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들 요구로 야외테이블 설치했다 벌금 부과
50년 넘은 미용사법, 관할부처 개정은커녕 방관만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올 한 해 각 정부기관 등에 줄기차게 요구한 정책이 있다. 바로 규제개혁이다. 각종 법률, 조례 등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사문화 돼 있는 것들이 기업이나 시민들의 경제활동과 생활에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게 있다면 과감하게 뜯어 고치라는 주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주문은 기업들에게는 큰 환영을 받았다. 쓸데없는 규정 때문에 과감한 투자와 각종 개발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가게를 오픈하고 간판을 하나 세우려고 해도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만들려고 해도 각종 규정과 규제 때문에 쉽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일요서울]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다양한 규정과 규제 등을 정리해 봤다.
지난 22일 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시간제 일자리 확산 저지, 여성계 공동 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이 시위를 지켜보던 한 경찰의 손에 낯선 물건이 들려 있었다. 바로 소음측정기다. 새롭게 강화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위현장의 소음을 측정하고 있던 것이다. 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시위 소음이 낮 학교와 주거지역의 소음기준인 65데시벨(dB)을 초과하면 음향장비를 압수하는 등 강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젠 시위도 침묵시위만 해야 할 판
경찰청에 따르면 22일부터 광장과 상가 주변의 소음 기준을 주간 75dB, 야간 65dB로, 기존보다 5dB 낮추는 내용의 소음 강화 시행령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차량의 시동 소리가 65~75dB, 전화벨 소리가 70dB 정도에 해당한다. 이 시행령을 위반할 시 최대 6개월 이하 징역이나 최대 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집회현장의 소음이 차량소리나 전화벨 소리보다 작아야 한다면 사실상 소리없는 시위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회현장 배경소음만 측정해도 보통 65dB 내외가 나오는 상황에서 75dB을 넘지말라는 것은 확성기 등의 사용금지는 물론 각종 구호와 노래도 부르지 말라는 말이다.
경찰은 “여전히 선진국보다는 소음 단속 기준이 약하다”며 “집회를 탄압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에서는 “도대체 누가 이런 법을 만들었냐?”며 “이건 집회나 시위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최소한의 의사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간판·창문형 광고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돼
경찰은 개정된 법률안이 선진국보다는 소음 단속기준이 약하다고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은 최고 소음이 85db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전에서 어학원을 운영하는 최모 원장은 어학원을 개원하면서 분통터지는 일을 경험했다. 최 원장은 상업지역 상가 4층에 어학원을 오픈하면서 홍보를 위해 간판을 달고 외부 창문에 글씨를 넣어 홍보를 하려고 했으나 해당구청이 불법이라며 허가를 하지 않았다.
간판이나 창문광고는 대부분의 학원들이 하는 기본적인 홍보방법이다. 그런데 규정상 불법이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고 해 업체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학원이 들어선 반대편 건물에는 간판이나 창문형 광고 모두가 허용이 되고 있었다. 똑같은 문제인데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되다 보니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음식업체의 애로사항도 많다. 모 음식점은 건물 밖 사유지에서 야외 테이블 영업을 하다 구청의 위생 단속에 걸려 영업 정지 일주일을 받았다. 여름철에 야외 테이블을 요구하는 손님은 많은데 안 된다고 하면 손님을 받을 수 없다. 알고 보니 지자체장이 옥외 영업 가능지역을 별도로 지정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를 지정해 준 사례가 없다.
상비의약품 판매하려면 24시간 연중무휴 운영?
서울 강서구에서 20년 넘게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5년 전 정부의 나들가게 지원사업을 신청해 점포를 리모델링한 후 상비의약품 판매업체로까지 지정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심야시간 및 공휴일에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구입하면서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4시간 연중무휴 점포 중 바코드 시스템과 위해상품 차단 시스템을 갖춘 소매점에서 상비의약품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김씨는 법정 시스템을 갖추는 한편 의약품 판매를 위해 필요한 4시간의 사전교육까지 받았다. 하지만 약사법 제44조 2항에 규정된 ‘24시간 연중무휴 운영’이라는 상비의약품 판매자 등록 요건 때문에 점포 운영이 힘들어 상비의약품 판매자격 반납을 고려중이다.
김씨는 “밤 12시 이후에 상비의약품을 찾는 고객도 없는데 연중무휴로 가게를 닫지 말고 운영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지방규제신고센터와 중소기업옴부즈만실을 통해 개선을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관부처인 복지부는 규제 개선 요청과 소비자 후생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용 불가”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메이크업 샵 하려면 미용자격증 필수라니
메이크업 전문 경력 20년의 유모씨는 6년 전 창업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미용사 자격증을 따야만 메이크업 샵을 오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61년에 만들어진 미용사법을 전신으로 한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메이크업은 미용업의 한 분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50년도 넘은 규정인데 세월이 변하면서 시장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결국 메이크업분야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헤어자격증도 따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비용도 두 배로 들고 시간도 두 배로 들다 보니 창업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메이크업이 전체 미용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지만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당 권한을 가지고 있는 보건복지부 생활위생과에서는 아직 주변 분위기나 모든 상황이 메이크업을 별도 업종으로 지정 관리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현재 메이크업 산업 규모는 약 1조 8000억 원으로 관련 종사자만 13만 명에 달한다. 지난 한 해에만 30% 이상 성장했으며 늘어난 메이크업 전문 샵만 해도 2만 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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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