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대 특급 짝퉁 만든 ‘신의 손’
100억대 특급 짝퉁 만든 ‘신의 손’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7-12-16 22:41
  • 승인 2007.12.16 22:41
  • 호수 711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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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장인정신

명품회사 감시원도 속을 만큼 정교한 ‘짝퉁’을 만들어 판 국내 최고 기술자 3남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1월 26일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유명 해외명품의 모조품을 만들어 판 혐의(상표법 위반)로 기술자 오모(47)씨를 구속하고 오씨의 친형과 여동생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남매는 서울 전농동, 중곡동, 청량리동에 공장과 재단방, 창고를 따로 차려놓고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짝퉁’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이 만든 모조품의 정품 시가는 110억원대. 일당이 6개월간 챙긴 순이익은 11억원에 달했다. 한때 국내 최고의 가방기술자로 대접받던 오씨가 ‘짝퉁업자’로 전락한 사연과 오씨 남매의 파란만장한 범행 일지를 들여다보자.

경찰에 따르면 구속된 오씨는 지난 5월 14일부터 프랑스 명품브랜드인 샤넬, 루이비통 등의 상표를 위조해 6개월 동안 가방 4145개, 지갑 5000개 등 정품시가 110억원 상당의 물건을 만들었다. 이중 4000개를 팔아 오씨가 남긴 이익은 3억원. 오씨에게 물건을 납품받아 판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조카사위 유모(37)씨는 7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오씨가 만든 ‘짝퉁’은 정품의 1/10값으로 도매상에 넘어갔다.

정가 50여만원의 루이뷔통 지갑은 3만~5만원에 넘어가 일반인들에게 최고 20만원에 팔렸다. 정품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값이지만 진짜나 다름없는 오씨의 ‘작품’은 날개돋인 듯 팔렸다. 일부 도매상들은 ‘장인’의 물건을 먼저 들여오기 위해 혈안이 될 정도였다.


명품회사 블랙리스트 1위

구속된 기술자 오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명품업계 블랙리스트 1위. 업자들 사이에서 짝퉁계의 ‘명품’을 만들어온 지존(?)이라 불렸다.

20년간 가방을 만들어온 오씨는 한때 이탈리아의 준명품 상표를 빌려 팔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그러나 인지도가 떨어져 2년 만에 부도를 맞은 오씨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짝퉁 제작으로 눈을 돌렸다. 돈에 이끌려 가짜를 만들어 팔았지만 ‘가방 전문가’ 오씨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다른 업자들이 사진이나 카탈로그만 보고 모조품을 만드는 것과 달리 오씨는 수천만원의 돈을 쏟아 부어 진짜 명품 구입에 나섰다. 오씨는 샤넬·루이비통 본사에서 하나당 천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방과 지갑을 모델별로 사들였다.

그는 명품의 손잡이와 지퍼를 일일이 분해했고, 특유의 박음질 기법까지 터득해냈다. 사건을 접한 담당경찰도 “놀라운 장인정신(?)”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른 업자 질투에 가족 동원

국내 최고 기술자 오씨가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작품’은 도매업자 사이에서 진짜 명품 취급을 받았다. 경찰은 “오씨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최고의 짝퉁을 만들어내자 도·소매상들이 오씨 제품이 아니면 사가지 않았다. 때문에 B급 제작자들의 질투를 샀다”고 전했다.

서로 밀고하는 짝퉁업계 관행에 고민하던 오씨는 마침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른 업자들의 신고를 피하기 위해 오씨는 재단방과 공장, 창고를 서울시내 세 곳에 따로 마련했다. 그리고 친형에게 원단 재단방을, 여동생에게 공장책임자를 맡겼다. 조카사위 유씨는 완성된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역할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오씨는 제조·보관·배송을 맡는 종업원을 직접 고용하고 이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2005년 9월 경찰에 지명수배를 당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오씨의 대담함은 이런 치밀함이 밑에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오씨 ‘짝퉁’ 백화점서 팔렸나

오씨 ‘작품’을 직접 본 루이비통의 법무팀 관계자는 “단속 때문에 많은 짝퉁을 봤지만 이런 물건은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그는 “전문가인 우리도 눈으로는 도저히 구분 되지 않아 물건을 뜯어서 속지를 확인하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오씨가 만든 모조품이 백화점에 납품됐는가를 밝히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명품 감시원조차 구분이 어려운 ‘특급짝퉁’이 소매상보다 납품 단가가 높은 백화점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일당의 추가 혐의를 밝히기 위해 경찰은 붙잡힌 오씨와 이들 남매를 추궁했지만 그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샤넬 제일 많이 베끼는 명품 1위, 루이비통 2위

해외 유명상품에 대한 국내 ‘짝퉁’ 상품 일제 단속 결과 프랑스의 명품브랜드 샤넬이 가장 많이 적발 됐다.

특허청이 지난 10월 13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에게 낸 ‘품목별· 상표별 위조상품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단속결과 8천662건 가운데 샤넬이 1천484건으로 가장 많았다. 역시 프랑스 명품브랜드인 루이비통이 949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카르티에 572건, 구찌 519건, 페레가모 479건, 불가리 401건 등이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짝퉁’으로 불리는 위조 상품 등 각종 지식재산권 침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관계기관의 수사와 함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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