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한명이 원 피고 번갈아 변론 막가는 법조계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백억원대 사기사건 연루 의혹도

직업윤리 불감증 변호사들 실태
변호사들의 직업윤리 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법의 공정성을 꾀해야할 변호사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변호사가 피고와 원고의 변호를 번갈아 맡은 것으로 드러나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수개월 전 사무실을 개업한 부장검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는 거액의 사기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 변호사는 부동산사기단의 변호를 맡아 ‘용의자들에게 경찰조사 때 거짓말을 하라’고 직접 지도했을 뿐 아니라 사기행각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법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타락 실상을 집중 취재해 보았다.
변호사 사기사건 연루
“한때 부장검사까지 지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사기사건 용의자가 A변호사와 대면하고 나면 거의 매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술을 뒤집었다. 용의자가 경찰수사를 꿰뚫고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정황들이 눈에 보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A변호사 머리에서 나온 것 같다.”
서울 ○○경찰서 관계자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이 관계자가 맡았던 사건은 토지사기 사건. 용의자 B씨가 2년 전 일당 3명과 짜고 D씨를 속여 시가 40억원에 이르는 땅을 가로챈 데서 비롯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에 진전이 없다가 지난 10월 중순 용의자 B씨가 붙잡히면서 조사가 본 진행되는 상태다. 하지만 속도가 붙을 것 같던 사건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그 복병은 바로 부장검사 출신인 A변호사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 사건은 여러 사람들이 얽혀있어 상당히 복잡하다. 우리는 오랜 수사를 통해 B씨 혐의를 입증해낼 만한 근거도 찾아냈고, 자백도 받아냈다. 하지만 전관출신인 A변호사 등장으로 처음부터 다시 수사해야 할 판이다”라고 전했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기 위해 피해자 D씨를 만나봤다. 그는 이야기 중 솔깃한 내용을 하나 전했다. A변호사가 B씨와 짜고 땅을 가로채려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A변호사가 사건을 승소로 이끌 경우 6억원, 땅에 대한 일부 소유권을 인정받게 해 주면 해당 시세의 30%를 받기로 B씨와 계약했다는 것이다.
D씨는 이에 대해 “B씨를 고발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재산내역에 대해 다 조사해 봤다. 그와 그 일당의 재산이라고는 집 한채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돈이 있어 억대 수임료를 주나. 내 땅을 팔아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경찰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지만 기각 당했다. 검찰조사에선 오히려 내가 부동산투기꾼으로 몰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번갈아 원고와 피고 변론
그나마 의혹제기는 양호한 수준이다. 드러내놓고 원고와 피고 변론을 번갈아 보는 경우마저 있다.
고모 변호사는 원고 K씨와 피고 J씨 소송에서 K씨 소송대리인으로 법정에 섰다. 하지만 고 변호사는 수개월 뒤 이 사건과 연관된 또 다른 사건을 맡는 과정에서 J씨 소송대리인으로 변신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J씨의 상대편 소송 관련인들은 고 변호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J씨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Y씨는 “어떻게 한 변호사가 원고와 피고쪽 변론을 번갈아가면서 할 수 있나. 완전히 다른 사건이라면 몰라도 서로 연관된 사건임에도 이런 식으로 변론을 맡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짓”이라며 기막혀 했다.
또 Y씨는 “고 변호사는 J씨가 처한 상황이 측은해서 할 수 없이 변호를 맡기로 했다지만 이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원리원칙과 양심에 따라 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하는 변호사가 직업윤리를 내팽겨 친 채 구체적 이유도 없이 인간적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를 내세우는 건 수준이하”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 변호사는 재판부에 낸 서면에서 “Y씨 쪽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가 있을 줄 알면서 J씨 변론 일을 맡은 것은 J씨와 Y씨 소송에서 J씨 주장이 타당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고 변호사는 서면을 통해 “처음엔 J씨가 변론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J씨가 집요하게 부탁해 마지못해 수락했다”고 밝히면서 수임료와 관련, “J씨가 형편이 어렵다고 해 수임료도 제대로 받지 않고 소송대리인 업무를 처리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 변호사의 이런 주장은 구차한 변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 변호사는 Y씨 쪽이 고 변호사의 변론행태를 문제 삼자 의뢰인의 8쪽짜리 준비 서류에서 5쪽이나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정도면 자신을 변론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분량에 비해 내용이 충실하지도 않다. Y씨 말대로 구체적 이유보다는 전반적으로 동정에 호소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고 변호사는 “소송대리인이 직업적으로 냉혹하게 거절 못하고 인간적으로 도와준 것이므로…”라던가 “원고소송대리인은 이로 인해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당연히 거절했다”는 식으로 자신 수임이 부적절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그는 또 “이 사건을 큰 경험삼아 변호사도 인간적 양심보다는 직업적 양심을 중시해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고 변호사와 직접 전화통화를 했을 때 그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고 변호사는 “왜 J씨 변론을 맡게 됐느냐?”는 물음에 “전혀 다른 사건인데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기자가 왜 이런 일을 취재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J씨를 변론한 것은 아무 문제없으니 기사화 하든 말든 알아서 취재하라”고 말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회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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