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군인을 정권수호에 동원하는 전략 포기?
공무원뿐만 아니라 군인, 사학연금도 개혁해야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보수정권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역대 어느 정권도 손을 대지 못했던 금기의 영역, 공무원연금이 도마 위에 올라왔다. 공무원연금을 도마 위에 올린 것은 박근혜 정부다. 지난 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료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국민들로부터 제기된 이래, 관피아로 통칭되는 관료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열망이 커졌다. 모피아, 금피아 등 익히 알려져 있던 관피아 조직뿐 아니라, 산피아, 해피아, 군피아, 통피아, 경피아, 공피아, 철피아, 법피아 등 관료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관피아가 있었다.
이 관피아 조직은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있었고, 이러한 실체가 국정감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낯낯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새피아(새누리+마피아), 박피아(박근혜+마피아) 등 정치권에서도 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고 난리 법석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황피아(황당한 마피아) 논란이 아닐 수 없다.
벼룩도 낯짝이 있는지, 이러한 관피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함인지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느닷없이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정치권에 공을 넘겼다. 당황한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표를 먹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정당의 입장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는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표가 떨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다른 지지표가 생성될 수도 있지만, 떨어지는 속도를 상쇄시키지는 못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차라리 당이 주도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겠다며 정치권으로 넘어온 공을 아예 다른 공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이라는 것을 발표했고, 다음 날에는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158명 전원의 이름으로 공무원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청와대의 ‘연내 처리‘ 지시에 여당의 당대표가 책임지고 청부입법에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공무원연금 개혁 TF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대로 가면 2080년에 2000조원이 들어간다‘며, 근거도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으며, 공무원연금 수령자인 공무원들을 겁박하면서 고립시키는 전략을 잊지 않았다.
1960년 1월 1일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당시 박봉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공무원들의 사기진작과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정책이었다. 이러한 공무원연금(군인연금 포함)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더 많은 정부지출이 이루어지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간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에 대한 정부지출을 강화하는 대신, 공무원과 군인을 정권수호에 동원하는 전략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지난 해 공무원연금을 수령하는 사람만도 약 32만 명에 달했다. 또한 공무원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은 219만원으로 웬만한 월급쟁이에 버금간다. 300만 원 이상을 수령하고 있는 사람도 전체의 21.1%인 6만 7천여 명이다. 600만 원 이상 수령자도 10명이나 있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숫자로 나타나는 현실에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 했다. 또한 공무원연금에 대한 적자보전에 사용되는 국민 혈세가 매년 최소 2조 5천억에서 3조원이 넘는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국민들은 들끓는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공무원연금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때를 보고 있던 정부는 이때다 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의 칼을 빼어든 것이다.
필자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100% 그 취지에 공감하고, 당리당략을 떠나 정부와 국회의 입장을 떠나 꼭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정권에서 이 정도 성의를 보였는데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정말 우리나라 정치권의 실력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론에서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각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생색내기용 개혁은 결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공무원연금의 개혁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연금의 기본 골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뼈대조차 다 바꿔버리는 것은 개혁이아니라 공무원연금 제도를 없애자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골간을 남겨둘 것인가? 두 가지를 남겨 둬야 한다. 즉, 공적연금으로서의 성격과 노후 소득보장으로서의 기능이 그것이다. 이것을 훼손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고위 공무원과 하위직 공무원간 연금수령액의 편차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제1차적 사회안전망인 연금제도에 없어서는 안 될 소득재분배 기능이다. 그리고 공무원연금 개혁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고 있는 재정안정화를 통한 건강하고 탄탄한 공적연금을 만들어야 한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과연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에서 철저하게 검증하여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국민들에게는 철밥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변화하기 어려운 조직적 특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는 더 큰 개혁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함이다. 공무원연금은 그 자체로도 개혁의 필요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공적연금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후에는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 연금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공적연금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공적연금개혁의 시작이라면 국민연금 개선은 공적연금개혁의 화룡점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개혁을 실현시키기 위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진정으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들에 대한 의견수렴, 공청회 등의 과정은 전부 생략됐다.
아무리 청부입법이라 그러한 절차가 필요 없다고 해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칫 공무원연금 개혁의 정당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청와대의 지시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될 문제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공무원연금 개혁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개혁을 성공시키는 지름길이다.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연금철학을 충족시키고, 소득재분배라는 복지정책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며, 재정안정성 확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이해 당사자들과 소통하며 설득하는 미학을 발휘해야 한다. 안행부 등이 가지고 있는 공적연금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개혁을 완성한다면, 100년은 지속가능한 공적연금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