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태국에서 비참한 최후 맞았나?
그들은 왜 태국에서 비참한 최후 맞았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4-22 16:39
  • 승인 2008.04.22 16:39
  • 호수 730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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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자매 사망 미스터리
전도유망한 20대 쌍둥이 자매가 만리 타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휴양지로 이름 높은 태국 파타야에서 시신 2구가 발견된 것은 지난 11일 오전 10시쯤. 같은 날 태국 현지 언론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보도된 뒤 하루 만에 이들 신원이 밝혀졌다. 숨진 여성들은 박지희·미희(27)씨로 쌍둥이 자매였다. 이들은 발견 당시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으며 부검결과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태국 현지 경찰은 박씨 자매가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자매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 짓기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2006년 태국으로 출국,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던 박씨 자매.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박씨 자매가 발견된 곳은 태국 파타야 인근의 작은 섬 란 콕힌 해변가다. 파도에 휩쓸린 듯 한 명은 바로 누운 상태로, 다른 한 명은 엎드린 채 발견된 이들 옷차림은 비교적 단정했다.

태국 현지 신문에 따르면 발견자 한 명은 긴 청바지에 얇은 상의 4겹을 겹쳐 입고 있었다. 그는 둔기에 얻어맞은 듯 이마가 함몰 됐고 온몸에 멍 자국 등 폭행당한 흔적도 발견됐다. 또 다른 시신은 민소매 티셔츠 2장과 반팔셔츠를 걸치고 있었고 역시 청바지 차림이었다. 오른쪽 팔목은 흰색 면 티셔츠로 묶여 있었으며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긴 옷에 청바지 차림, “성폭행 가능성”조사

또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약 20m쯤 떨어진 곳에서 자매들 것으로 보이는 여성용 핸드백 2개도 나왔다. 가방에는 간단한 소지품과 화장품이 있었으며 숨진 자매들 중 한명의 여권이 찢어진 채 발견됐다. 뿐만 아니라 태국 돈 720바트(한화 약 2만2천원)과 영국 돈 1파운드(한화 약 2천원) 등 현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두 사람의 옷차림이 단정한 것과 소지품이 모두 발견됐다는 점에서 태국 경찰은 박씨 자매가 돈이나 강간을 목적으로 한 강도에게 변을 당한 것은 아니라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지 경찰이 자매의 신원이 밝혀지기 전 전혀 엉뚱한 수사방향을 제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태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찰 담당자는 ‘이들 죽음이 동성애 관계에 얽힌 치정 살인인 것 같다’며 전혀 엉뚱한 사건 정황을 늘어놓았다. 자매가 다정하게 해변을 산책하는 것을 본 지역 주민의 말을 듣고 경찰이 자매를 여성 동성애자로 오해한 것. 경찰의 의견을 들은 태국 현지 신문들은 ‘여성 동성애자가 질투에 휩싸여 애인 머리를 돌로 내리찍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숨진 한국여성들이 자매인 것으로 알려지자 태국 경찰의 태도도 급변했다. 현지 경찰은 치정살인이라는 당초 주장을 뒤집고 자살에 무게를 실었다. 자매의 시신은 방콕 시내에 있는 경찰 병원으로 옮겨져 지난 13일 부검이 실시됐다. 부검팀은 두 사람 모두 폐에 물이 차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적인 사인은 익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부검 현장에는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장경석 총경이 함께했다. 장 총경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행 여부 등 자세한 부검 결과는 나중에 보고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직접 시신을 봤지만 한명은 전혀 외상이 없고 한 명은 이마에 멍 자국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장 총경의 말은 처음 시신이 발견됐을 때 온몸에 멍 자국이 있다는 현지 보도와 다소 차이가 있어 의문점으로 남는다.

경찰청 외사수사국 관계자는 “현지에서는 자매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뒤, 옷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고 바다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자매의 여권이 심하게 훼손됐고 사건 당일 다정하게 산책하는 이들을 목격한 주민이 있는 만큼 제3의 인물에게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06년 유학생 신분으로 태국에 건너온 박씨 자매가 치앙마이에서 아파트를 빌려 생활해왔다는 현지 보도와 함께 이들의 행적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태국 경찰 조사결과 박씨 자매는 2년 동안 치앙마이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최근 파타야에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남부파타야의 소이 부오카오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했고, 지난 10일 오전 9시경 선착장에서 산호섬으로 가는 유람선을 탄 뒤 다음날 숨진 채 발견됐다.

자매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파타야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일반 관광객은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이 때문에 2년 간 태국에서 생활하며 현지 사정에 밝은 박씨 자매가 조용한 휴양지를 찾았다 누군가에게 변을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관광학과 어문학을 전공한 박씨 자매가 일본과 영국을 누비며 오랜 유학 경험을 쌓았고 평소 활달한 성격이었다는 유족들의 증언 역시 단순 자살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파타야, 범죄 사각지대?

한편 경찰 수사가 한창이 가운데 파타야 지역 치안이 상대적으로 불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시신이 발견된 란 섬은 파타야 교민들 사이에서도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손꼽힌다는 것. 파타야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한국인 여성 관광객이 범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파타야 곳곳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성폭행과 강·절도가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현지 경찰들도 인력난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일부 현지인은 외국인 여성을 강간한 경험을 자랑삼아 늘어놓기도 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태국 유명 관광지에서 외국인 대상 범죄가 줄줄이 발생하고 있는 사실도 주목 받고 있다.

지난달 15일 태국 푸켓 해변에서 20대 스웨덴 여성이 산책 중 흉기에 질려 숨졌고, 지난해 11월에는 태국 북서부 수코타이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살해되는 등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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