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 첫 출항 험난한 파도만 확인
슈틸리케호 첫 출항 험난한 파도만 확인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10-20 14:47
  • 승인 2014.10.20 14:47
  • 호수 1068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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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키워드, 파격과 파괴…원점으로 헤쳐 모여
적은 관중숫자, 빈약한 대체 자원…한국 축구의 숙제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축구대표팀 A매치 팀 사령탑에 오른 이후 단기간의 훈련과 두 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시동을 걸었다. 1승 1패로 절반의 성공을 이루며
국내 여론은 아직은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골 결정력 부족은 해소되지 못하며
의문 또한 남겼다. 파격과 파괴를 선보인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을 살펴본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친선전에서 1-3으로 완패를 당했다. 이날 한국은 전반 이동국의 추가시간에 터진 골로 1-1의 균형을 이뤘으나 후반 들어 수비 실수로 두골을 내주며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첫 패배를 맛봤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은 “코스타리카의 승리를 축하한다. 우선 오늘 공격적인 두 팀이 만나 기술적이고 화려한 축구를 했지만 관중 숫자가 너무 적어 아쉬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은 잘해줬다. 결과가 부정적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월드컵에서의 부진 이후 새롭게 출발한 축구대표팀은 비록 강호 코스타리카에게 완패했지만 앞서 파라과이전에서 2-0승리를 거둬 침체돼 있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충분했다. 무기력했던 선수들도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또 슈틸리케 감독 역시 단 2경기 만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이번 A매치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지향점은 명확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얼굴을 대거 발탁했고 파격적인 선수 운용으로 국내외 선수를 편견 없이 고루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선수구성·전술 유연하게 흔들다

10일 파라과이전에서는 그간의 베스트11을 깨뜨림과 동시에 아예 뿌리까지 흔들었다. 이동국(35·전북), 손흥민(22·레버쿠젠) 등 주전 공격수들을 빼고 조영철(25·카타르 SC), 남태희(23· 레크위야) 등을 내세워 ‘제로톱’을 구현했다. 포백 수비라인도 통째로 바꿨다. 홍철(24·수원), 김기희(25·전북), 곽태휘(33·알힐랄), 이용(28·울산)을 선발로 내새워 줄곧 그 자리를 지켜온 박주호(27·마인츠)와 김영권(24·광저우 에버그란데) 등 주전선수들을 긴장케 했다. 이 같은 파격은 선수들의 긴장감을 높여 2-0 승리를 이끌어 냈다.

14일 코스타리카전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기존 포지션을 파괴해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 기성용(25·스완지시티)을 미드필더에서 공격까지 올렸고 장현수(23·광저우 부리)를 중앙 수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중앙과 미드필드가 가장 중요한데 이점에서 오늘 장현수가 가장 뛰어났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전술적 유연성을 더한 것도 빛을 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정형화된 포메이션을 거부하고 상황과 흐름에 따라 다르게 전술을 가져갔다.

지난 7일 공식 첫 훈련을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은 “현대 축구의 중요성은 전술의 유연성에 있다. 선수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전술은 달라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대표팀은 파라과이전에서 한국 축구의 기본 뼈대인 4-2-3-1을 유지하면서도 공격 시와 수비 시 다른 전술을 펴 상대팀을 압도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어느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축구도 선보였다. 손흥민의 경우 빠른 스피드를 살릴 수 있도록 상대 오른쪽 측면 뒷 공간을 열어두는 플레이를 펼쳤고 이청용(26·볼튼)에게는 프리롤을 맡겼다. 프리롤은 체력이 강하고 기술이 있는 선수에게 부여되는 역할이다. 이에 화답하듯 이청용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두차례 A매치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또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전진 패스 능력이 뛰어난 장현수를 기성용의 파트너로 낙점해 원활한 패스 연결을 이끌어 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수들 개개인의 장점을 파악해 이를 가장 좋은 경우의 수로 응집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일시적 긴장감 골 결정력 부족

이에 슈틸리케호의 긍정적인 신호를 확인했지만 아직 시간이 부족한 탓인지 축구대표팀의 문제점 역시 여실히 드러났다.

파격과 파괴로 일시적인 긴장감은 높였으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비롯해 공격수의 유기적인 움직임 부족, 수비 집중력 부족 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코스타리카전에서는 파라과이전에서 보여줬던 강한 압박이 실종되면서 공이 쉽게 중원과 최전방으로 연결됐다. 또 수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상대팀과 달리 얌전한 수비로 일관해 눈총을 샀다. 이에 한국은 3실점이라는 실력차를 체감해야 했고 슈틸리케 감독도 썩 만족하지 못해 흥분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은 “상대팀을 지나치게 존중했다. 일대일로 맞서는 수비 상황에서 대응이 빠르지 못했다. 상대와의 간격도 너무 떨어져 있었다. 공격진에서의 압박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1기 소집 당시 점검과 실험에 역점을 두겠다는 말처럼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과를 얻지도 완전한 실험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숙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만 슈틸리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에너지가 가득하고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규율이 확실하다”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애써 위안을 삼았다.

실험 끝, 실전 조합 고심 중

이번 평가전을 통해 짧은 실험은 끝이 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제 실전에 쓸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고민할 때가 왔다. 11월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1월에 요르단과 이란을 상대로 잇달아 원정길에 오르는 축구대표팀은 결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남은 공식 평가전은 11월 A매치가 전부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1~2경기를 더 치를 가능성도 있지만 그 전에 아시안컵 출전 명단을 마무리해야 해서 11월 중동 원정이 실전용 조합을 찾아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먼저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고민할 대목은 ‘집짓기의 시작’이라고 말한 수비 라인이다. 앞서 10월 A매치를 앞두고 그는 “공격을 잘하면 승리하고 수비를 잘하면 우승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선수 구성부터 복잡해진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좌우 풀백 자리에는 박주호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새 얼굴을 기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센터백도 발 빠른 김주영(24·서울FC)과 안정감이 뛰어난 김영권, 경험이 풍부한 곽태휘 등을 다양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골키퍼 자리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김승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이번 평가전에서 김진현(27·세레소 오사카)이 급부상했다. 김진현은 파라과이전에서 무실점 선방 쇼를 펼친 반면 김승규(24·울산)는 코스타리카전에서 3실점을 하며 고전했다.

공격 쪽도 장신 골잡이 김신욱(26·울산)이 부상으로 사실상 제외되면서 유일한 원톱 자원인 이동국(35·전북)을 활용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이 필요하다. 이동국은 코스타리카전에서 득점을 제외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이에 파라과이전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손흥민과 이청용, 남태희 등 2선 공격수들과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과감히 제로톱을 구현하는 것 또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원도 주장인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국영과 장현수 등의 파트너 찾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내년 1월까지 짧은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아시안컵 성적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슈틸리케 감독은 12월 초부터 국내파를 위주로 한 훈련을 하다가 해외파가 합류하는 12월 말에 호주로 건너가 훈련 캠프를 차릴 예정이다.

합격점 받았지만 과제 산적

협회 관계자는 “그때까지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를 돌며 선수를 관리하거나 코칭 스태프들과 전술 구상에 힘을 쏟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장 아시안컵을 위해 전력을 쏟을 방침인 가운데 이번 A매치를 통해서 한국 축구에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특히 무실점을 공언한 만큼 지루한 수비 위주의 팀 운영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공격형 축구를 구사하면서 브라질 월드컵 이후 부진했던 한국축구의 면모를 단숨에 바꿨다. 이에 축구 팬들의 기대를 한껏 높였다.

또 국내외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편견 없이 기용한 점은 전 포지션에 걸쳐 선수들의 경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다만 불완전했던 실험인 만큼, 더욱이 코스타리카전에서 완패를 경험한 후 칭찬일색이던 반응이 다소 돌아서면서 경계가 필요하다. 그간 한국 축구의 몰락은 잦은 감독 교체에서 촉발된 점을 감안할 때 성급한 평가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를 불러 올 수 있다.

또 슈틸리케 감독 역시 코스타리가전에서 녹록치 않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대면했기에 이를 극복할 그의 지략이 요구된다. 유럽 무대와 달리 곳곳이 빈 관중석과 전 포지션에 걸쳐 부족한 자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4년간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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