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총살 가능성 알고 사건 은폐?
국정원, 총살 가능성 알고 사건 은폐?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8-02-28 09:53
  • 승인 2008.02.28 09:53
  • 호수 722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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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주민 22명 북에 보낸 내막 집중 추적

설 연휴기간인 지난 2월 8일 남쪽으로 표류한 북한주민 22명이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북으로 돌려보내진 사건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특히 북송된 주민이 탈북을 꾀했다는 이유로 총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져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가 왜 그들을 북송했나 하는 점과 그들의 생사여부다. 이에 대해선 의견들이 분분하다.

국정원은 북송주민들이 “귀순한 게 아니다. 북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의사를 밝혀 적법한 조치에 따라 북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귀순을 희망했으나 강제북송 됐으며, 이 때문에 비공개 처형됐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의 사실은폐 정황이 포착되면서 각종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국정원의 발표가 아닌 언론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자 국정원이 침묵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주민들을 돌려보낸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돈다. 정부는 왜 그들을 북으로 돌려보내야 했는지, 북송된 주민은 과연 어떻게 됐는지 관계 소식통들을 통해 알아봤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달 2월 16일 북송주민들에 대해 "그들은 굴을 따기 위해 나왔다. 조류에 휩쓸려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 스스로 북으로 돌아가길 원해 곧바로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이 발표를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를 믿기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주민 22명은 같은 달 8일 소형 고무보트 2척을 탄 채 서해 연평도 부근 남쪽 해안에 떠다녔다.


북송 요청 응했나

우리 군 당국이 표류중인 북한주민들을 발견했을 때 북쪽이 남쪽에 선박 조난통보와 함께 송환요청을 한 사실이 19일 뒤늦게 알려지자 일각에선 북송이 북쪽 요구로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쪽은 함정 간 국제상선통신망(핫라인)을 통해 선박조난을 통보하면서 ‘북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정부 당국이 귀순한 북한주민들을 무작정 북송한 것 아니냐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주민들을 발견한 지 불과 14시간 만에 판문점을 통해 돌아갔다. 전례로 미뤄 볼 때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또 서해상에서 이들이 발견돼 이동한 시간을 빼면 순수하게 조사받은 시간은 채 10시간도 되지 않는다.

표류 주민 중엔 17세 미만의 청소년도 3명이나 들어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제대로 된 조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남쪽에서 발견된 모든 북한주민에 대해 국정원은 대공 용의점부터 조사하는 게 기본이다. 다시 말해 이는 모든 북한주민은 대공 용의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표류주민들이 귀환의사를 밝혔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뒤에 북송 조치해야 한다. 일부에선 이런 점을 들어 국정원 조치는 북한의 요청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탈북자연합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는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며 전전긍긍하는 노무현 정권은 될 수 있는 대로 북한주민들을 돌려보내는 내부규정을 마련, 그에 맞게 조사·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주민들이 귀환의사를 밝혔으므로 그에 따라 빨리 조치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적으로 주민들 의사에 따라 북송된 것이며 북한요청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탈북’인가 ‘월경’인가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에선 국경을 넘는 이들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탈북이다. 북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는 ‘탈출’행위로 다시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의도다. 또 다른 하나는 월경이다.

국경을 넘는 행위로 특정목적이 있어 몰래 국경을 넘지만 북한을 영원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선 국경을 넘었다고 해서 사형 등 무조건 강력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춘궁기다. 때문에 식량조달 등을 위해 몰래 국경을 넘으려는 주민들이 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경을 넘다 적발돼 월경으로 드러나면 그에 준하는 엄한 처벌은 받지만 사형은 당하진 않는다.

그러나 탈북은 다르다. 탈북하려는 것으로 드러나면 김정일의 강력한 탈북자 처벌방침에 따라 총살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간다.

한 북한소식통은 “북한은 중국과 인접한 국경을 넘다 적발된 이들에 대해선 월경자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한으로 넘어간 이들은 대부분 탈북자로 간주한다”고 북한 현지 분위기를 전하면서 “이번에 표류한 이들은 탈북혐의가 짙은 만큼 총살 등 엄정처벌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국정원 왜 사실 숨겼나

그러나 북송주민에 대한 분석은 양분 돼 있다. 현재로선 여러 정황을 들어 귀순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실제로 표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표류한 것이라면 국정원이 왜 이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또 최근 ‘남한이 탈북자들의 귀순의사를 무시하고 다시 북으로 돌려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중국과 북한 내부에 돌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강제북송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혹이 짙다.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방문과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방북 등에 미묘한 의문이 남아있어 이번 사건은 북한 눈치 보기에 따라 진행됐을 것이란 게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당국은 아직 북송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자를 밝히지 않고 적법한 조치에 따라 이뤄진 사항이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하지만 북송주민들이 소문대로 사형됐을 경우 이번 사건은 대북포용정책을 표방해온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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