여기에 득점왕까지 추가하며 2년 연속 MVP에 올랐다. 올해 박병호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2003년 이승엽 이후 11년 만에 50홈런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해외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는 강정호는 히어로즈가 운영비 문제로 대거 트레이트를 할 때도 구단이 내놓지 않았던 주역이다. 그 만큼 팀 내에서 차근 차근 성장했던 그는 올 시즌 40홈런 유격수로 자신의 가치를 높였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결승 투런포를 가동하며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이후 현역 입대한 그는 2011년 다시 넥센에 도전해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서건창의 투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독한 훈련을 통해 주전자리를 차지했고 2012년엔 신인상까지 받으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결국 서건창은 지난달 1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한국프로야구 32년 역사상 단일 시즌 201안타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넥센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플레이오프전에 깜짝 스타로 발돋움만 김민성 역시 넥센에서 대성한 케이스다. 2010년 롯데에 황재균을 보내고 받아온 김민성은 예상과 달리 꾸준한 성장을 보이며 지난해 생애 첫 두자릿수 홈런을 때렸고 올해는 데뷔 최고 타율(0.292), 최다 타점(77개)을 기록했다.
생각하는 야구, 팀 색깔 완성…우승 넘봐
PO에서 그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김민성은 지난달 31일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3안타 7타점을 기록해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을 세웠다. 기존의 1982년 김유동과 2000년 퀸란이 한 차례씩 기록한 6타점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강팀으로 성장한 데는 지략가 염경엽 감독의 부임이 계기가 됐다. 2012년 넥센은 61승 3무 69패로 4강 진출에 실패하자 과감히 김시진 감독을 경질했다. 이듬해 지휘봉을 잡은 염 감독은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끈끈함이 2% 부족했던 넥센의 팀 색깔을 바꾸는 데 성공하며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지난해 넥센은 직전 시즌과 팀 구성원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염 감독은 부임 초부터 ‘생각하는 야구’를 강조해 왔다. 각 선수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패배에서도 개선점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실점 위기라면 1점을 잡기 위해 대량실점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최선을 다해야 패배에서도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삼진보다 투구수를 줄여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등의 어록으로도 유명하다.
염 감독의 넥센과의 인연은 단순 한국시리즈 진출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염 감독은 넥센의 전신과 가까운 현대가 마지막 우승을 차지할 때도 옆에서 지켜봤다.
당시 염 감독은 현대 구단 프론트로 현장에 있었다. 운영팀 직원이던 그는 9차전까지 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가 극적으로 우승을 거머쥐자 우승 축하연을 준비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는 “팀은 우승했지만 나는 정말 슬펐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때의 기억은 염 감독이 가장 아픈 시절을 떠올릴 때 마다 꺼내는 단골이야기다. 그만큼 아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는 데뷔 10시즌 만에 통산 타율 0.195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스스로에 대한 책망도 아직 선명하다.
그러나 그는 선수생활 이후에도 야구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후 구단 프론트로,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로, 코치 등을 역임하며 현장을 지켜왔고 넥센 사령탑에 오르며 지략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에 이른다.
어두웠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염경엽을 만들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 감독은 “당시 모든 것이 나의 대한 투자의 시간이라고 믿었다”며 “감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수석코치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그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승부욕이 생긴다”며 “지금은 팀의 리더로 중심에 서 있지 않나. 내가 중심을 제대로 잡고 더욱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는 말로 더욱 완성도 있는 넥센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바 있다.
미국식과 한국식 머니볼의 절묘한 최적화
이와 함께 넥센 특유의 프론트 야구가 강팀으로 도약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넥센은 창단 초창기부터 철저히 프론트가 주도하는 구단 운영이 뿌린 내린 팀이다. 올 시즌 프론트 야구로 내홍을 겪고 있는 일부 팀과 달리 넥센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한국형 프론트 야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넥센은 모기업의 탄탄한 자금력과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만큼 작지만 효율적인 프론트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는 이장석 대표가 있다. 그는 영화 ‘머니볼’의 소재가 된 오클랜드 오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과 비교되며 ‘빌리 장석’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만큼 그는 미국식 프론트 야구의 장점을 상당부분 벤치마킹했고 실제 선수를 판단할 때 OPS(출루율+장타율)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의 스카우트를 이 대표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는 히어로즈가 야구전문 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초기 넥센의 시련기처럼 운영미숙과 대량 트레이드 사태를 강행해 야구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수년간의 성공적인 내공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 넥센은 프론트와 현장의 상호 존중과 소통을 강조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염 감독을 선임할 때도 이 대표는 한국야구에서는 드물게 면접을 통해 감독을 뽑았다. 감독 후보군을 추린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팀의 비전과 맞는 사람을 뽑았다. 그게 바로 염 감독이다.
당시 이 대표는 “좋은 성적을 내려면 프론트의 지원과 현장의 움직임이 어울려야 한다. 염 감독은 프론트를 이해할 수 있는 감독이다. 소통이 중요한데 이 점을 중요하게 봤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창단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넥센 프론트 야구의 성공 비결은 상호 존중과 소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게 넥센은 2011년 돈을 쓸 때는 쓴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큰 변화를 주도해왔다. 당시 넥센은 팀의 리더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자유계약선수(FA) 이택근을 거금 50억 원을 주고 다시 데려왔다. 또 전직 메이저리거 김병현을 총액 16억 원에 영입했다. LG를 거쳐 한화, NC 유니폼을 입었던 송신영도 다시 불렀다.
지난해에는 4강 진출에 주역인 강정호, 김민성, 손승락, 박병호 등 주축 선수들에게 연이어 파격적인 연봉인상률을 제시해 넥센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기도 했다.
이는 선수들에게는 야구만 잘하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외부에는 넥센이 이제 생존 자체 보다 성적을 위해 투자하는 구단이 됐음을 보여줬다.
이제 넥센은 최종 성공까지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다름 아닌 한국시리즈 진출이다. 올 시즌 정상 도전은 우연이 아니다. 넥센의 중장기적인 프로젝트에 포함된 계획이라는 게 구단 측 설명이다.
지난해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해는 당당히 진출한 만큼 우승의 결실을 맺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욱이 4년 연속 통합우승을 노리는 삼성을 쓰러뜨릴지가 야구팬들의 관심사다.
지난 10년간 한국프로야구는 삼성과 SK 두 재벌의 잔치였다. 특히 삼성은 이번 시즌 최강팀이자 한국형 대기업 구단의 최고의 성공사례라는 점에서 모기업의 지원이 없는 넥센이 우승을 거머쥔다면 한국야구사의 새로운 획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센이 올해 한국시리즈를 진출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넥센 선수의 평균 연봉은 8144만 원, 이는 평균 연봉 1위 삼성의 1억8865만 원의 절반도 안돼 이미 그들은 기적을 이뤄낸 셈이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