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말·호통은 여전, 국감 의원들도 변해야
“공부하는 입법기관 돼야 행정부가 긴장”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지난 27일을 끝으로 국정감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올해 국정감사는 여느 때보다 준비기간이 부족했다. 세월호특별법에 발목잡혀 여야가 휴업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과연 국정감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부실 국정감사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국정감사의 기본은 착실한 준비인데 과연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을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정감사 기간 동안 빛을 발한 국회의원이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국감장을 빛낸 4인의 국회의원 활동을 분석해 봤다.
올 국감 이슈는 ‘카카오톡 검열 논란’ ‘최경환노믹스’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전 인지’ ‘5·24 대북조치 해제’ 등이었다. 국감기간과 맞물려 터진 ‘카카오톡 검열 논란’은 SNS 이용자들의 사이버망명을 부추겼고 급기야 이석우 카카오톡 대표의 ‘감청영장 요청 불응’ 발언으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경환노믹스’ 또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최근 취임 100일을 맞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감기간동안 그동안 펼쳐온 경제정책에 대해 집중검증을 당했다. 외교부 국정감사장에서는 ‘5·24 대북조치 해제’를 둘러싸고 외교부의 전략 부재가 집중 부각됐으며 법사위·대검찰청 국감장에서는 각각 ‘카카오톡 검열 논란’ ‘간첨사건 증거조작 사전 인지’ 등이 큰 이슈가 됐다.
유승민 의원- 새누리당 ‘원조 친박’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맹활약했다. 지난 7일 시작한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의 거친 질문에도 끄떡 않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여당 소속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진땀을 뺐다.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문 뒤 대북정책 변화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 터라 두 장관의 국감 답변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보다 컸다. 특히 여야 의원 모두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생긴 5ㆍ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여부를 집중 따졌다.
각각 7,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윤 장관과 류 장관은 의원들 질의에 흔들림이 없었다. 윤 장관은 “통일부가 중심이 돼 검토할 것”이라는, 류 장관은 “(북한) 고위급이 왔다고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바꾸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하지만 두 장관 모두 유 의원 질의 앞에 흔들렸다. 윤 장관은 지난달 미국의 주요 외교ㆍ안보 연구 기관 대표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이 중국에 경도됐다는 견해가 있다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한ㆍ미 동맹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란 내용의 원고를 언론에 사전 배포했다가 정작 연설에서 빠져 논란이 일었던 점을 지적받자 답변을 하지 못했다.
비록 질의 과정에서 청와대 외교안보팀을 ‘얼라’(어린애의 사투리)로 표현해 논란이 불거졌지만 정부의 장기적 외교ㆍ안보 전략 부재를 꼬집은 유 의원 질의는 윤 장관을 당혹스럽게 했다.
박근혜 정부가 5ㆍ24조치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던 류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유 의원은 “이명박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인정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요구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란 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며 “(정부가 5ㆍ24 조치를) 해제할 때 국민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것이냐”고 물었다. 류 장관이 “국민들이 납득할…”이라고 하자 유 의원은 “그게 뭡니까”라고 재차 따졌다. 류 장관은 “그런 것들은 (북한과) 같이 이야기해서 할 수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유 의원은 곧바로 북한 실세 3인방의 청와대 예방 거부와 관련, 이들 방한을 논의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 멤버들을 향해 “국가안보실장, 외교장관, 통일장관, 비서실장이 다 모여 기껏 짜낸 꾀가 이것밖에 안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류 장관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한편 유 의원이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어 청와대를 직공한 데는 차기 원내대표 출마를 겨냥한 독자목소리 내기, 존재감 부각 등의 의도가 담겼다는 관측이 나왔다. 또 ‘미래 권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차별화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는 내년 5월에 있을 원내대표 선거 출마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유 의원은 “그런 것을 노렸다면 오히려 꾹 참고 조용히 있는 게 낫지, 청와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가 원래 그런(해야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지 않느냐”며 “문제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때 원조 친박(친박근혜)이었던 그는 토다는 측근을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해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명재 의원-새누리당 학구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여당 소속이면서도 야당 의원 같은 지적들을 쏟아냈다.
“최경환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의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경제주체들의 위축된 심리가 개선되더라도 올 하반기 내 경기회복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가 올 6월 현재 1040조원이고 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도 너무 빠르다. 주택담보대출이 생계형·사업용 자금으로 전용되면 연체확률이 높고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가계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갖고 있나.”
옛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인 박 의원은 ‘늦깎이’ 초선이지만 평상시에도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초선으로 보좌진들을 긴장시키곤 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으로 국회 입성 후 첫 국감인 올해 국감은 그에게 부담이 적지 않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전문가이긴 하지만 의원들의 기피 상임위 중 한 곳인 기재위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전문용어, 통계수치들이 넘쳐나는 기재위에서 그는 국감 일정이 잡히기 전부터 자료들을 탐독하며 현안을 파악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공부하는 입법기관이 돼야 행정부가 더욱 긴장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24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경기부양책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최 부총리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초이노믹스’ 약발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박 의원은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국민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 돈이 다시 계좌로 들어가는 ‘돈맥경화’ 현상이 있다”며 “물가도 23개월째 1%대인데 이것이 산업·경제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안규백 의원-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은 국감기간 동안 해군이 잠항능력이 부족한 성능미달의 잠수함을 무리하게 전력화 시켰다는 점을 지적해 이슈화 시켰다.
지난 15일 계룡대에서 열린 해군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 의원은 “2008년부터 해군이 인수한 214급(1800t급) 최신예 잠수함 3척의 잠항 능력이 알려진 것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214급 잠수함은 수 주 동안의 잠항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며칠에 불과했으며, 특히 공기가 없는 수중에서는 엔진을 가동하는 연료전지가 열흘 이상 작동해야 하는데, 잦은 고장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또 이들 잠수함의 연료전지가 해군이 인수하기 전에 이미 93차례나 고장 난 사실도 확인됐다. 인수 후에는 무려 102차례나 정지됐다.
안 의원은 “연료전지에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면 추가적으로 성능시험을 실시해야 타당하다”며 “잠수함의 최대 능력을 확인한 뒤에 전력화를 했어야 함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시험평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군은 “이들 함정이 진수된 지 6년 만인 지난해, 연료전지의 냉각체계상 문제를 찾아내 올해 상반기에 수리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수리한 연료전지가 심해에서 열흘 이상 작동하는지 재검증이 필요하다”며 “또 올해 말부터 전력화되는 함정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철저하게 시험평가를 거쳐 전력화를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 밖에 안 의원은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 질의자료를 통해 “지난 2011년부터 작년까지 K-21 장갑차 51대의 파도막이가 훈련 도중 파손됐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K-21 장갑차 파도막이는 하부에 고정되어 있어 파손되기 쉽다”면서 “특히 무게를 줄이려고 섬유복합 재료로 만들어져 금속보다 충격에 약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면 야전 상황에 맞도록 근본적인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파도막이를 교체하는 등 긴급히 개선 작업을 했지만 근본적인 설계 결함을 고치지 않고 땜질식 처방만 했다”고 지적했다.
파도막이는 장갑차가 수상으로 운행할 때 파도를 막아 주고 수중에서는 장애물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보조장치다.
서기호 의원-정의당 ‘국민판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23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담당 검사가 증거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제2협조자 김모(60)씨를 직접 만난 전후 정황을 근거로 증거조작 사실을 사전에 알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국정원 직원과 제1협조자 김모(62)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조작된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담당 검사에 대해 “조작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다만 직무태만과 품위유지 위반 등의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징계만 내렸다.
서 의원에 따르면 간첩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이모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국정원 협조자 3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뒤 이 중 한 명인 김씨를 사무실로 불러 증거 입수 경위를 확인했다.
김씨를 만난 이 검사는 돌연 김씨에 대한 증인신청을 철회했다. 김씨가 증거입수 경위를 자세히 모르고 있다는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 김씨는 증거조작에 깊숙히 관여한 혐의가 드러나 최근 구속기소됐다.
이 때문에 서 의원은 “이 검사가 조작된 증거 입수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김씨를 만났고, 구체적으로 조작된 증거 입수 경위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 검사가 증인신청을 철회한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검사장)은 “이 검사는 김씨를 만나 ‘비정상적이지만 합법적으로 가져온 증거’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당시엔 국정원과 김씨가 (증거조작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두둔했다.
이밖에 서 의원은 ‘실시간 모니터링’ 등 내용이 담긴 대책회의 문서로 ‘사이버 검열’ 논란을 자초한 대검찰청을 대상으로 날선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대검 대책)회의자료에 대통령 발언을 언급하며 근거 없는 폭로성 발언, 정부 정책,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중점적으로 수사한다고 돼 있다”며 “이런 경우 고소가 없는 경우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돼 있는데 이 말은 결국 자의적·표적수사하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이 의혹을 제기하면 다 수사하는거냐. 그러면 국가원수모독죄가 부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장은 “염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명하게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서 의원은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감에서 검찰이 ‘대통령 호위무사’로 전락했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하자 이틀 뒤 검찰이 법무부 지시를 받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면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발 빠르게 움직여 ‘대통령의 검찰’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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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