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13] 대통령 ‘북’치고 여의도는 ‘장구’쳤지만…
[알쏭달쏭 정치이야기-13] 대통령 ‘북’치고 여의도는 ‘장구’쳤지만…
  •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 입력 2014-10-27 14:29
  • 승인 2014.10.27 14:29
  • 호수 1069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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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27년 된 현행 헌법 개정 시기는 ‘무르익어’
‘개헌블랙홀’ 던진 대통령 개헌추진 고도 전략

질량이 아주 큰 별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체 중력에 의해 스스로 붕괴되어 강력하게 수축함으로써 엄청난 밀도와 중력을 갖게 된 천체. 주변의 다른 천체를 끌어들인다고 한다. 천문학 용어인 블랙홀(black hole)에 대한 설명이다. 블랙홀 속에서는 빛이나 물질, 전파 등 어떤 것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천문학 용어인 블랙홀이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의 화두다. 대통령이 화두를 던졌고, 여야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의도적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통령과 같은 선상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10월 29일은 현행헌법이 공포된 지 27주년 되는 날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한열 최루탄 살해사건으로 상징되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성공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이 바로 지금의 헌법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굴곡의 우리나라 현대사이기도하다. 발췌개헌이니, 사사오입개헌이니, 삼선개헌이니 하면서 우리나라 오명의 현대사와 함께 해온 것이 헌법의 역사였던 것이다.

1948년에 헌법이 제정되었으니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이제 겨우 66년 정도의 역사에 불과하다. 일본의 아베가 그토록 고치고 싶어 하는 일본국헌법이 시행된 것이 1947년 5월이니 우리나라 헌법보다 1년 역사가 더 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 번도 개정을 하지 못했으니 아베가 헌법개정에 안달이 난 것도 일견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다.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배경만 보면 말이다.

어쨌든 현행헌법은 우리나라 헌법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헌법이다. 우리의 생활규범을 지배하고, 우리의 정치의식을 한정하며, 우리의 경제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헌법이다. 27년 역사는 사람으로 치면 거의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월터 번햄(Walter. D. Burnham) 등이 정당정치의 재편성 이론으로 세대이론(generational theory)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런 내용이다.

25년 내지 30년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어떠한 정당의 지지로 견인한 이유의 의미가 약해져 정당이 재편성 된다는 것이다. 즉 한 세대가 지나면 그 정당체제, 정치체제를 유지해왔던 외적 요인들이 변화하여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의 87년 헌법이 군부독재정권의 종지부를 찍고 여야당간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당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냉전체제의 붕괴와 소련의 몰락이 일본정치의 보수우경화를 가져온 그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소위 ‘2012년 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던 움직임들은 정권교체의 의미, 시대교체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 ‘87년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던 현행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의 또 다른 전략이었던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세대이론에 비춰보면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헌법개정의 시기는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먼저 필요한 것은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발의하거나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로 발의할 수 있다.

현직대통령과 국회와의 정치적 타협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한 헌법개정안을 의결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는 여야간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헌법개정안 발의가 의미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헌법개정은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합의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인 것이다.

현직대통령은 자신의 레임덕을 우려해서 헌법개정에 소극적으로 되는 경향이 강하고, 여당은 대통령 눈치를 봐야하고, 야당도 여당과의 합의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현재의 정치구도 하에서는 헌법개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마지막 관문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헌법개정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잘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크게 예산이 필요한 공약이 아닌 헌법개정은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한 공약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신년사에서는 개헌 반대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나온 것이 지난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온 소위 ‘개헌 블랙홀’ 발언이었다.

“개헌이라는 것은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이게 한 번 시작이 되면 블랙홀 같이 모두 빠져들어 이것저것 성과를 못 내게 됩니다.” 누구나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개헌논의가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어느 정도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 수 있는 것인데, 굳이 대통령이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정말 개헌논의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한 말일까?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개헌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한 발언일까?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대통령이 개헌논의 하지 말자고 해서 정치권이 그 말을 듣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사고로 ‘개헌 블랙홀’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여의도 정치권이 술렁인 것이 반증이다.

국회에는 155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이 있다. 새누리당 57명,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98명 참여하고 있다.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을 낳는다고 비난받고 있으니 이원집정부제건, 분권형이건, 내각제건 지금과는 다른 권력구조의 헌법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이다.

이 모임이 10월초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에 화답하여 ‘개헌 블랙홀’ 발언을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 이후 4대강 전도사에서 개헌 전도사로 탈바꿈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경제 전념은 5년 내내 정부가 할 일이고, 그래서 국회가 개헌 발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헌법개정에 대해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세월호특별법 가이드라인에 이은 개헌 가이드라인은 의회주의를 위협하는 처사”, 정세균 비대위원이 “피감기관의 총책임자인 행정부 수반이 국감을 앞두고 국회활동에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것은 상식에도 예의에도 맞지 않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개헌 주도권 싸움이 여의도 정치 전반으로 옮겨간 것이다. 압권은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6일 중국 방문 중 기자간담회에서 “개헌논의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고,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을 현실화시켰다.

그리고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개헌은 국가적 중요한 과제다. 이 일이 되려면 이번 정기국회 때 반드시 경제 관련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 이게(경제활성화법안) 통과되지 않으면 개헌의 문제는 완전히 물 건너간다. 이것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략대로 여의도 정치권이 화답한 것이다. 이제 개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개헌 블랙홀’ 발언으로 북을 친 사람은 대통령이고, 장구를 치면서 화답한 사람은 여의도의 유력정치인들이다. 아마도 내년 이맘때쯤에는 10차 개헌헌법이 우리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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