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세계 최초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후 영웅 등극
현재 매머드 복원, 우수경찰견 복제 등 활발한 연구 활동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2005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 지난 2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수 160만 명을 돌파하며 10년 전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서울대학교 수의대 교수였던 황우석 박사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하면서 난치병 환자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황우석 신드롬’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황 박사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황우석의 신화는 ‘논문이 조작됐다’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황우석 박사가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9년 젖소 영롱이의 복제에 성공하면서다. 그러다 2004년 2월 세계적인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줄기세포 관련 논문을 게재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황 박사는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만드는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를 1개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체세포의 핵을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학계의 정설을 뒤집은 것으로, 황 박사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를 만든 것이다.
온 국민이 응원하는 세계적인 과학자
그리고 다음해인 2005년 황 박사는 11개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다시 한 번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황 박사에게 체세포를 제공한 11명은 모두 난치병 환자들로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는 환자에게 사용할 때 면역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또 2004년 242개의 난자에서 1개의 줄기세포를 얻은 것에 비해 2005년에는 185개의 난자에서 11개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면서 성공확률을 높였다. 이로 인해 황 박사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 여세를 몰아 황 박사는 같은 해 8월 ‘스너피’라는 이름의 개 복제에도 성공했다. 인간과 유사한 유전병을 가진 개 복제의 성공은 난치병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황 박사 역시 난치병 치료에 자신감을 보였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룹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를 만나서 “강원래를 벌떡 일으키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었다.
인간의 난자를 사용하다 보니 ‘윤리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이미 대한민국을 휩쓴 ‘황우석 신드롬’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 황 박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항공사에서는 황 박사에게 퍼스트 클래스를 무료 지원했고, 국회에서는 황 박사에게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정원에서 직접 황 박사의 경호를 맡았으며 심지어 ‘줄기세포 배양성공’ 기념우표까지 발행됐다. 그러나 해당 우표는 후에 전량 회수됐다.
황 박사의 인기가 절정에 치닫고 있던 2005년 11월. MBC PD수첩은 황 박사의 난자 매매 의혹에 대해 방송했다.
조작된 연구결과 줄기세포는 없었다
당시 황 박사는 연구에 사용된 난자 중 매매된 난자는 전혀 없으며 기증된 난자만을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600개가 넘는 난자가 한 개당 150만 원에 거래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황 박사의 연구를 도와주던 노성일 미즈메디 원장이 “나 혼자 저지른 짓으로 황 박사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오히려 PD수첩 측이 역풍을 맞았다. 하루 만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3천여 개의 항의 글이 올라오고 방송국 앞에서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심지어 담당 PD는 징계를 받았고 프로그램은 방송중단 조치까지 내려졌다. 그리고 반대로 황 박사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모 대학 생물학 사이트에서 황 박사 논문 조작 의혹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노성일 원장은 “체세포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그리고 PD수첩은 당시 황 박사 연구팀에 있었던 제보자로 인해 밝혀진 이번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을 방송했다. 제보자는 “황 박사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며 “압박감 해소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연구팀 김모연구원은 “황 박사가 직접 3개의 줄기세포로 11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만들라고 주문했다”고 고백했다. 논문에 포함된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줄기세포는 없었다. <사이언스>는 줄기세포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당사자가 보낸 서류나 데이터만으로 심사를 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어 서울대의 자체 조사에서도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고, 황 박사의 연구결과는 조작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검찰은 논문 조작 사실을 숨기고 지원금·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로 황 박사를 기소했다. 황 박사는 지난 2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계속되는 연구 미국서 특허 등록해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난 이후 ‘황우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언제 열광했냐는 듯이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황 박사는 서울대 파면 직후 2006년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2008년에는 애완동물 복제 전문 기업 에이치바이온 대표이사가 됐으며 2011년 코요테 복제에 성공했다.
현재는 빙하기 때 멸종한 ‘매머드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또 지난 2009년에는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올 초에는 2004년 만들었던 1번 인간배아줄기세포(NT-1)가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최근에는 황 박사가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 중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한-중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황 박사에게 ‘논문 조작 사건’은 지울 수 없는 불명예다. 과연 황 박사가 이런 불명예를 밟고 일어나 줄기세포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