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조직 자금줄 잡았다
바다이야기 파문 후 주춤하는 듯 했던 사행성 오락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오락실 머니가 조폭들의 막대한 자금원이란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최대 폭력조직으로 알려진 칠성파의 중간보스가 갖고 있는 오락실을 운영해온 김모(41)씨는 지난 14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조폭들의 오락실 운영실태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했다.
사실 칠성파를 비롯한 조폭 간부들이 오락실을 불법운영하다 적발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조폭이 아닌 오락실업자가 조폭의 오락실 운영과 자금 이용 실태를 언론에 적나라하게 폭로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또 김씨는 오락실 수익이 조폭자금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소상히 털어놓았다. 검·경찰은 오락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그 내용을 캐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조폭의 오락실운영이 눈에 보이는 게 뻔한데도 왜 오락실 수익의 용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과 경찰 내부에 조폭의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세간의 의혹들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털어놔 충격을 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방의 검찰과 경찰 중 상당수가 거물급 조폭과 검은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 8월 25일 사행성 오락기를 설치, 오락실을 운영해오던 칠성파 부두목 강모(52) 씨가 구속됐다.
그가 오락실을 석달간 운영하면서 올린 수익은 10억 5000만원. 그와 함께 환전소업주도 오락실에서 나온 상품권을 8%의 수수료를 떼고 환전해주는 방법으로 월매출액 9억6000여만 원, 월평균 수익 630만 원을 챙겼다.
그 때 사건을 수사한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검사 정중택)는 이들이 얻은 이익금이 폭력조직 자금원으로 이용됐
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하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조폭들이 꼬리를 잘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칠성파의 본거지인 부산지역에선 불법오락실이 판을 치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엔 부산시 중구 보수동에 불법 성인오락실을 차려놓고 25억5000여만 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로 칠성파 간부 고모(39) 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그러나 김씨는 이에 대해 아무리 단속해도 ‘새 발의 피’라고 말했다.
김씨는 “칠성파는 성인오락기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운영하고 있다. 인력에 한계가 있는 검찰과 경찰이 이를 단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칠성파 조직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세력이 강하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조폭들이 양아치 수준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칠성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현존하는 유일의 거대 폭력조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쪽 오락실 90% 운영
수개월 전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 이강환(65)씨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해 각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 롯데호텔에서 가진 이씨의 아들(37) 결혼식에서 드러난 이씨의 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 했다.
이날 이씨 아들 결혼식에 몰려든 하객들의 차량행렬로 주변 교통이 한때 마비됐다. 예식 1시간 전부터 서울의 ‘신상사파’와 전남 순천의 ‘시민파’, 울산 ‘목공파’ 등 전국의 조폭보스들이 짙게 선팅 된 외제차와 최고급 국산승용차를 타고 호텔입구에 속속 도착했다.
또 차에서 내린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내릴 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들이 90도 각도로 머리를 숙이
며 이들을 맞았다.
호텔로비와 1층 커피숍은 예식 30분 전부터 조폭으로 보이는 이들이 사실상 점령하다시피 했다.
또 예식장엔 최근 ‘칠성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부산지역의 신흥 폭력조직인 ‘20세기파’, ‘유태파’, ‘신20세기파’의 간부급
조폭도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각계인사들이 보내온 화환 80여개가 예식장 안팎을 병풍처럼 두른 가운데 결혼식 주례는 김모 전 연세대 교수가 맡았다. 예식 중간에 인기개그맨의 축하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날 칠성파 행동대원을 포함, 전국에서 모여든 조폭이 1000명은 족히 넘었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이 일을 계기로 칠성파와 두목 이씨는 지금까지도 건재하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는 “조폭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이씨에 대해 은퇴한 거물정도로 알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모든 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실세 중의 실세”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부하들 중 재산이 수 백 억원대에 달하는 이들이 하나 둘 아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씨의 재산은 천 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고 전했다.
또 김씨는 “현재 영남지역의 대도시인 부산을 필두로 마산, 창원, 대구, 울산 등지에 깔린 오락실이 대부분 칠성파의 것이다.
칠성파 조직원들은 영남지역 수 백 군데에 이르는 오락실들을 게릴라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경찰의 단속정보가 접수되면 해당지역 오락실은 문을 닫고 운영자는 오락실 손님을 제2·제3의 장소로 옮겨 손님들이 오락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관광버스 동원해 손님 태워
김씨는 “검·경찰 단속이 이뤄지기 전 그 정보를 입수하고 손님들을 다른 오락실로 보낸다. 이때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손님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마산지역에 단속이 뜨면 마산과 가까운 창원지역 오락실로 손님을 실어 나르며 영업한다. 숨바꼭질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는 “칠성파의 중간보스급은 거의 다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
소는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은 ‘알짜’업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지역 상품권 유통업체 관계자는 “조폭들이 알짜업소 100여 곳의 경영과 상품권 취급을 통해 상품권 환전으로만 매달 200
억원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조폭과 연계한 일본계 자금까지 성인오락실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락실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데 반해 단속은 바다이야기 이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사정당국이 조폭들과 검은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부산·경남 곳곳에서 새로 문을 여는 오락실의 광고 펼침막과 전단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의 성인오락실 밀집지역인 부산 남포동엔 1·2·3층에 오락기를 600대나 갖춘 초대형 성인오락실까지 문을 연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어서 검은 커넥션 의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오락실을 운영하면서 조폭들 움직임을 지켜보면 검찰과 경찰의 내부정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다. 어떻게 저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이는 내부자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도저히 알기 힘든 정보들이다”며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김씨는 “칠성파 간부에게서 전화가 와 ‘300만원을 마련해뒀다가 밤 10시에 누가 찾아오면 건네 줘라’고 해서 그대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 돈을 찾아간 사람이 경찰이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난 뒤 경찰단속정보가 우리들에게 전해진 적도 있다”고 말해 의혹으로만 나도는 내부 커넥션이 일정 부분 사실임을 암시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