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질 줄 모르는 프런트…사령탑 교체 칼자루 흔들기 전념
큰돈 안들이는 두산식 화수분 야구…일회용 감독 양산 우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프로야구가 포스트시즌에 접어들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는 가운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팀들에겐 감독 교체라는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해당 감독들은 자진 사퇴와 경질의 차이만 있을 뿐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다. 그러나 성적부진을 이유로 단장 등 프런트 고위직이 교체된 구단은 단 한 곳도 없다. 주도권은 프런트가 갖되 실패할 경우 책임은 감독이 떠안는 비정상적인 한국식 ‘프런트 야구’가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규리그 4강 진출을 놓고 각 팀들의 명암은 엇갈렸다. 올해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를 비롯해 2위 넥센 히어로즈, 3위 NC 다이노스, 4위 LG 트윈스 등은 남은 가을야구의 패권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면 5위부터 9위까지의 팀은 다음시즌 필승을 다지며 준비에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올 시즌 팀의 성적은 감독들에게 칼바람으로 몰아치며 유독 매섭게 불고 있다. SK, 롯데, 두산, 한화 모두 사령탑 교체를 천명했다. 단, KIA 타이거즈만이 선동렬 감독을 재신임했다.
이 중 두산이 1년 만에 감독교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두산은 송일수 감독을 한 시즌 만에 경질하고 김태형 신임 감독을 내정했다.
김승영 두산 사장은 지난 21일 “구단이 송일수 감독에게 바랐던 세밀한 일본야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 시즌 팀 4강 탈락의 부진이 큰 영향을 끼쳤다”며 “김태형 신임 감독은 두산에서 선수로 시작해 코치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 두산의 야구를 잘 실현해줄 사람”이라고 교체 이유를 밝혔다.
김태형 신임 감독은 1990년 두산의 전신인 OB에 입단, 2001년까지 활약했던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1995년과 2001년 두 번의 한국시리즈 정상을 함께 한 우승멤버다.
이에 두산은 “오랫동안 구단에 몸 담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야구를 추구하는 지도자다. 근래 퇴색된 두산 팀컬러를 복원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꼭두각시 찾기…4년 사이 5번째 감독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두산은 최근 4년 사이 5번째 감독(대행 포함)을 선임함으로써 감독들의 무덤이 됐다. 2004년부터 팀을 맡아 2011 시즌 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 김경문 NC감독을 시작으로 김광수 대행(2011년), 김진욱 감독(2011년 10월~2013년 11월), 송일수 감독(2013년 11월~2014년 10월)까지 김광수 감독대행을 제외하고 모두 계약 기간을 남기고 팀을 떠나야 했다.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물론 송 감독의 경우 올 시즌 선수들의 신망을 완전히 잃은 데다 주위 사람들과도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또 구단이 원했던 ‘세밀할 것’이라던 경기 운영 능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무조건 많이 던지고 휘두르고 뛰면 된다고 믿는 ‘구식’을 추구했다.
여기에 선수단이 애로점을 표출하면 “내 방식은 이러하니 무조건 따라오라”며 강압적인 자세를 취해 ‘소통불가’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송 감독이 지고 떠나는 것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여기에는 두산 특유의 프런트 야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장 피 말리는 밀착형 프런트
두산은 2011년 취임한 김 사장과 김태룡 단장이 ‘현장 밀착형의 강한 프런트’를 지향해왔다. 김 사장은 부임 당시 “현장에 간섭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20년간 두산 구단에서 일하다 보니 강한 프런트가 있어야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 지원 체계가 강해야 팀이 강해진다고 신념같이 믿고 있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두산 프런트의 입김은 강력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두산은 지난해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김진욱 감독에 대해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경질했다. 이때 내민 카드는 지도자로서의 경험이나 국내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재일동포 출신의 송 감독이었다.
당시 두산은 “송 감독은 경기 중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야구를 구사한다. 선수들과 많은 나이 차이에도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선수들로부터 신임이 두텁다”고 했다.
하지만 두산의 실험은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팀이 잘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라는 게 구단 프런트의 해명이다.
그러나 그들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송 감독이 부임 후 지난해 준우승팀에서 올해 6위로 추락한 점에서 감독 교체의 빌미는 찾을 수 있지만 애시당초 투지로 상징됐던 두산 야구와 송 감독의 일본식 야구가 맞지 않다는 팬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구단 프런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패한 뒤 감독과 베테랑 선수들까지 대거 내보냈다.
더욱이 송 감독의 선임을 주도했던 프런트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송 감독에게 떠넘기면서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성적 부진에 대해 프런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면책 특권을 발휘해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프런트 주도 성적·신뢰 밑바닥
두산만큼이나 프런트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롯데 역시 정규시즌이 끝난 직후 물러난 김시진 감독의 자리를 놓고 외부인사와 내부 승진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롯데는 2001년 이후 감독이 네 번째 바뀌게 되지만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 교체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올 시즌 롯데 추락의 근본 원인은 지난 8월 한창 4강 싸움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김 감독과 프런트 간의 불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롯데 프런트는 코치진의 교체를 요구했고 수족이 잘려나갈 것을 우려한 김 감독은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이에 프런트는 김 감독의 사퇴를 받아들이고 감독 대행체제로 팀을 운영하려 했지만 구단 수뇌부가 거부해 결국 정민태 투수코치만 물러나는 선에선 일단락지었다.
2000년대 후반 가을야구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SK 와이번스 역시 프런트의 힘으로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SK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이만수 감독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재신임하지 않고 김용희 육성 총괄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이처럼 ‘프런트 야구’라고 할 만큼 프런트의 영향력은 막강해졌지만 이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는 “SK 김용희 감독이나 두산 김태형 감독이 선임된 배경에 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다는 프런트와의 친분이 더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반면 야구 선진국 미국의 풍경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LA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조차 통과하지 못하자 템파베이 레이스 단장 출신인 앤드루 프리드먼을 구단 운영 부분 사장으로 영입하고 네드 콜레티 단장이 물러나는 등 프런트를 대폭 개편했다. 다만 돈 메팅리 감독에게는 기회를 한 더 주기로 해 프런트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야구전문가는 “팀이 성적을 내기 위해선 프런트가 과도하게 현장에 개입하지 말고 책임도 함께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산식 머니볼 프런트 명암 엇갈려
이처럼 프런트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두산 프런트는 또 다시 1군 초보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우려를 더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 역시 앞서 경질된 김진욱, 송일수 감독과 마찬가지로 1군 사령탑을 맡았던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 감독’이다.
여기에 김 감독에게 제시된 계약기간은 불과 2년으로 계약기간과 실력발휘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부족한 신임 감독이 짧은 시간에 자신만의 야구 색깔을 드러내기에는 촉박한 시간으로 보인다. 이는 ‘또 한 번 써보고 안 되면 마는’ 식의 일회용 감독으로 전락할 우려도 담겨 있어 부임 첫 해부터 김 감독에게는 험난한 시간이 예고된다.
반면 이에 관해 저비용 고효율의 두산 뚝심 야구가 작용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일명 ‘머니볼 프런트’가 보인다는 것이다.
‘머니볼’은 지난 1998년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부임한 빌리 진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것으로 2003년 책으로, 2011년엔 영화로 개봉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으로 유명했다. 이에 빌리 빈 단장은 ‘세이버메트리션(야구를 통계학·수학적을 분석하는 것)을 기반으로 저비용·고효율 선수를 영입하면서 선수단을 개편했다. 개편 초기엔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지만 2000년부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만 6번 차지하며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물론 두산이 오클랜드와 같은 전략은 아니지만 저비용·고효율 정책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공통점은 존재한다. 일명 ‘화수분 야구’로 큰 투자 없이 유망주를 육성해 팀을 구성했다. 덕분에 이종욱, 김현수, 최주환, 최재훈, 변진수, 허경민, 양의지 등 걸출한 선수들을 발굴했다. 신임 감독 역시 큼지막한 영입은 없지만 초보 감독들에게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이제 두산은 김 신임 감독 주사위를 던진 만큼 다음 시즌 성적을 지켜봐야 프런트의 판단을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해처럼 번번이 권한행사와 간섭으로 현장을 어지럽히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관한다면 팬들의 질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의 발전과 팀의 성적을 위한다면 구단은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한국식 프런트 야구를 구사하기보다 책임을 현장과 나누고 팀 성적을 위해 헌신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이 절실하다는 점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