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상자와 끈의 제작에 있어서는 단연 일본이 세계 최고이다. 상자 뚜껑을 닫을 때 뚜껑을 밑짝에 올려놓으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스르르 덮어진다. 또 족자 그림을 오동상자에 말아서 넣기 때문에 아무리 표구를 잘해도 족자의 좁은 축 직경대로 말면 잘못하면 꺾이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후도마끼(폭이 넓은 별도의 축軸)’를 절묘하게 제작해 족자 축보다 서너 배 직경이 큰 오동축을 따로 만든다. 후도마끼를 족자 축 위에 덧씌워 족자 그림을 넓은 축에 말게 한다.
우리 미술품은 공예가 큰 줄기지만 우리나라 도자기와 목기, 금속공예와 침선공예 등은 특히 중요한 존재이다. 우리나라는 좋은 목재가 귀하다. 그럼에도 우리 목기는 실용적이어서 단순 간결하고 비례가 아름답다. 짜임새가 절묘해 나무못이나 아교 부레풀은 거의 안 쓰고도 아주 자연스럽고 탄탄한 목가구가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도 남는다. 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아름다운 매듭공예가 발달한 나라이다. 동다회도 광다회도 자유자재로 짜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오동상자와 오동나무상자 매는 끈은 열악하다. 그래서 누가 유물을 가져오면 상자와 끈만 봐도 속에 든 유물이 어떠하다는 것을 직감하고도 남는다. 또 일본 고급품은 중국과 상자의 재질은 다르더라도 상자 속 벽을 솜을 둔 명주로 바른다. 다시 명주에 솜을 두어 거기 들어갈 내용물과 똑같은 형태의 빈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 뒤 유물을 넣은 다음 명주에 솜을 둔 뚜껑을 덮고 오동상자 뚜껑을 덮거나 여닫이로 덮는다.
그냥 오동상자에 넣을 때도 솜을 둔 명주 보자기에 싼다. 또는 명주로 대접이나 잔을 넣는 주머니를 만들고 대접이나 잔의 속과 똑같은 크기의 명주솜으로 모양을 만들어 덮는다. 주머니에 넣고 끈으로 맨다. 그리고 상자에 넣고 사방 귀퉁이에 명주 솜방망이를 세우고 덮개를 덮고 뚜껑을 닫는다. 이처럼 갖은 정성과 아기자기한 방법을 써서 유물을 싸서 담는다. 그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한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정성들여 포장하고 다시 큰 상자에 담는 이중 상자에 담는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명품목기를 제작해 왔고 다종다양한 매듭을 맺고 동다회 광다회를 만들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왜 어설프고 엉터리 오동상자에 유물을 볼품없이 싸서 덮고 종이장 같이 얇은 나이론실로 짠 광다회 실끈으로 상자를 묶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우리 유물을 우리 자신이 귀하고 소중하게 다룰 정성도 없고 다룰 기술도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 역시 고미술업계가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중국 물건 특히 도자기가 우리나라 도처에 은밀하게 또는 대놓고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짜임에 틀림없는 중국 도자기가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다. 또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한심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닌가.
만약 중국 가짜 도자기를 살 재력으로 우리 도자기를 사서 모았다면 얼마나 뜻있는 일이 됐을까.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를 사서 온 분들이 하나같이 우리나라 오동상자에 종이와 비닐로 싸서 넣고 엉터리 끈으로 잡아 맨 볼품없는 외관에 중국 도자기를 사서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상자에 이런 포장은 중국에도 일본에서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십중팔구 아니 거의 전부가 믿을 수 없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제주도에 중국인이 자유롭게 왕래해서 땅도 사고 장사도 하고 있다. 고미술 경매도 수시로 열고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중국인 감정가가 한국에 와서 수백 만 원씩 하는 감정서를 써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 거래가 상당한 금액이라는데 우리 고미술시장에 유입돼야 할 자금이 이상한 중국미술품 수입과 거래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허덕이는 우리의 고미술 소상인만 더욱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결국 고미술업계는 재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 모두가 가짜 세상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청화백자 장생문준

19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백자 가운데는 대형에 속하는 준은 입부분은 높고 곧바로 서고 몸통의 윗부분은 완만하게 팽배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당당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입과 어깨부분에는 청화로 각각 당초문대와 여의두문대를 두르고, 주문양으로 몸통부분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그 움직임이 힘차고 위엄이 있다. 아울러 이 용은 5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 준이 왕실에서 사용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몸통의 아랫부분에는 길고 각진 연판문대를 둘렀다. 푸름을 머금은 맑은 백자유약이 입혀져 있다. 부분적으로 빙렬이 있고 광택이 은은하다. 굽은 밖으로 약간 벌어진 안다리굽으로 굽다리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구웠다. 이러한 대형의 항아리는 현재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형이나 문양·유색 등에서 이 항아리는 최상급에 속한다.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