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웃집에 살인마가 산다

실종됐던 이혜진양과 우예슬양이 납치돼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미제로 남아 있던 수원, 안산, 안양 등 경기남부 연쇄실종사건수사에 채찍이 가해지고 있다.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는 피의자 정성현(39)씨가 이번 사건과 함께 2004년 7월 군포에서 일어난 40대 여성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정씨의 추가 범행가능성이 짙어지면서 일부에선 “정씨가 경기남부 연쇄실종사건의 주범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경기남부에서 실종된 이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대부분 단순가출로 분류돼 있는 상태다. 이들 중 일부는 인적이 드문 야산등지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의문의 실종사건이 끊이지 않는 경기남부지역. 공포의 지대로 바뀌어 가는 문제의 장소를 찾아가 봤다.
“사실 수원, 안산, 안양, 화성 등 경기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실종·살인사건은 더 있다. 다만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경찰은 사건이 확대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신이 발견돼도 변사자로 처리했다. 이곳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안산에 사는 한 주민은 경찰의 무능함을 꾸짖으며 핏대를 세웠다. 다른 주민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안산경찰서 한 관계자에게 주민들 증언을 바탕으로 “실종자가 더 있느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그런 것 없다. 정확히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실종사건은 더 없는 걸로 안다. 실종사건이 있다면 우리가 제일 잘 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실종자 A씨의 이름을 대자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실종이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 더 있다. 실종인지 확실치 않아 가출신고로 접수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가출 처리된 이들은 대부분 가정불화 등과 같은 문제로 집을 나간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라면서 “가출 신고된 이들 중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발견이 늦어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타살여부를 알 수 없어 변사자로 처리됐다”고 말했다. 가출신고 된 이들 중 일부는 고령의 어르신으로 치매증상 때문에 길을 잃고 야산에서 헤매다 숨졌다는 것.
사라지는 사람들 어디로
이 관계자 설명은 주민들 증언과 다소 차이가 있어 그대로 믿기 힘들다.
주민들의 전언을 추가로 들어보면 경찰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안산에 사는 이모(56)씨는 “경찰은 실종자가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처리해왔다. 노래방도우미들이 실종됐을 때도 그랬다. 사람이 없어졌다고 하면 무조건 가출이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또 “이 주변에서 강력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건 최근 문제가 아니다. 사실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 않거나 경찰이 밖에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이 수두룩하다”고 귀띔했다.
일반 살인사건으로 현장에서 시신이 발견된 사건 외에 알려지지 않은 실종사건이 더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실종자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실종·살인사건은 경기남부, 특히 화성지역에서 자주 생기는 것일까.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노래방도우미 배씨가 실종된 군포시 금정역으로 가봤다. 안산에서 군포 금정역까지는 자동차로 10여분 거리다.
배씨는 2006년 12월 14일 군포역에서 사라진 뒤 화성시 비봉면 부근에서 휴대전화가 끊어졌다. 금정역에서 비봉면까지는 자동차로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달 24일 역시 노래방도우미로 일했던 박모(37)씨도 수원시 정자동에서 사라졌다. 박씨의 휴대전화도 비봉부근에서 전원이 꺼졌다. 박씨는 지난 해 5월 8일 비봉 요금소에서 7km 떨어진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묻힌 채 알몸시신으로 발견됐다.
비봉부근에서 실종된 여성은 또 있다. 지난해 1월 3일 사라진 직장인 박모(52)씨도 비봉부근에서 휴대전화전원이 꺼졌다.
시신이 발견된 박씨가 묻혀있던 사사동은 비봉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다.
휴대전화기지국은 반경 5km 안팎의 신호를 감지한다. 이에 따라 비봉부근에서 실종된 다른 여성들이 희생됐다면 그들 역시 이 부근에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범인은 교차지점 이용했다
금정역에서 안산시 사사동을 거쳐 비봉까지 길을 따라가 봤다. 거리는 17km 남짓이었다. 군포시를 벗어나자 도로주변은 전부 야산과 논밭이
었다. 드문드문 마을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야산에서 떨어져 있었다.
비봉면의 치안을 맡고 있는 비봉파출소 관계자는 “실종사건 뒤 검문이 대폭 강화돼 하루 6시간씩 검문을 벌이고 있다. 군경합동병력이 일대 야산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비봉부근에서 여성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비봉은 안산, 군포, 수원, 화성, 시흥 등 모든 도시와 이어져있다. 범인이 이곳에 나머지 여성들을 묻었다면 인적이 드물고 이동이 편해서일 것이다”고 했다.
비봉은 도시화가 잘 되지 않아 야산이 많다. 또 마을도 거의 없고 마을호수도 얼마 되지 않아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반면 수도권을 잇는 교통이 발달해 있다. 경기남부 어느 곳이건 비봉으로 통하게 돼 있다. 따라서 범인은 경기남부 각지에서 부녀자들을 납치한 뒤 도로 교차점인 비봉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는 이어 “이 파출소는 지난해 7월에야 생겼다. 비봉주변에서 실종사건이 생기자 마을주민들이 불안하다며 민원을 냈기 때문이다. 파출소가 생긴 뒤엔 이 부근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범인은 비봉지역사정을 면밀히 관찰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화성연쇄살인 범인도 정씨?
한편 정씨가 1980년대를 뒤흔들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1988년 수원 여고생 강간살인사건 때 19세 J군과 16세 M군이 유력용의자로 잡힌 적 있다.
이 둘은 시신주위에서 옷가지를 태우고 있다가 붙잡혔다. 피해자의 시신은 잔인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 둘은 형사가 추궁하자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피해자 시신에서 M군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형사가 백지를 주고 약도를 그리고 시신유기장소를 지목하라고 하자 정확하게 장소를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M군이 졸지에 뇌출혈로 쓰러졌고 결국 숨지자 담당형사들은 모두 직위가 해제되고 징역까지 살았다. J군은 증거불충분과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다고 주장해 풀려났다. 머리카락마저 형사들이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돼버렸다.
이때 풀려난 J군은 키 169cm에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 날카로운 눈, 차가운 인상이었다.
네티즌들에 따르면 이는 화성연쇄살인사건범인의 몽타쥬 인상착의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
또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은 피해자주위에서 발견된 범인의 인분을 분석해본 결과 B형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건 J군과 M군 모두 B형이었다는 점이다.
이뿐 아니다. 수원여고생 살인사건은 사체가 잔인하게 훼손된 점과 강간 뒤 목을 졸라 죽인 점, 속옷을 입에 물리는 등의 행위가 화성연쇄살인사건범인의 행동과 매우 유사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지금도 이 J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이와 더불어 크리스마스 전날 죽은 수원여고생과, 크리스마스 날 죽은 우양과 이양, 또 실종된 노래방도우미들, 기타 희생자 모두가 크리스마스 앞뒤로 실종·사망했다.
네티즌들은 J군과 정씨가 나이와 이니셜도 같고, 여자를 대상으로 한 강간범죄란 점에서도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정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일 것이라 보고 있다.
군포경찰서 관계자는 “정씨가 두 어린이를 무참히 죽인 범인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다른 사건에 대한 연관성은 수사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인터넷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도 정씨의 소행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나친 억측을 경계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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