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환 죽음, 형사사건 비화?
안재환 죽음, 형사사건 비화?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9-16 13:41
  • 승인 2008.09.16 13:41
  • 호수 751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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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사채업자 손에 잡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안재환의 발인이 치러진 지난 11일 아침 남편의 관을 따라 나오던 정선희가 정신을 잃고 지인의 부축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차량 내부.(좌) 차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듯 잡동사니가 쌓여있었다

“사채업자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

탤런트 고(故) 안재환(본명 안광성)의 부친 안병관씨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 조사 결과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 10일 서울 고대안암병원에서 실시된 국과수 부검과 경찰 수사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자살’로 잠정결론 지어졌지만 수사기관의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안씨는 “아들이 친필로 쓴 유서를 확인했지만 누군가의 협박에 못 이겨 급하게 적은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안재환이 사채업자에 의해 간접적으로 살해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앞서 안재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모 연예인은 안재환이 사채업자에 의해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사업실패를 비관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던 경찰은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 노원경찰서 측은 “납치나 타살 가능성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이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미 실종신고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쳐온 유가족과 경찰 사이 미묘한 신경전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충격과 슬픔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고인이 남긴 것은 아내 정선희와의 못 다한 사랑만이 아니다. 단순자살 사건에서 납치·협박·살인이 뒤엉킨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고인의 죽음과 남겨진 미스터리를 집중 추적했다.


의혹 1. 60대 여성 사채업자가 납치종용?

안재환은 잠적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지난 10일 실시된 국과수의 부검결과에 따르면 고인의 사망원인은 ‘일산화탄소(연탄가스) 중독’이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승합차 안에서 반쯤 탄 연탄과 화덕, 빈 소주병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밀폐된 차 안에서 술에 만취한 고인이 연탄불을 지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수사팀의 주장은 고인의 시신에서 특별한 약물반응이나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 그러나 고인의 죽음이 사채업자로부터 진 수십억원대의 빚 때문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가운데 일부 업자들이 물리적인 협박까지 일삼았다는 증언이 나와 추가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업실패를 비관한 단순 자살사건으로 마무리 짓기엔 석연찮은 점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만약 사채업자들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고인을 협박했거나 납치·감금 등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면 안재환의 죽음은 형사사건으로 급반전된다.

이런 가운데 동료 연예인이자 안재환의 사업상 파트너로 알려진 K씨가 고인의 납치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지난 10일 모 스포츠 일간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K씨는 고인이 실종된 직후 사채업자로 보이는 60대 여성으로부터 고인의 신상에 대한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K씨는 인터뷰를 통해 “지난달 21일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뒤 다음날부터 재환이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8월 27일 경 60대 정도로 보이는 ‘원모씨’라는 여성으로부터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원 여인은 ‘안재환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빌렸느냐’고 K씨에게 물었다.

이상한 예감에 K씨는 곧장 고인의 친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K씨는 안재환의 누나로부터 “원 여인에게서 ‘동생을 데리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 원 여인은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고인의 누나에게 ‘정선희를 만나게 해주면 동생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K씨는 또 “9월3일 경 원씨가 전화로 ‘이제 내 손을 떠났다. 이제 ‘은 여사’가 안재환을 데리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도 밝혔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는 이틀 뒤 서울 모 경찰서 형사를 만나 원 여인의 전화번호를 건네며 내사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지난 8일 심하게 부패한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K씨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고인이 사채업자로 추정되는 일당으로부터 납치·감금당했다 풀려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달 19일 경 “안재환이 직접 연탄에 불을 붙일 착화탄을 구입하러 왔다”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볼 때 고인이 타살됐다는 명확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K씨의 증언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잖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의혹 2. 발견된 유서, 협박에 의해 쓰였다?

두 번째 의혹은 고인의 부친인 안병관씨가 제기했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쓰여 졌을 것이란 게 안씨의 주장이다. 안씨는 아들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 11일 스스로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자처했다.

고인의 분골함이 안치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의 하늘문 추모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안씨는 발견된 유서가 서울대 출신인 아들이 썼다고 하기엔 너무 조잡하다며 급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사실에서 유서를 봤는데 너무나 글이 조잡했다.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교 나온 사람이 그렇게 성의 없게 쓸 수는 없다. 나중에 부모에게 쓴 건 글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냥 넘어갔지만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이럴 수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살을 마음먹었다면 공들여서 썼을 텐데 마치 누군가가 불러주는 것을 급히 받아 적은 듯 보였다는 얘기다. 안씨는 “이건 누군가가 위협해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살로 잠정결론 내린 수사팀에 정면으로 맞섰다.

안씨는 또 “‘사채 썼으니 돈 가져와라, 너희 가족들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고 하면 나라도 최후의 방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사채업자의 협박설을 거듭 주장했다.

그는 “유서에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써있다. 우리 재환이가 돈을 못 갚으니까 압력을 가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청춘을 버렸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노원경찰서 측은 “납치나 타살 가능성은 없다. 의혹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단언했다. 김창식 형사1팀장은 “자살 과정에 쓰인 번개탄을 고인이 직접 사지 않았느냐. 자필 유서도 시신이 발견된 직후 부인 정씨와 고인의 부친이 사본을 통해 친필임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김 팀장은 또 “국과수 부검결과를 봐도 외상이나 저항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심하게 부패가 진행된 상황이라 해도 폭행을 당했다면 부검 과정에서 바로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죽음에 제3자가 개입한 증거나 정황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문제의 유서가 만취상태에서 쓰여 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차 안에서 옷가지와 음식물, 빈 술병이 많이 나왔다. 차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것 같았다. 정확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시신과 함께 빈 소주병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고인이 숨지기 전 만취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유서를 적을 당시도 고인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유서는 A4용지 4장에 큰 글씨로 듬성듬성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 두 장은 ‘국민 여러분, 선희를 사랑해주세요’가 반복해서 쓰여 있었다. 다른 한 장에는 ‘사랑한다. 미치도록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글이 반복해 적혀있었으며, ‘미안하다 이 방법밖에 없다’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장에는 장기기증 의사가 담겨 있었다. 알려진 바대로 ‘장기는 만약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써 주세요. 죽고 나서 빨리 발견돼 쓸 수 있을텐데… 기도할게요’라고 적혀있다.


의혹 3. 가족들, 실종신고 왜 안했나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마지막 의혹은 지난달 22일부터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약 보름여 간 잠적상태였던 고인에 대해 가족들이 왜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일찌감치 실종신고를 했다면 차적 조회 등을 통해 고인의 행방을 찾아 참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일부 언론을 통해 부인 정씨가 고인이 행방불명 된 직후 ‘비공개 실종수사’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본지가 관할서인 서울 노원경찰서와 용산경찰서 등에 확인해본 바 관련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정선희의 한 측근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락이 두절된 지 며칠이 지나자 정선희에게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고인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라 신고를 하면 더 난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해 신고를 미뤘던 것 뿐”이라고 전했다.

고인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상황에서 ‘곧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집을 나간 만큼 채권자들을 피해 무사히 잘 지낼 것이란 믿음으로 기다렸다는 것이다.

특히 정씨는 서울대 출신 엘리트로 자존심이 센 남편이 행여 구설수에 오를까 남몰래 속을 끓였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정씨는 실제 고인이 집을 나간 동안 일주일에 닷새 이상 교회에 나가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장례절차가 마무리되며 안재환은 한줌재로 화했다. 수많은 억측과 의혹이 남아있는 가운데 다음달 1일 경 나올 국과수의 정밀 부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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