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헌정회 무시하는 외교부 원로 정치인 ‘분노’
독도입도지원센터 무산 정홍원-윤병세 ‘사퇴해야’
지난 4월 뜻하지 않게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장관까지 역임한 원로정치인 김00씨에게 전화가 왔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 회원을 상대로 독도에 대해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필자의 독도 관련 논문을 읽고 내용이 맘에 들어 부탁하니 꼭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내 글을 주의 깊게 읽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4월 30일 50여명의 헌정회 회원들을 앞에 두고 강연을 시작했다. 한 시간짜리 강연이었는데 강연에는 익숙해져 있는지라 그리 어려움은 없었지만, 제일 앞자리에 원로 중의 원로가 앉아 있어 신경이 쓰이긴 했다. 한 사람은 주로 야당의원으로 활동했던 이철승 전의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한 장경순 전의원이었다. 두 분 모두 90세가 넘은데다가, 한 세대를 풍미한 정치역정을 가지고 있으니 포스도 남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분 사이의 라이벌 의식도 남달라 보였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는 한사람은 야당의 리더로, 다른 한사람은 여당의 국회부의장으로 승승장구했으니 그리 관계가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라북도 동향출신이라 두 분 사이에 묘한 긴장관계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는데, 두 분 모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철승 전의원은 헌정회 회장을 역임한 분답게 마치 자신이 강연회를 주최하는 듯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물론 질문은 없었다. 장경순 전의원은 군인 출신답게 꽤나 덩치가 있었다. 그리고 내게 독도가 우리 땅인 것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연구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강연은 끝이 났고, 주최자와 강연을 들은 헌정회 회원들과 함께 짜장면을 둘러싼 2차 모임을 가졌다. 이철승 전의원은 없었지만, 장경순 전의원은 함께 자리를 했다. 그러면서 이철승 전의원에 대해 나이도 자기가 많은 데라며,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강연장에서의 포스 싸움에서 밀렸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철승 전의원은 1922년 5월 15일생, 장경순 전의원은 1923년 3월 23일생, 단 실제 생일은 1년 더 빠르다고 한다. 90이 넘어서도 한국은 나이에 민감하다는 것을 여실히 실감했다.
식사 중에 내게 연락을 주었던 김00 전의원에게 처음부터 강연자로 나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는가를 물었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외교부에 요청을 해 장관이나 차관이 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했는데, 아무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한민국헌정회 명의로 보낸 공문을 외교부가 깔아뭉갰다며 노여워했다. 그러면서 외교부 특히 윤병세 장관은 자기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깜도 안 되는 사람이 장관을 하고 특히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64년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적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64년 6월 3일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절정에 이른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반대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6월 3일 저녁 10시에 선포한 계엄은 7월 29일 해제되기까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당시 학생들이 한일협상을 반대했던 이유는 한일국교정상화 그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에 대한 반대였다.
오는 11월 10-11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일본의 아베 총리 사이에 중일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거의 확정된 것 같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야치 일본 국가안전보장 국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의제를 조율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북한의 김정은 못지않게 동북아시아의 위험요소가 되고 있는 아베 총리인데,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한일 양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일간 먼저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이 오히려 고립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한일간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양국의 외교라인에서 물밑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APEC 중국 개최를 계기로 일본의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지난달 말 사단이 발생했다. 정부가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던 독도입도지원센터 건립을 갑자기 백지화한 것이다. 30억 원이라는 예산도 배정이 되었고, 지난달 20일 입찰공고까지 냈던 사안인데 응찰을 하루 앞둔 10월 31일 입찰공고를 취소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행자부장관을 지냈고, 지난 보궐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포항남-울릉지역구에서 당선된 박명재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 나와서 이렇게 입찰이 취소되는 경우는 자신의 오랜 공직생활 중에 한 번도 없었다며, 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다음 날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소위 ‘관계장관회의’에서는 “공고 취소에 따른 대응 논리를 마련하고 이슈화가 되지 않도록 지역 국회의원 등에 초기 대응을 하라”는 후속 대책에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정부가 마련한 논리는 “안전, 환경, 문화재 보호 등 3가지 우려로 독도입도지원센터를 보류한 것”이라는 군색한 변명이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일본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그런 사업은 우리 일본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여러 레벨에서 주장해 왔기 때문에 건설 계획이 중단된 것으로 본다”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목을 조였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도대체 우리 정부인지 의문이라고 했는데, 정말 박근혜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이고 누굴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50년 전 대일저자세 굴욕외교로 참사를 빚은 기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대인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대일 저자세굴욕외교의 유전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중일 3국 관계에서 소외받기 싫었던 우리 외교라인이 중일정상회담을 미끼로 접근한 아베 정권의 치고 빠지기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의 작금의 사태다. 대를 이은 50년만의 참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도는 우리영토 이전에 우리나라와 우리국민의 자존심 그 자체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 독도입도지원센터 건설 백지화를 주도한 것이 외교부 윤병세 장관이라고 한다. 대일 강경파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김00 전의원의 판단이 정확했던 것 같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주재해서 5공화국식 정치공작을 하려했던 정홍원 총리는 이미 총리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영토수호의 헌법적 의무를 소홀히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크다. 정홍원 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함으로써 아주 조금은 우리국민의 자존심이 지켜질 것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