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2~3개 빼오면 강사연봉 10배 올려줘”
“문제 2~3개 빼오면 강사연봉 10배 올려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3-26 10:06
  • 승인 2008.03.26 10:06
  • 호수 726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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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강사-교사 간 ‘부적절한 밀월행각’ 충격 폭로!

비뚤어진 교육열을 단적으로 보여준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전국단위로 치러진 시험문제가 새어나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 대치동 S학원 강사 유모(43)씨와 전국학력평가 출제위원 3명이 연루된 이번 사건은 문제유출경위를 놓고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시험문제 19개를 빼내 학원생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씨는 “출제위원들이 내 문제를 베꼈다”고 맞섰다. 사건을 맡은 서울 송파경찰서는 유씨와 출제위원의 대질심문을 하고 유씨 집과 학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경찰은 유씨가 출제위원인 교사들과 부정한 친분·금전관계로 엮여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교육업계를 중심으로 학원강사와 교사들의 ‘부적절한 밀월행각’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가운데 한 수도권 학원관계자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그는 “일반학교의 중간·기말고사문제까지 현금으로 거래 된다”고 폭로했다. 돈으로 ‘성적’을 사는 비뚤어진 사교육현장을 고발한다.


“교사에 거침없이 로비”

수도권에서 20여년간 학원사업을 해온 A씨는 “학원강사가 ‘살기 위해’ 교사들에게 지갑을 여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관행”이라고 입을 열었다. A씨에 따르면 학원강사들은 입시설명회나 교육컨설팅에 참석한 교사들을 상대로 먼저 ‘인간적’ 친분을 쌓는다. 그 뒤 서로를 ‘형님! 아우!’라 부를 만큼 인맥이 쌓이면 로비작업이 본격화 된다. 각종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A씨는 “한 번에 수십만 원씩 밥값과 술값을 대지만 교사들이 흘려주는 1~2문제를 귀동냥하기까지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다”고 전했다.

업계엔 모 학원 스타급강사가 지난해 교사 로비용으로만 수 천만 원을 쓴 사실이 무용담처럼 전해진다.

이들이 교사들에게 생돈을 쏟아 부으며 ‘올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출제유형과 정답까지 맞아떨어지는 문제를 2~3개 뽑아오면 학원으로부터 10배 이상의 연봉인상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 고교입시와 관련된 ‘대어’일 때 해당되는 얘기다. 특목고인기가 치솟은 최근 몇 년 사이 강사가 문제유형만 건져도 영웅대접을 받는다.

교사들이 빼돌린 문제가 입학시험 등에 그대로 나오면 이를 입수한 학원은 ‘문제적중’ 등의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수강생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포외고 사건 뒤 대가 비싸져”

지난해 교육계를 발칵 뒤집은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사건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38개 문제가 고스란히 유출된 사건에 A씨 역시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는 “한꺼번에 수십 문제를 빼낸 김포외고사건은 학원가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몇 문제를 빼내기 위해 수년 간 공들이는 강사들이 적잖은 상황에서 엄청난 정보력이라는 것.

A씨는 “한꺼번에 수십 문제씩 유출하는 건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당국에 적발될 위험도 크다. 하지만 일선강사들은 김포외고사건을 계기로 ‘학부모들 눈이 더 높아졌다’며 하소연 한다”고 말했다.

문제 1~2개를 귀동냥하는 정도론 부모들에게 ‘능력 없는 선생’이란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라는 것.

학원가엔 고급정보를 얻으려는 강사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김포외고사건이 터졌을 때 한 학원강사에 의해 대략적 유출단가가 알려진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교사는 문제 유형만 알려주는데 200만~300만원, 문제와 문항 모두를 건네는데 500만~1000만원의 대가를 받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제 당 ‘단가’가 더 크게 뛰었다는 게 A씨 증언이다.

그는 “정확한 액수는 밝힐 수 없다. 유출사건이 물위로 떠오른 뒤 더 많은 돈이 오가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중간·기말시험 문제도 거래

입시에서 내신 성적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반학교 중간·기말시험문제도 강사들의 입수목록에 올랐다.

과거엔 현직교사가 사설학원에 문제집을 집필해주고 돈을 챙긴 뒤 이를 학교내신시험에 출제, 간접적으로 문제를 유출하는 식이었다. 최근엔 그보다 더 노골적이다. 수십만~수백만 원의 현금을 놓고 학원과 교사가 문제를 직거래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A씨는 “현직교사가 사설학원교재를 쓰는 것 자체가 처벌대상이다. 때문에 오래 친분을 이어온 강사를 상대로 교사들이 문제를 직접 흘려주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2점 차이로 등급이 바뀌는 내신시험까지 사설학원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교사는 강사들에게 먼저 ‘문제 거래’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A씨는 전했다. 우리 교육계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준임이 단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다.


#“OO대 100명 합격!”

거짓투성이 학원광고 눈살

A씨는 학원광고의 허와 실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명문대를 들먹이며 해당학교에 합격한 수강생이름이 나열된 광고 열에 아홉은 ‘거짓말’이라는 것.

그는 “해당학원에 다니지도 않은 학생이름을 학교에서 입수, 학원광고에 쓰는 건 양반이다. 일부 학원은 해당학교에 원서만 넣은 수강생을 합격생으로 둔갑시켜 명단을 채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합격한 수강생 수와 명단을 올해 합격생으로 날조하는 일도 흔하다. 대형 프랜차이즈학원의 경우 다른 지역 입학실적까지 끌어들여 ‘영업’에 이용하기도 한다.

A씨는 또 “강사진학력과 경력을 부풀리는 건 너무도 잘 알려진 허위학원광고 수법”이라고 전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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