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 돕기 배후엔 법조인·정치인 있다
친일파 후손 돕기 배후엔 법조인·정치인 있다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8-03-11 10:46
  • 승인 2008.03.11 10:46
  • 호수 724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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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찾기 나선 친일파 후손 입체 추적
민영휘(경기도 용인시 일대) · 송병준(강원도 철원군 일대) · 이해승(경기도 포천시 일대) · 이경식(충북 보은군 삼승면 선골리 일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친일파재산조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7명 소유의 땅 30만8388m²(시가 41억 원 상당, 공시지가 28억 원 상당)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재산환수결정이 내려진 사람은 ‘한일강제합방’에 앞장선 대가로 남작 작위를 받은 이정로, 민영기, 이용태와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김서규, 김영진, 이경식, 이진호 등 7명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진 친일재산은 이완용, 송병준 등 29명 소유의 땅 360만2062m²(시가 771억 원)로 늘어났다.

하지만 친일파재산환수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팔아치웠거나 땅 문제와 관련된 복잡한 송사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땅을 팔고 자취를 감춘 경우가 많아 당사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친일파재산환수가 순조롭지 않은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잘 나가고’ 있다. 최근 거액을 챙긴 뒤 남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고 재테크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들의 재산증식을 조직적으로 돕는 배후세력들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쉽지 않은 재산환수

민영휘 등 친일파 후손들은 지난해 11월 친일재산 환수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잇달아 내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민영휘, 민상호, 민병석의 후손 27명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5월 재산환수결정이 내려지자 국가귀속결정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특별법 자체가 위헌”이라는 것.

이때 56억여원 상당의 재산환수결정이 내려진 민영휘의 자손은 소장을 통해 “특별법은 헌법에 규정돼 있는 소급입법금지 원칙과 연좌제금지 원칙,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 민영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영휘는 친일단체였던 신사회의 위원장을 지냈고 자작작위까지 받았다.

또 중추원 고문 민상호의 후손도 “특별법은 러일전쟁 개전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취득재산을 친일행위대가로 추정하고 있으나 민상호의 재산은 러일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물려받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던 민병석의 후손도 “친일행위대가로 얻은 재산이 아니다”며 친일활동 대가로 받은 재산임을 부정했다.

친일재산국가귀속 조치를 인정 않는 후손들은 이들 뿐 아니다. 조중웅, 강동희, 한창수, 송병준, 이해승 등 대표적 친일파 10여명의 후손들도 조사개시결정 취소청구와 국가귀속결정취소청구를 냈다.

이들의 재산으로 기록돼 있는 땅 면적은 201만8708㎡. 시가로 410억원(공시지가 174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친일파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일파후손들은 지금까지 모두 353건의 이의신청을 냈다. 이중 11건은 확인 등 절차를 밟고 있고 나머지(342건)는 기각되거나 일부 인용, 일부 기각됐다.

자료에 드러난 이들의 이의신청유형은 다양하다.

‘조사대상자는 친일행위자가 아니고 대상재산도 친일재산이 아니다’는 주장이 43.1%(152건)로 으뜸이다. 이어 ‘조사개시 대상 재산이 친일재산이 아니다’는 주장이 30.6%(108건)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선의의 제3자다’ ‘자신들의 선대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다’ 등의 주장도 있다.


땅을 팔고 튀어라

이렇게 정부와 친일파후손들 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후손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땅을 팔고 자취를 감췄다.

거물급 친일파인 이완용의 후손이 대표적이다.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씨는 서울 북아현동 땅을 팔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이윤형씨는 친일파후손 중 최초로 조상의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낸 사람이다. 그가 처분한 북아현동 땅값은 30억 원쯤 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훨씬 더 많은 액수를 챙겼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완용은 1910년대 땅과 임야 등 사정 당시 보유면적이 확인된 것만 해도 엄청나다. 서울 여의도의 1.9배인 1300여 필지, 1600만㎡에 이른다.

이완용은 일제로부터 받은 이 땅을 5년 안에 대부분(98%)을 팔아 금괴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현금화하거나 예금으로 남겼다. 이 때문에 이윤형씨가 실제로 챙긴 돈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이윤형씨는 캐나다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재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그의 자손들이 국내를 오가며 투자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년전 한 방송사의 추적 결과 이민은 이윤형씨 혼자 떠났으며, 국내 남아 있는 자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에 이윤형씨 사후 그의 재산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윤형씨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완용과 더불어 정미칠적 가운데 한명인 대표적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도 땅 찾기에 혈안이 돼있다. 송병준의 후손 송 모(63)씨는 2004년 한 독립유공자단체 회장에게 접근, “선대의 땅을 되찾게 도와주면 땅 판 돈을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제안한 적 있다.

그가 되찾으려는 땅은 면적 61만5000m²인 경기도 부평 미군부대(캠프마켓) 터였다.

그러나 시민단체 반발과 재산환수결정으로 땅 찾기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송씨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땅 찾기에 매달렸다. 송씨는 또 재산환수를 피하기 위해 2005년 12월 29일 송병준이 남긴 경기 포천 땅 2871㎡(870평)를 1억여 원에 팔아치웠다.

재산환수위원회 조사내용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해까지도 꾸준히 송병준의 숨겨진 땅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그는 지난해 4월 19일 땅 찾기 소송에 져 국가소유라고 판결난 땅을 자기 땅이라 속이고 팔아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수년간 땅 찾기에 나서면서 챙긴 돈은 수
십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친일파 돕는 배후는 누구

재산환수의 가장 큰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친일파후손들이 땅을 팔아 돈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엔 부동산브로커, 변호사, 정치권 인사 심지어 경찰관계자까지 들어있다.

브로커 등이 친일파후손들을 돕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후손들은 땅 찾기를 도와 성공하면 거액을 떼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돕는 이들은 제2, 제3의 친일파가 되는 셈이지만 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꿈에 친일파후손들과 손잡고 있다.

특히 친일파와 손잡은 브로커들은 또 다른 배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름 아닌 현직공무원들이다. 또 지역건달들도 땅 찾기를 돕고 있다.

구속된 송씨도 경찰관계자, 거물급 조폭들과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윤형씨 소송을 도운 변호사도 적잖은 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형씨는 땅 찾기 소송을 할 때 유모 변호사에게 의뢰했다가 다시 다른 변호사로 소송대리인을 바꿨다. 유 변호사가 변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 변호사는 “나는 그가 땅을 되찾으려 한다기에 일반적인 부동산소송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친일파 이완용 후손의 땅 찾기 소송이었다”고 그때를 떠올리면서 “그가 땅을 되찾으면 40%를 준다고 제안했으나 승소할 경우 말썽이 생길 것 같아 거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이후 이윤형씨의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다.

한편 재산환수위원회 관계자는 “친일파 후손들이 지금까지 챙긴 돈은 적지 않다. 이들은 재산환수 움직임이 일자 급하게 땅을 팔아 치운 경우가 대부분이다”면서 “재산환수 결정 뒤 몰래 땅을 팔아 돈을 챙겨 잠적한 이들도 있어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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