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연구가 이영재씨 “리움 미술관 추사작품 가짜” 주장
추사 김정희 연구가 이영재씨 “리움 미술관 추사작품 가짜” 주장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8-01-17 10:17
  • 승인 2008.01.17 10:17
  • 호수 716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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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 전시품들 감정 다시 받아야”
사진1 · 사진2 · 사진3 (왼쪽부터차례대로)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한 국내 유명미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 중 일부가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추사 김정희 연구가이자 추사작품 및 다수의 고(古)서화를 소장하고 있는 이영재(78)씨에 따르면 시중에 돌고 있거나 박물관 등에 전시되고 있는 추사 김정희 작품 중 상당수가 가짜라는 것. 이씨 주장대로라면 리움에 전시된 작품들 중 가짜도 많다는 미술계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셈이어서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리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 인사들에 따르면 리움 쪽은 미술품 구매전문 감정단을 통해 위작여부를 철저히 가려낸다. 하지만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 김정희 작품 중 일부가 위작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 말기부터 집안에서 추사작품을 모아왔으며, 40년간 추사작품을 연구해온 이영재씨는 시중에 나도는 추사작품의 상당수가 가짜라며 미술계의 현 실태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등에 가짜 추사작품이 버젓이 경매에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이게 분명 가짜 임에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그만큼 우리미술계는 썩어 있다. 모두 고객들 눈을 가린 채 값을 올려 팔아먹는 데만 급급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이런 실태는 우리 문화유산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글씨는 말하자면 DNA와 같다. 필체는 개인특성이 그대로 스며들기 때문에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인데도 버젓이 위작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삼성의 리움미술관에 있는 추사작품 중 일부도 가짜다. 심지어 이병철 회장이 추사작품 중 제일 좋아 했다는 작품<사진1>도 가짜다”라고 주장했다.

사진 1, 2, 3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 작품 중 일부다.


위작 증거들은 바로 이것

그에 따르면 <사진1>의 원 안에 글씨들이 추사작품이 아니란 증거라고 했다. 추사 글씨는 굵고 힘이 있으며 글씨체가 선명한 게 특징이지만 원안 글씨는 선도 가늘고 알아보기 힘들게 얼버무려져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진2>는 추사의 진품이다. 글씨를 살펴보면 비록 서체는 달라도 이씨 말처럼 확실히 구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움, 추사작품 가릴 능력 없다”

이씨는 “서양화는 위작여부를 가리기가 매우 힘들다. 진품과 비슷한 때 만들어졌다면 거의 위작을 구별할 수 없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동양화나 서예는 다르다. 모든 작품에 낙관과 친필이 반드시 들어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이씨는 “서예의 경우 친필임에도 낙관을 찍고 그 옆에 또 친필로 자신이 쓴 글임을 표시한다. 가짜여부를 가리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나. 그런데 우리 미술계는 이런 것을 제대로 보는 전문가가 없어 가짜가 진짜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작품 중 <사진3>도 명백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씨 주장대로라면 리움을 비롯한 다른 미술 박물관들은 어째서 위작의 증거들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이씨는 추사가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고 있어서다. 추사의 운필은 18가지가 넘어 전문가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려내기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추사작품을 제대로 감정·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또 이씨는 리움에 추사의 가짜 의심작이 유입된 경위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씨는 “삼성의 고 미술품을 동주 이용희 선생과 청명 임창순 선생이 감정해 준 것으로 안다. 두 분은 고명하신 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추사에 대한 전문가라 할 수 없다. 이 두 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감정했다고 해도 추사전문가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추사작품을 제대로 감정하려면 고도의 과학기술력을 빌어 해야 한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과거 추사작품을 사들일 땐 그만한 과학기술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회장이 위작을 진품으로 잘못 알고 사들였을 것이라는 게 이씨 추측이다.

이씨는 “서도에 조예가 깊거나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추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필체를 감별할 때 한글학자가 아닌 국립과학연구소를 찾는 이유와 똑같다. 추사는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학자이자 서도 대가다. 그럼에도 그의 글씨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한심한 상황에 나 혼자 가짜를 가짜라고 주장해도 누가 믿겠나. 장사꾼들이 진짜라고 팔아버리면 그만이다”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씨 주장 근거 없다”

그러나 리움 측은 이씨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리움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소장 작품을 위작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그분이 어떤 근거로 추사작품을 위작이라 주장하는지 모르겠지만, 리움이 갖고 있는 추사작품은 국내 최고라 꼽히는 다수의 감정가로부터 진품임을 확인받은 것들이다. 위작이라면 그들이 하나같이 진품이라고 입을 모았을 리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누군가 리움 소장품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해도 작품들은 모두 전문가의 감정평가가 끝난 것들로 진품임이 확인됐다. 때문에 소수의 문제제기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감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편 이씨는 미술계에 위작이 만연한 내막도 설명했다.

이씨는 “미술계는 몇몇 ‘큰손’들이 장난을 많이 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따로 없다. 이는 위작논란이 된 이중섭·박수근 화백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 진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뭐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무엇이겠나. 그림을 비싼 값에 팔아먹은 사람들 입장에서 자신이 판 그림을 가짜라고 할 리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꼭 같은 곳에서 그림을 샀던 사람은 그 사람의 그림이 가짜라고 판명나면 자신의 그림도 쓰레기가 될 판인데 가만히 있겠나. 수 백 만~수 천 만원짜리 그림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이므로 별별 수작을 다 쓴다. 그 지저분한 연결고리는 미술계 인사들 대부분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일일이 말하자면 그 비리가 끝도 없는 게 미술계”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주장을 해 눈길을 모으고 있는 이영재씨는 국내 서예학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000원짜리 신권 지폐 뒷면의 산수화 ‘계상정거’(溪上靜居) 작품의 주인이도 하다. 그가 갖고 있는 서화 60여점은 3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이호재 만남 이렇게 이뤄졌다

이영재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서울옥션의 이호재 회장의 첫 만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씨는 “이호재씨가 미술계에서 무명이던 1980년대 초 이화장(이승만 전 대통령 자택)에서 잠깐 들르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이호재란 사람을 처음 알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화장에서 그를 불러들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72)씨. 이인수씨는 그와 만난 자리에서 “내 사촌 동생(이호재)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호재가 미술품 관련 일을 하는데, 삼성에 한번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볼 예정이다. 그 일을 당신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인수씨가 이씨를 부른 것은 그가 국보급 서화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씨는 고민 끝에 자신이 보관하던 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를 이호재 회장에게 건넸다. 겸재는 조선시대 최고 화가로 이호재 회장이 겸재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내연삼용추도를 들고 삼성에 들어가면 이건희 회장은 이호재 회장을 매우 신뢰할 게 자명했다. 이 그림 하나로 삼성이 이호재 회장의 고정고객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 때 이씨는 이호재 회장에게 ‘5천만원을 받아오라’고 했지만 삼성은 그림 값을 3천만원으로 깎아 사들였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삼성은 이호재 회장의 고정고객이 됐고, 이것을 발판으로 그는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기자는 이런 내용들의 사실 확인을 위해 이호재 회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메모를 남겨드리겠다”는 비서의 말뿐 이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추사 위작, 고승 백파율사 제자가 범인

이영재씨는 누가 추사작품을 위조했나 하는 의문에 “내가 볼 땐 백파율사의 제자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백파율사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승이다. 조선시대의 불교억제정책 속에서도 불교의 오랜 정체기를 헤치며 조선후기의 불교를 다시 꽃피운 화엄종의 종주이기도 하다.

백파율사는 생전에 추사와 깊은 학문적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그의 제자 중 즉과도인이란 인물은 매우 서예에 능통했다. 그는 생전에 추사체를 자주 모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지금 전해지는 추사 위작의 대부분은 즉과도인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우봉 조희룡, 침계 윤정현, 석파 이하응 등 그의 제자가 남긴 글들을 추사작품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즉과도인 글씨는 위작이라 할지라도 현대에선 감히 모방할 수 없는 훌륭한 글이다. 추사가 100이라면 그는 85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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