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지키려는 PK 여론에 굴복해 회군
친박계와의 사전 교감說…다음 수순 주목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24일 낮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기자들과 도시락 점심을 겸한 간담회를 하고 있었다. 전날 전격적으로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김 최고위원은 ‘개헌론’에 불을 지핀 김무성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며 당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같은 PK(부산·경남) 출신인 두 사람은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기자들과의 도시락 간담회가 막 시작되려고 할 때 김 대표가 김 최고위원 방을 불쑥 찾아왔다. 김 대표는 웃으면서 김 최고위원의 손을 잡은 채 한마디만 하고 자리를 떴다.
“막 나가는 말은 하지 마라.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자신을 공격한 김 최고위원을 여전히 아끼는 동생으로 대하는 통 큰 모습을 기자들 앞에서 보인 셈이다. 이 장면을 두고 양김(김무성-김태호)이 미리 손발을 맞춰 ‘김태호 최고위원 사퇴 소동’을 벌인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의도된 도발은 분명한 듯
중국 상하이에서의 ‘개헌 봇물론’ 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김 대표를 돕기 위해 절친한 사이인 김 최고위원이 총대를 멨다는 해석이다. 당시 김 대표는 섣부른 개헌 발언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경제블랙홀’이라며 논의 자제를 당부한 지 불과 열흘 만에 김 대표의 ‘상하이 발언’이 나오자 윤두현 홍보수석이 나서 경고를 보낸 상황이었다. 여기에 홍문종 의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에선 김 대표가 벌써부터 대권행보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서서히 ‘김무성 대항마’로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김 최고위원이 선제적으로 김 대표를 공격하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는 배수진을 침으로써 청와대와 친박계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부산·경남 지역의 한 기자는 “두 사람의 평소 관계를 볼 때 김 최고위원이 미리 김 대표에게 귀띔을 하고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하나 나도는 관측은 청와대나 친박계 핵심과의 사전교감설이다. 김 대표의 독주에 위기감을 느낀 정권 핵심부에서 같은 PK인 김 최고위원을 띄워 ‘김무성 견제’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김 최고위원도 현재 친박계에 유력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상황을 감안해 이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차기 대권행보를 위한 포석이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그건 사이비정치다. 그렇게 하면 금방 드러난다. 그런 짓은 할 줄도 모르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기본 철학이다. 뒤에서 수를 쓰면 한 발짝도 갈 수 없다. 김태호 색깔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타고 난 승부사다.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비록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기는 했지만 ‘40대 국무총리’로 발탁된 배경도 사실상 그의 승부수가 먹힌 결과였다. 다음은 MB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인사가 들려준 비화(秘話)다.
“2010년 1월12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청와대 모처에서 독대를 했다. MB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간담회가 끝난 뒤 김 지사가 단독면담을 요청해 이뤄진 자리였다. 김 지사는 ‘이번 도지사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 큰 꿈을 위해서 민생을 보듬을 수 있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MB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 김 지사는 6월 지방선거를 통해 ‘3선 도지사’ 등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나이도 48세로, 도지사를 한 번 더 한 뒤 진로를 바꿔도 늦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MB는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나라를 이끌어보겠다는 큰 꿈을 키웠다’며 격려했다. 그 후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참으로 난 사람이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자주 칭찬한 것으로 안다.”
MB정권 박근혜의 대항마
김 지사는 그해 1월25일 6·2 지방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7개월 후 MB는 그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그 때 미래권력으로 부상한 박근혜 의원의 대항마로 키우겠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가 도지사 불출마 승부수를 띄웠을 때는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가 부산·경남 정치권을 휩쓸었던 시점이다. 따라서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출마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는 이 의혹 때문에 총리인준을 받지 못 했다.
2009년 6월9일 대검 중수부는 그를 소환했다. 2007년 4월 ‘경남 밀양 영어도시 사업설명회’를 위해 미국 뉴욕에 갔다가 거기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 수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박 전 회장은 맨해튼 소재 한인 식당 주인에게 돈을 전해달라고 부탁했고 식당 주인은 여종업원에게 돈 전달을 맡겼다는 의혹이었다.
또 박 전 회장이 2004년 6월 구입한 경남 진해 소재 동방유량 공장 부지는 고도제한 규제가 풀려 15층짜리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됐는데, 이 과정에 그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런 일화는 김 최고위원의 위기탈출 능력이 탁월함을 방증한다. 이번 최고위원 사퇴 선언도 김무성 대표의 독주와 친박계의 견제 사이에 생긴 틈을 파고드는 차원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계획된 도발이었다는 뜻이다.
김 최고위원은 기자들과의 도시락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났다. 특히 최고위원 사퇴 선언을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던지면 던지는 것이다. 경솔하게 보일 수는 없다. 뚜렷한 명분이 없는데...(어떻게 복귀하겠느냐) 그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늘 던지고, 그리고 도전하고 그런 식이었다. 미래를 위해 던진 것이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사퇴 선언 12일 만인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어 당무 복귀를 발표했다. 명분은 ‘당의 혁신과 쇄신, 그리고 변화를 위해 지도부에 남아서 더 강력하게 앞장서 달라는 요청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김 대표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의 사퇴 선언이나 철회 모두 명분이 약하다. 정가에선 “황당하다”거나 “어린애 같은 초보의 행동”이란 말이 나돈다. 사퇴 철회는 더욱 그렇다. 친박 원로인 서청원 최고위원조차 “대학생도 아니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왜 회군을 결정했을까.
부산·경남 지역 언론인은 “사실 김 최고위원도 처음엔 회군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비난이 쏟아질 게 분명한 줄 알면서도 당무에 복귀한 건 부산·경남지역의 여론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 김해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 최고위원이 부산의 기대주 김무성 대표가 이끄는 지도부를 흔드는 데 대한 부정적인 PK 여론이 사퇴 번복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다시 한 번 ‘PK 대통령’을 만들어 보려는 판에 김 최고위원이 나서 같은 지역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민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최고위원 입장에선 존재감 부각을 위해 승부수로 던진 최고위원 사퇴 카드가 오히려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는 바람에 ‘악수’가 돼 버렸고, PK의 지역적 기반 없이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현실에 밀려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김태호의 다음 승부수’는 뭘까. 40대 나이에 국무총리로 지명되고 대권주자 반열에 까지 올랐던 그가 평범한 최고위원, 국회의원 생활을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정가에선 앞으로 개헌론이 점화되고, 차기 대권경쟁에 본격 시작되는 시점에 일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것이란 견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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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