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조폭’ 엄격한 규율로 사육된다

수도권 신흥개발지인 경기도 평택에서 갖가지 이권에 개입해온 조직폭력배 40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2일 경기도 평택시 일대 재개발 관련 이권에 끼어들어 부당이득을 챙기고 경쟁조직의 행동대원을 무자비하게 때린 ‘청하위생파’ 두목 김모(50)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평택일대 최대조직으로 알려진 청하위생파는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는 속칭 ‘짱’을 끌어 모아 세를 불려온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리틀 조폭’이 이름을 올린 범죄는 줄잡아 10여 건에 이른다. 모습을 드러낸 ‘조폭사관학교’ 전모를 추적한다.
구속된 두목 김씨는 과거 평택 유흥가에 물수건을 납품하던 중소업체사장이었다. 그러다 1987년 이 지역 상권을 잡기 위해 김씨는 같은 지역 불량배와 불량청소년 20여명을 모았다. 이게 ‘청하위생파’의 시작이다. 조직이름은 김씨가 운영하던 업체이름을 딴 것이다.
‘배신=보복’ 본보기
평택을 근거지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 청하위생파는 최근까지 중·고교 불량서클을 통해 ‘인물’을 수혈 받아 힘을 키워왔다.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조직원만 150여명. 검찰 수사목록에 올라있는 국내 폭력조직 중 최대다.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조직에서 학교별로 싸움 잘 하고 덩치가 큰 소위 ‘일진’을 찾아 일찌감치 포섭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될 성 싶은 떡잎’을 찾아 조직원들이 학생들을 꾸준히 개별관리 했다는 얘기다.
끌어들인 ‘짱’들이 졸업을 앞둘 쯤 이면 ‘예비조직원’이 될 사람을 뽑는다. 이렇게 뽑힌 ‘어린 조폭’들은 엄격한 합숙생활을 하며 조직원으로서의 행동강령과 수칙을 배우고 몸만들기에 힘을 쏟는다. 일종의 ‘조폭사관학교’인 셈이다.
청하위생파의 행동강령엔 ‘조직을 배신하면 꼭 보복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두목 김씨는 예비조직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배신한 조직원을 집단 구타하는 현장에 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어린 조폭’들은 그 자리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배신자’ 최모(36)씨를 폭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렇게 어린 조폭들에게 본보기로 당한 조직원 최씨는 두목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괘씸죄로 8명으로부터 뭇매를 맞아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다.
덩치 키우려 ‘밥 고문’도
경찰은 이들이 신입조직원의 덩치를 키우려 하루 식사를 6끼씩 먹이며 몸 불리기를 강요한 사실도 밝혀냈다. 덩치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이른바 ‘덩치처세’를 위해서였다.
경찰관계자는 “기름진 자장면을 최소한 3그릇 이상 먹이거나 돼지비계를 삶아 먹인 뒤 문을 잠근다. 이렇게 먹고 자고를 거듭하며 살을 찌우는 한편 체력훈련도 따로 겸한다. 다른 조직들도 이런 식으로 몸을 불려 1~2개월 안에 적어도 30kg 이상 몸무게를 늘린다”고 전했다.
짐승사육이나 다름없는 조직폭력단의 ‘밥 고문’은 2001년 조직원 40여명이 검거된 동방파 사건을 계기로 일반에 알려진 바 있다.
그 때 동방파조직원들은 신입멤버들에게 기름진 개 사료를 먹이거나 밥을 콜라에 말아 억지로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신입조직원의 몸을 불려 충격을 줬다.
또 청하위생파의 어린 조폭들 사이엔 엄격한 규율도 있었다. ‘후배는 선배를 보면 늘 90도로 깍듯이 인사 한다’ ‘선배를 부를 땐 ‘형님’이란 호칭을 쓴다’ ‘2년 이상 선배 앞에서 절대 맞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할 것을 우려해 2~3개월에 한 번씩 합숙소를 옮겨다니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렇게 조직에서 큰 어린 조폭들은 평택 일대에서 청하위생파가 저지른 갖가지 범죄행각에 이름을 올렸다.
경쟁조직원 살해기도까지
2003년 1월 두목 김씨와 행동대장 심모(36)씨 등 20여 조직원은 쇠파이프, 회칼 등 흉기를 갖추고 경쟁조직 일원인 고모(31)씨 등 두 명을 살해하려 했다.
두 사람은 충남 예산에서 세력을 키우던 경쟁조직 L파 소속이었다. 이들은 청하위생파 두목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 현관문을 부숴 미움을 샀고 조직이 곧장 보복에 나선 것이다.
2006년 7월엔 평택의 한 단란주점 앞에서 유흥가 주도권장악을 위해 경쟁폭력조직원 10여명과 흉기를 쓰는 패싸움을 벌였다.
또 지난해 3월엔 또 다른 경쟁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 운영하는 성인오락실에 들어가 오락기 60여대를 부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예전엔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모여 폭력조직을 결성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조직이 중·고생을 전문적으로 끌어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관계자는 “평택지역 중·고 불량서클 중엔 청하위생파를 동경, 추종자를 자처하는 무리도 있다. 조직이름까지 따 ‘청하’라고 짓고 탈선을 일삼아 문제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6억원 뭉칫돈 벌어들여
한편 청하위생파는 단순한 폭력을 넘어 각종 이권에 불법개입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또 검찰은 두목 김씨와 부두목 심씨가 양도소득세 등 56억원을 탈세한 사실도 밝혀내 평택세무서에 추징토록 통보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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