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내림 받았어! 황천길서 돌아올 거야”
“신 내림 받았어! 황천길서 돌아올 거야”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2-19 14:30
  • 승인 2008.02.19 14:30
  • 호수 721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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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사람 잡는 무속인 실태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싶고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고픈 인간의 욕망. 그 틈새를 파고든 ‘사이비무속인’들의 장사속이 극에 달했다. 가짜 무속인에 속아 살림밑천만 거덜 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함량미달 무속인의 꼬임에 빠져 두 눈을 잃고 목숨까지 빼앗긴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위험천만한 사이비무속인들 실태를 고발한다.

영험한(?) 한방요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던 무속인 이모(47·여)씨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신에게 ‘신병’을 치료 받던 김모(48·여)씨가 이씨의 집에서 숨진 것이다. 일대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인 이씨는 김씨의 시신을 놓고 기도를 계속했다.

김씨 남편에겐 죽은 ‘부인이 부활한다’고 호언장담했다.


시체 놓고 “부활한다” 우겨

수원서부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의사면허 없이 환자를 치료하다 숨지게 한 이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붙잡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시신을 자기 집 거실에 5일 동안이나 방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숨진 김씨는 지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신병(神病) 아니냐’고 걱정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씨는 지난해 3월 친구의 소개로 ‘용한 무당’인 김씨의 신당을 찾았다.

“귀신이 붙었어. 내 신딸이 돼 기를 받으면 씻은 듯 나을 거야.” 확실한 병명(?)을 알게 된 김씨는 ‘신어머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날부터 김씨는 이씨에게 기를 받고 침을 맞으며 신병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신을 받고 기 치료를 해도 김씨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지난달 22일 새벽 김씨는 ‘신어머니’ 손에 목숨을 잃었다. 더욱 엽기적인 건 이씨가 김씨 시체를 4일이나 더 ‘끼고 살았다’는 점이다. 병원은 물론 김씨의 남편과 가족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흘이나 지난 지난달 25일 밤이 돼서야 이씨는 김씨 남편을 불러들였다. 아내의 시신을 본 남편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씨의 이어진 말이 더 황당했다.

“신 내림 받은 여자였어. 다시 살아날 테니 기다려 보자고.” 죽은 부인이 살아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남편은 곧 정신을 차렸다. 썩어 들어가고 있는 부인의 시체가 살아날리 만무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남편은 무당 이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주검을 수습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죽은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죽은 김씨의 온몸에 정체모를 고약과 파스가 붙은 것으로 보아 이게 죽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었다.

경찰은 김씨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병원장도 속은 ‘신이 내린 침’

한편 서울에선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속여 수억원을 챙긴 가짜무속인 가족이 덜미를 잡혔다.

이들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 중엔 모 병원 부원장까지 끼어있어 충격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서울 목동에 있는 사찰지하에 불법 침술원을 차려 놓고 ‘신이 내린 침’을 내세워 환자들을 치료한 무속인 김모(45·여)씨를 구속했다.

또 남편 이모(47)씨, 올케 진모(36)씨 등 일당 두 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무허가의약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직접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팔아온 혐의도 받았다.

특히 김씨에게 불법 침술을 받은 박모(29·여)씨는 30여 차례 치료를 받은 끝에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또 녹내장을 앓고 있던 한 환자는 ‘안압을 낮춰준다’며 맞은 침 때문에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김씨가 사이비침술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해 1월. 한 스님이 우연히 침을 맞고 효과를 보자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에 가까웠지만 그의 ‘신 침’을 맞기 위해 손님들이 강원도에서까지 몰려들자 김씨는 대담해졌다. 수년 동안 사우나, 찜질방을 맴돌던 그는 처음 치료 효과를 본 스님에게 대웅전 지하를 빌려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얼굴만 보면 안다”며 엉터리병명을 지어냈다.

환자들이 “거기가 아파서 온 게 아니다”라고 의심하면 “신이 치료를 거부한다. 부정 탔다”며 돌려보냈다. 정식 침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김씨의 치료는 엉망진창이었다. 더구나 통증을 줄여준다며 마약성진통제를 마구잡이로 섞어 먹였다.

이들이 1년간 챙긴 수익은 5억원. 이들 가족은 환자 200여명을 상대로 자신들이 만든 엉터리 만병통치약을 70만~300만원에 팔아넘겨 돈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기 위해 침을 놓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담당수사관은 “김씨가 아직까지 자신이 영험한 능력을 가졌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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